[이슈 In] '더 내고 더 받는' OECD 연금개혁 권고안 얼마나 반영될까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급속한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우리나라 인구구조의 급변상황을 반영해 공적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며 몇 가지 개선방안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개선방안은 보험료율과 급여 인상 등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의 개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OECD 권고안들은 새로운 게 아니다.
국내 전문가들이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고 노후소득 보장 수준을 높이기 위해 추진해야 한다고 제시했던 방안들이지만 실현되지 못하고 해묵은 과제로 남아 있다. 국민과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를 대비한다고 해도 당장 어려운 생활 형편에 더 많은 짐을 짊어지워 국민 거부감이 커지기에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저한 탓이 크다.
보건복지부는 OECD의 제안을 관계 전문가들과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 실시하는 5차 재정계산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이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국민연금의 재정 상황을 점검해 연금보험료 조정 등 전반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5차 재정추계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 내년 3월까지 결과를 도출할 계획이다.
OECD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권고 사항들을 제안했고 어떤 걸림돌이 있길래 그동안 시행되지 못하는지 살펴본다.
"보험료율 합리적인 수준으로 인상해야"
OECD는 보험료율을 가능한 한 빨리 합리적인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우리나라의 보험료율은 소득의 9%이다. 독일(18.7%), 일본(17.8%), 영국(25.8%), 미국(13.0%), 노르웨이(22.3%) 등 선진국보다 훨씬 낮다. OECD 국가 평균(18.3%)의 절반이 안 된다.
국민연금 시행 첫해인 1988년 3%에서 시작해 5년마다 3%포인트씩 올랐지만 1998년부터 지금까지 사회적 합의를 하지 못해 24년째 10% 벽을 넘지 못하고 묶여 있다.
연금개혁 때마다 보험료율을 올리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정치권이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방안을 찾지 않고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2018년 4차 재정계산 결과, 국민연금을 현행대로(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 유지하면 2057년에 적립기금이 소진되는 것으로 나오자 9%인 보험료율을 즉각 11%로 올리거나 10년간 단계적으로 13.5%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방안을 전문가들이 내놨지만 현실화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조규홍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적정 보험료율은 사회적 합의로 결정돼야 하므로 개혁방안 마련을 위한 재정추계를 진행 중인 현시점에 언급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재정 안정화와 노후소득보장 강화 모두 중요한 목표지만 보험료 인상은 이해관계자 의견이 필요하며, 다양한 정책 수단과 함께 관련 쟁점을 논의해야 한다"며 "향후 개혁방안 논의 시 OECD 권고사항을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의무가입 연령 상향 조정해야"
OECD는 만 59세인 국민연금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상향해 60세 이후에도 보험료를 지속해서 납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무가입 연령을 65세로 늘리면 가입자가 받는 돈은 약 13% 정도 늘어나 노후소득을 강화할 수 있다고 OECD는 분석했다.
이런 방안도 오래전에 연금개혁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현재 국민연금 의무가입 나이와 연금수령 나이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퇴직 후 연금 수령 나이는 현행 법정 정년(60세)과 같이 애초 60세로 설계됐지만, 1998년 1차 연금개혁 때 재정안정 차원에서 2013년부터 2033년까지 60세에서 5년마다 한 살씩 늦춰져 65세까지 조정되게 바뀌었다. 올해 연금 수령 개시 나이는 62세이다.
그러나 의무가입 나이는 여전히 만 59세에 고정돼 의무가입 종료 후 수급 개시 전까지 가입 공백과 소득 단절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전문가들은 의무가입 나이와 수급개시 연령을 연동해 가입종료와 동시에 연금을 받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문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대다수 연금선진국은 연금 수급 연령보다 가입 상한 연령을 높게 정해놓고 있다.
독일(근로자연금), 스웨덴(NDC 연금), 캐나다(CPP)는 연금 가입 상한 연령이 65세 미만이거나 70세 미만이고 수급개시 연령은 65세로 맞춰놓았다.
"보험료 부과 기준액 올려서 더 내고 더 받게"
OECD는 또 기준소득월액 상한액을 올려서 보험료를 더 내되, 노후에 연금급여액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기준소득월액은 국민연금 보험료 부과기준으로 올해 7월부터 상한액은 월 553만원, 하한액은 월 35만원으로 정해져 2023년 6월까지 1년간 적용된다.
보험료는 기준소득월액에다 보험료율(9%)을 곱해서 매긴다.
월 553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가입자든, 월 1천만원이나 2천만원을 버는 가입자든 현행 연금보험료율(9%)에 따라 같은 보험료(월 553만원×9%=월 49만7천700원)를 낸다.
기준소득월액을 놓고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기준소득월액은 전체 가입자 평균 소득월액의 최근 3년간 평균액 변동률을 반영해 매년 조금씩 조정되긴 하지만, 거의 해마다 오르는 임금과 물가, 소득수준을 반영하지 못해 다른 공적연금이나 건강보험과 비교해 너무 낮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의 소득 상한선은 월 856만원이고, 건강보험의 소득 상한선은 1억273만원(직장 평균보수월액의 30배)에 이른다.
국책연구기관과 연금 관련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소득상한액을 올려야 한다는 제안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논의만 무성했을 뿐 결실을 보지 못하고 물거품이 됐다.
복지부는 국민연금의 소득 상한선을 개선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가입자와 사용자의 보험료 부담이 커져 수용성이 떨어질 수 있고 향후 연금 지급액이 늘어나는 등 재정부담도 커질 수 있기에 좀 더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후 일해서 돈 번다고 연금 깎는 제도 완화해야"
은퇴 후 소득 활동을 한다고 해서 연금액을 깎는 것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민연금에는 퇴직 후 다시 일해 소득이 생기면 그 소득액에 비례해 노령연금(노후에 받는 일반적 형태의 국민연금)을 감액하는 장치가 있는데, '재직자 노령연금 제도'가 그것이다.
한 사람에게 '과잉 소득'이 가는 걸 막고 재정 안정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1988년 국민연금제도 도입 때부터 시행됐다.
수급자가 기준을 초과하는 소득(임대·사업·근로)이 생기면 연금수령 연도부터 최대 5년간 노령연금액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 일정 금액을 뺀 금액을 지급한다.
연금 삭감 기준선은 일해서 얻은 다른 소득이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3년간 평균 소득월액(A값)을 초과할 때다.
노령연금이 적든 많든 상관없이 기준 소득(A값)만 따져서 이를 넘으면 삭감된다. 적게는 10원, 많게는 100만원 넘게 깎인다. 다만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삭감의 상한선은 노령연금의 50%이다. 최대 절반까지만 깎는다는 말이다.
이런 연금 삭감에 대해서는 은퇴자의 일할 의욕을 꺾고 국민연금의 신뢰를 훼손한다며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연금당국도 이런 비판을 수용해 소득 활동에 따른 노령연금 감액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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