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속에서 기르고 먹으며 살아남으려면?
민트의 기세가 강해졌다. 가닥가닥 길게 자란 줄기를 베어내니 에코백 하나에 가득 담긴다. 민트는 호시탐탐 다른 식물의 자리를 침범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뽑아내며 돌봐야 한다. 때마침 동네 단골 카페에서 키우던 민트 화분이 말라 죽어버렸다고 했다. 뽑아낸 민트는 화분에 옮겨 심어 카페로 전달하고, 잘라낸 줄기는 깨끗이 씻어 흙을 털어내 건조기에 말린다. 민트가 염증 완화에 효과적이라는데 요즘 친한 지인이 자주 얼굴이 부으니 그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이다. 먹거리를 기르면 때로는 마음이 저절로 넉넉해지는 기분이 든다. 반짝이는 찰나의 시기를 놓치면 애써 돌본 작물이 쓰임을 잃게 된다. 내가 거둔 생명에 책임을 지기 위해 잘 활용해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가뭄 vs. 폭우,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2020년 장마를 겪으며 기후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의 온라인 캠페인이 이어졌다. 그때부터였나, 동네 주말농장의 구석 자리에서 조그마한 텃밭을 일구는 내 입에도 ‘기후위기’라는 말이 자주 붙었다. 카렐 차페크의 수필집 <정원가의 열두 달>을 보면 땅을 일구는 사람들은 100년 전에도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고 날씨에 관한 불평을 다양하게(!) 늘어놓았던 것 같다. 아무리 땅에서 식물을 키우는 이들이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라 해도 올해 기후는 아주 이상했다. 마치 ‘밸런스 게임’처럼 극단적인 선택지밖에 없다는 듯 날씨가 맑으면 대개 지독한 가뭄이 이어졌고, 비가 오면 어떻게 이렇게 내릴 수 있을까 신기할 만큼 많은 양의 비가 쏟아졌다. 10월의 끝자락에도 낮에는 기온이 높아 반소매 옷을 고수하는 지금은 가을작물이 시들어야 뽑아내고 월동 작물을 심을 텐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런 당혹스러움을 삶으로 받아내야 하는 이들은 바로 농사를 생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올해 환경단체 ‘녹색연합’과 함께 팀을 꾸려 스무 명의 농민을 만나 기후위기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묻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데, 작물의 종류와 상관없이 농민들은 모두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었다. 심지어 ‘AI로 대표되는 과학이 다 알아서 해줄’ 것처럼 홍보해온 스마트팜 유리온실에서 농사짓는 농민마저 “몇년째 성장기에 비가 오는 날이 많아서 작물이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해 생산성이 낮아지고 있다.”라고 걱정했다. 과수는 꽃이 피자마자 기온이 뚝 떨어져 수정이 되지 않는 일이 4~5년째 이어지고, 고온 다습한 날씨에 가축도 죽어나간다. 여름철 과일은 폭우에 대비해 수확 시기를 당겨 맛이 들지 않고, 바람과 구름만 봐도 날씨를 예측해온 어르신들의 지혜도 기후 패턴이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타격이 큰 이들은 바로 무가온 비닐하우스 하나 없이 노지에서 농사짓는 이들. 기후의 영향은 비단 기온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날씨가 바뀐다는 건 작물의 생리가 바뀌는 일이고, 벌레가 달라지는 일이며, 공기와 땅이 바뀌는 일이다. 30년 넘게 노지 농사를 지어온 한 농민은 “기후가 바뀌는 동안 노지에서 기르던 콩, 마늘, 양파 농사를 접어야 했는데, 올해 폭우를 겪으며 고추마저 접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라고 했다. 고추 농사를 그만두면 그에게는 생강 하나 남는다.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많은 농민이 노지 농사를 포기하게 될 것이라며 현실을 비관했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쌀 대신 감자를 먹읍시다?
