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역사문화 리포트] 4. 조선시대 동해안에는 오징어가 귀했다

■조선시대 동해안 향토사료에 오징어 기록 드물어
-집어등 채낚기 등 어구·어법 미개발 영향
동해 바닷가에서 가장 흔하게 먹어 본 물고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오징어와 명태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오징어와 명태는 예로부터 동해안 대표 어종으로 인식돼 왔고, 가난한 서민들의 배를 채우며 어업인들의 소득을 높이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다.
지구촌 전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목이 ‘오징어 게임’인 것도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구 온난화와 해양 환경 변화로 인해 요즘은 본산지인 동해안에서도 오징어·명태를 구경하거나 맛보는 것이 정말 어렵게 됐지만, 동해안 대표 어종이라는 관념적 위상만큼은 변함이 없으니 오징어·명태가 다시 만선을 이루기를 기다리는 마음 더 간절하다.

회로 먹고, 말려 먹고, 삭혀서 먹고, 순대로 먹고, 데쳐서 먹고, 무쳐서 먹고, 요리 기법 또한 다양하기 이를 데 없으니 자타공인 국민 먹거리이다.
오징어’ 이름의 유래와 관련, 강릉원주대 장정룡 명예교수는 “정약용(丁若鏞)의 형인 정약전(丁若銓)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오징어 관련 설명이 나오는데, ‘물 위에 떠 있다가 까마귀가 이를 보고 죽은 줄 알고 쪼려 할 때 발로 감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먹는다고 해 ‘오적(烏賊)’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 오적어(烏賊魚)라는 이름이 오징어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먼 옛날 조선시대 선조들도 동해안에서 오징어를 즐겨 먹었을까. 사료가 보여주는 답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진상품 등을 기록한 동해안의 각종 사료에도 오징어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김태수 전 삼척시립박물관장은 “삼척지역 향토사료인 ‘척주지’ 등 각종 사료 기록을 살펴봐도 문어 연어 복어 등 여러 어·패류들은 자주 기록에 오르내리는데 이상하게도 오징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정룡 교수도 “강릉지역 향토 사서인 임영지(臨瀛誌)와 관동읍지를 비롯 강릉 출신인 허균 선생이 조선 팔도의 명산 식품을 소개하면서 남긴 종합 식품품평서서인 ‘도문대작(屠門大爵·푸줏간을 지나가며 입맛을 다시다)’등에 수산물이 많이 언급되는데, 동해안 오징어 기록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김영섭 전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장은 “조선시대에는 오징어 어법이 발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흔한 고기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즉, 오징어를 잡으려면 집어등 불을 밝히고, 채낚기 낚시를 하거나 넓은 바다를 그물로 훑어야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그런 어구·어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물고기였다는 것은 왕조실록에서도 확인된다. 문종실록에는 1452년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이 가장 먹고 싶어 한 물고기였다는 기록이 나오고, 전라도·경상도 일원에서는 임금에게 좋은 오징어를 진상하기 위해 수령 방백들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예전 한 때 결혼식 전날에 함진애비가 오징어를 얼굴에 쓰는 것이 풍습으로 자리 잡았지만, 조선시대 의례를 그린 그림이나 풍속화에서 오징어 가면을 쓴 장면을 찾기는 어렵다.

■명태는 조선시대에도 풍어 기록 즐비
반면 ‘명태’는 조선 후기들어 크게 발전하고 성행했다. 명태는 ‘임하필기(林下筆記 1871년)’ 등의 기록 그대로 조선시대(인조 때로 추청) 함경도 관찰사가 명천군(明川郡)을 순시할 때 내놓은 생선 맛이 좋길래, 명천의 명(明)자와 그것을 처음 잡았다는 태(太)씨 어부의 성을 따 명태(明太)라는 이름을 지어줬다는 유래가 전하는데, 조선 초기에는 그것을 잡았다는 기록조차 거의 없다가 후기들어 동해안 대표 어종으로 사서(史書)에 줄지어 이름을 올린다.
공식 사서에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효종 3년(1562년) 기록에 ‘명태’로 처음 언급되는데, “강원도에서 주상께 올리는 진상품 가운데 대구 어란(魚卵)에 명태란(명란)을 첨가해 막중한 진상을 더럽혔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더럽혔다’는 대목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대구 어란에 명란을 섞는 바람에 임금이 드실 막중한 진상이 더럽혀졌다니. 명란, 즉 명태알을 귀히 여기는 요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다.
너무 흔해서 명란은 진상품 취급을 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당시만 해도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후 조선후기 실학자인 서유구(1764∼1845년)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명태를 겨우내 말린 것이 동해안 원산에 집하됐다가 배나 말에 실려 각지로 운반되는데, 밤낮으로 인마(人馬)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고 기록, 동해안에서 명태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를 실감 나게 묘사했다.

또 이규경(1788∼1856년)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명태를 말린 건제품이 전국에 유통되는데, 매일의 반찬으로 삼고 여염(閭閻·일반백성)뿐 아니라 유가(儒家)에서도 이를 제사에 쓴다”고 기록했다.
‘국민 생선’ 오징어와 명태가 다시 돌아와야 동해안 어촌에 활력이 더해질 테니, 오늘 ‘귀하고 고마운 생선’을 기다리는 마음, 애가 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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