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패소해도 계속 소송…효능논란 뇌기능개선제 약값 지키기 '꼼수'
건보재정에 큰 손실…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 몫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일부 제약사들이 '효능 논란'으로 유효성 재평가를 받는 뇌 기능 개선제의 보험 약값을 삭감당하거나 환수당하지 않으려고 행정소송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잇따른 패소에도 아랑곳없이 수년간에 걸쳐 건강보험 당국을 상대로 계속 소송을 벌이는 등 소송을 약값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낳고 있다.
3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종근당 등 24개 제약사는 건강보험공단과 맺은 뇌 기능 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 보험급여 환수 계약이 부당하다며 무효확인 소송을 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앞서 건보공단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를 판매하는 68개 제약사와 임상 재평가 결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을 경우 임상시험 기간의 청구 금액 중 일부(평균 20%)를 환수하는 계약을 2021년 8월에 체결했다.
치매 치료 효과 불확실한데…6년간 2조5천억원 처방으로 재정 축내
제약사들이 콜린알포세레이트를 두고 소송에 나선 것은 처음이 아니다.
건보 당국이 콜린알포세레이트의 효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보험급여를 줄이거나 아예 보험 약 목록에서 빼버리려고 할 때마다 소송 카드로 맞섰다.
실제로 이 약의 효능을 둘러싸고 오래전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제품은 국내에서 치매치료제로 허가받은 적 없는 단순 뇌 대사 개선 약이다.
외국에서도 치매치료제로 공인된 적이 없고 단지 뇌 대사 기능개선제로 나이가 들어 기억력 감퇴, 무기력, 어눌함을 느끼는 환자에게 쓰도록 허가됐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의약품이 아니라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 등에서는 콜린알포세레이트가 치매 환자의 뇌 속 신경 물질 생성에 도움을 준다는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간 국내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 4명 중 1명에게 처방되고 건강보험 적용으로 해마다 막대한 보험 급여비가 투입됐다.
처방금액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2018∼2023년 6년간 누적 총 2조5천748억원에 달했다. 그만큼 건보재정을 축낸 셈이다.
이에 건보 당국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의약품의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축소했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는 국내에서 그동안 통상 치매로 일컫는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 기질성 정신증후군', '감정 및 행동 변화', '노인성 가성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처방됐다. 치매 전 단계로 불리는 '경도 인지장애' 환자에게도 쓰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2020년 8월에 이 제제가 치매에 처방될 때만 보험급여를 유지하고, 그 이외의 경도 인지장애나 정서불안, 노인성 우울증 등에 대해서는 선별급여를 적용해 약값 본인 부담률을 30%에서 80%로 대폭 높였다.
이 제제에 대한 임상 문헌과 해외 보험등재 현황 등을 바탕으로 급여 적정성을 재평가한 결과 치매 외 효능은 의학적 근거가 없고, 미국·영국 등 국가에서도 보험에 등재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자 제약업계는 곧바로 이런 급여 축소 결정에 반기를 들고 급여 적정성을 재심의해달라고 요구한 데 이어 2020년 8월에는 취소 소송까지 제기했다.
치매치료제로도 조차 제대로 효능을 인정받지 못한 약을 다른 용도로 쓰더라도 국민이 낸 소중한 건강보험료로 조성한 건보재정을 계속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정부를 대상으로 제기한 뇌 기능 개선제 선별 급여 취소 소송에서 제약사들은 연이어 패소했다. 급여 축소 취소 소송은 1심에서 제약사가 패소한 데 이어 2심 기각 후 현재 3심이 진행 중이다.
패소 뻔해도 무차별 소송…행정절차 기한 이용 막대한 경제적 이득
건보 당국의 급여 축소 조치와 별도로 의약품 당국도 2020년 6월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치매 치료에 대한 유효성과 안전성을 재평가하고, 재평가받지 않거나 임상 실패 때는 퇴출하는 절차를 밟기로 하는 등 전방위 압박에 들어갔다. 정서불안 등 나머지 적응증은 아예 효능·효과에서 삭제했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임상 재평가 실패 시 건강보험 재정 손실 보전을 위해 임상 재평가 기간에 지급한 보험급여를 환수한다'는 방침에 따라 2020년 12월 건보공단과 제약사 간 협상을 명령했다.
그러자 대웅바이오와 종근당 등 50여개 제약사는 급여 환수 협상 지시가 부당하다면서 2021년 1월에 1차 협상 명령 취소 행정소송을 총 2건 제기했지만, 1심에서 모두 각하(却下·형식적인 요건 미비로 청구 자체에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배척하는 처분) 판결을 받았다.
대웅바이오 외 26개 제약사는 2021년 6월에 단행된 2차 협상 명령에 대해서도 '콜린 약제 2차 협상 명령 및 협상 통보 취소소송' 등 2건의 집단 소송을 냈지만, 역시 각하됐다.
건보공단은 이런 난관을 거쳐 2021년 8월에 제약사들과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임상 재평가와 연동된 조건부 보험급여 환수 협상을 타결했다.
하지만 3년이 흐린 지금에 와서 또다시 당시 합의 마저 저버린 제약사들의 소송에 직면하게 됐다.
건보공단은 "환수계약은 제약사와 협상을 통해 상호 합의한 것으로, 이를 제약사가 일방적으로 무효라고 주장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외부 법률전문가 및 복지부와 협력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약사들이 무차별 소송에 매달리는 것은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 있어서다.
보통 건보 당국은 보험 약품 중에서 약품 재평가 과정에서 기준에 미달한 경우, 오리지널약의 특허 만료로 최초 복제약이 보험 약으로 등재된 경우, 불법 리베이트에 연루돼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우 등에 급여를 축소하거나 약값을 깎는다.
이에 맞서 국내외 제약사들은 집행정지 신청과 더불어 행정처분 취소소송으로 맞불을 놓는데, 그러면 최종 판결 전까지 대부분 약값 인하나 급여 제한 조치의 효력이 정지돼 약값을 내릴 수 없다.
국내외 제약사들은 이런 합법적 소송 절차를 활용해 정부의 약값 인하나 급여 제한을 지연시켜 소송 기간 내내 큰 이익을 얻는다.
권리구제 목적의 소송이 아닌 소송 기간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소송을 활용하는 것이다.
재판 기간이 길어질수록 장기간 약값 인하 지연으로 제약사의 경제적 이익은 더 커지고 건보재정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면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제약사들은 약값 인하 조치 집행정지 신청 후 행정소송을 벌이더라도 대부분 재판에서 진다. 제약사가 소송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도 약값 인하 시기를 늦추려고 소송을 남발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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