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기 물 한 번에 잠수함이 침몰한 실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역사에서 가장 황당한 침몰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U-1206이다. 적의 어뢰도, 폭뢰도 아닌 자기 배 화장실 변기 때문에 침몰한 잠수함. 그것도 종전 불과 24일 전에 벌어진 일이다. 독일 해군 크릭스마리네의 VIIC형 유보트 U-1206은 1944년 3월 취역한 최신예 잠수함이었다.
스노클과 첨단 고압 수세식 변기까지 장착한, 당시로서는 최고 사양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최첨단 변기'가 이 잠수함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1945년 4월 6일 노르웨이 크리스티안산을 출항해 첫 실전 초계에 나선 지 겨우 8일 만의 일이었다.

유보트의 고질병, 바다 위에 올라와야 볼일을 봤다
유보트 승조원들에게 화장실은 일상적 고통이었다. 잠수함이 깊이 잠수하면 외부 수압이 내부보다 높아져 오수를 바다로 배출할 수 없었다. 얕은 수심에서만 배출이 가능했고, 깊이 잠수 중에는 양동이나 별도 탱크에 오수를 모아뒀다가 수면 부상 시 한꺼번에 버려야 했다. 50여 명의 승조원이 몇 주씩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데 악취와 위생 문제는 상상을 초월했다.
디젤 연료 냄새, 땀 냄새에 오수 냄새까지 뒤섞인 유보트 내부는 그 자체가 지옥이었다. 독일 해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깊은 수심에서도 오수를 배출할 수 있는 고압 수세식 변기를 개발했다. 압축공기와 복잡한 밸브 시스템을 이용해 수심 200피트(61m)에서도 오수를 바다로 직접 내보내는 획기적인 장치였다.

물 내리는 데 8단계, 전담 기술병 없이는 사용 금지
문제는 이 첨단 변기의 작동법이 악몽 수준으로 복잡했다는 것이다. 밸브를 정해진 순서대로 8단계에 걸쳐 조작해야 했고, 순서를 한 번이라도 틀리면 외부 바닷물이 역류하거나 오수가 선내로 쏟아질 수 있었다. 수심 61m에서 외부 수압은 약 7기압에 달한다. 밸브 하나 잘못 열면 그 압력 그대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온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독일 해군은 변기 작동 전담 기술병을 따로 훈련시켜 배치했다. 함장이든 장교든 일반 승조원이든, 이 기술병 없이는 변기를 사용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전쟁 말기 급조된 신기술이 늘 그렇듯, 충분한 훈련과 검증 없이 실전에 투입된 것이 화근이었다.

1945년 4월 14일, 함장이 변기에서 나오지 못했다
운명의 날은 1945년 4월 14일이었다. U-1206은 스코틀랜드 피터헤드 앞바다 약 8해리 지점, 수심 61m에서 잠항 중이었다. 연합군 해상·항공 초계가 빈번한 위험 수역이었다. 함장 카를 아돌프 슐리트 대위가 화장실을 사용했다. 그런데 볼일을 마친 뒤 변기 작동에 실패했다. 복잡한 밸브 조작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슐리트 함장은 전담 기술병을 호출했다.
그런데 달려온 기술병이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엉뚱한 밸브를 열어버렸다. 그 순간 7기압의 바닷물이 오수와 뒤섞여 선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화장실 바로 아래에는 납황산 배터리실이 있었다. 바닷물이 배터리에 닿자 치명적인 염소 가스(Cl₂)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맹독성 가스가 좁은 잠수함 내부에 퍼지면서 승조원들이 기침과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더 이상 잠수를 유지할 수 없었다. 슐리트 함장은 즉시 급부상을 명령했다.

부상하자마자 영국 항공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급부상한 U-1206의 불운은 끝나지 않았다. 수면 위로 올라온 순간 영국 공군 초계기가 이를 발견했다. 폭격과 기총사격이 쏟아졌다. 염소 가스 때문에 다시 잠수할 수도 없었다. 슐리트 함장은 기밀문서를 파기하고 자침 명령을 내렸다. 승조원들은 거친 바다로 뛰어내렸다. 이 과정에서 3명이 익사하고 1명은 사고 전날 질병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슐리트 함장을 포함한 46명은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영국군에 의해 포로로 잡혔다. 슐리트 함장은 공식 보고서에 "엔진실에서 디젤 수리를 돕고 있었는데 전방 구획에서 누수 보고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변기 사용 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하지만 승조원들의 증언으로 진실이 밝혀졌다.

종전 24일 전, 역사상 가장 허무한 잠수함의 최후
U-1206이 자침한 1945년 4월 14일로부터 정확히 24일 뒤인 5월 8일, 나치 독일은 무조건 항복했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전쟁이 끝났을 시점에, 적의 공격이 아닌 자기 배 변기 때문에 잠수함을 잃은 것이다. U-1206의 잔해는 1970년대 중반 BP가 크루든 베이로 향하는 해저 송유관 조사 중 수심 약 70m 해저에서 발견됐다.
2012년에는 다이버팀이 직접 잠수해 잔해를 탐사했는데, 60년 넘게 해저에 있었음에도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고 한다. 슐리트 함장은 1948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뒤 법률가와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2009년 90세로 별세했다. U-1206은 변기 오작동으로 침몰한 세계 유일의 잠수함으로 역사에 남았다. 최첨단 기술이 오히려 화근이 된 비극이자, 전쟁의 아이러니를 가장 황당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