여태까지 농사가 잘 안 되면 나온 대안의 대부분은 ‘하우스(시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비를 가리고, 곤충을 격리하고, 작물 수확 시기를 조금 당기거나 늦출 수 있던 하우스에 하나둘 기능이 덧입혀지더니 어느새 모든 환경 요인을 차단한 채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다는 ‘스마트팜’, ‘식물 공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흙 없이 깨끗한 농산물’이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워 판매하고 있다. 언제부터 흙이 더러운 존재가 된 걸까. 일부 엽채류는 흙 없이 키울 수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작물은 토양에 뿌리를 뻗고 살아간다. 흙은 농산물을 키워내는 동시에 곤충과 미생물이 사는 터전이다. 그들은 생태계의 분해자와 작물의 매개자가 되어 다시 작물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내고 작물의 생장과 수정을 돕는다. 모든 자연을 차단한 채 물과 필수영양소만 공급하면 작물을 키워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오만이다. 설령 모든 작물을 그렇게 길러낼 수 있다고 해도 순환의 고리를 끊은 채 생산만 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위기가 찾아올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식량 생산의 증대를 불러온 ‘녹색혁명’이 역설적으로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물과 토양을 오염시킨 것처럼 말이다.
혹자는 쌀이 생산 과정에서 감자보다 많은 메탄을 발생시키니 쌀 대신 감자를 먹자고 주장한다. 논에 물을 빼는 간단관개(중간물떼기)를 하면 메탄을 감소시키니 논을 말리라고도 한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아무리 농약 치고 비료를 뿌리는 관행 농업을 하는 논이라도 인공 습지인 논에는 다양한 토양 서식 생물과 수서생물, 육상 곤충 등이 살아간다. 메탄을 줄이자고 논에 물을 빼는 건 논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생물들을 몰아내는 행위다. 수확기 전 논의 물을 말리는 행위는 농기계를 쓰는 농민들이 수확 전 논에 기계가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이미 쓰는 방법이기도 한데, 이는 오히려 땅을 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지에서는 측정조차 어려운 탄소의 관점으로만 농사를 바라보면 탄소 밖에서 순환하고 살아가는 다른 존재들을 바라볼 수 없다.
즐거운 상상력과 연대라면 어쩌면
“지금의 대안들도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지 않은가요? 산호초, 야생동물, 가축이 이러한(기후위기) 대안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탄소 밖의 생명을 보지 않는 인간들에게 일격을 날리는 사람이 있다. 홍성에서 자연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금창영 농민이다. 오래전부터 기후위기에 대해 고민하고 경고해온 그는 매달 우리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농민들을 만나는 팀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와 동행해 취재하러 다니는 동안 우리는 기후위기에 처한 절망만 본 것은 아니다. 농민들은 대부분 각자의 방식에 자부심을 느끼며 현장에서 버티고 있고, 그들은 식량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농지와 농촌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북 완주에는 자신부터 소의 사육 두수를 줄이고, “주변 축산 농가에 사육 두수를 줄이자고 설득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박일진 농부가 있고, 경북 상주에는 “기후위기 속에서 농민이 받는 피해 말고, 농업이 기후위기를 늦추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부분과 방향에 대해 말하고 실천하겠다.”라고 의지를 다지는 김정열 농부가 있다. 우리는 이런 농민들을 만날 때마다 큰 위안을 받았다.
비록 도시에서 작은 땅을 일구는 도시 농부지만 내게도 땅이 있어 음식물쓰레기와 오줌을 모아 퇴비로 순환하고 그걸로 먹거리를 키워낸다. 한 줌의 땅이라도 곁에 두고 뭐라도 하면 기후위기가 한없이 절망적으로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생산성이 많은 농사 대신 투입을 줄이고 땅 주변의 농생물과 조화롭게 살며 즐겁게 농사짓는 농민과 뭐라도 하는 기후 시민이 만나 서로 응원한다면 더 큰 희망을 상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직은 소수인 우리 같은 사람이 계속 늘어난다면 어쩌면 우리는 더 달관하며 기후위기 시대를 견뎌내고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과 사진. 이아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