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위스키가 경기 남양주에서 익어가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와 한국산 효모, 타협 없는 제조 철학으로 빚은 ‘기원’은 이제 세계 무대에서 K-위스키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백봉산 자락에 자리한 기원 위스키 증류소. 지난 2020년 지은 1번 창고를 시작으로, 지금은 8개에 달하는 숙성 창고가 이곳을 둘러싸고 있다. 내부에는 5000개가 넘는 오크통이 층층이 쌓여 장관을 이룬다.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위스키’가 숙성되는 현장이었다.
“맥아를 차처럼 우려내는 당화 과정을 거쳐 단맛을 뽑아냅니다. 그 달달한 물에 효모를 넣고, 150시간 넘게 발효시키죠. 스코틀랜드보다 세 배 넘는 시간입니다. 한국적인 맛, 고추장처럼 매콤한 끝맛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도정한 기원 위스키 증류소 대표는 직접 주문 제작한 ‘롤스로이스급’ 증류기 앞에서 증류 과정을 설명하며 밝게 웃었다.
목 길이와 각도까지 치밀하게 조정된 이 증류기는 그가 원했던 위스키 맛을 구현하기 위해 주문 제작했다. 이 증류기를 거쳐 나온 원액은 알코올 도수가 70도에 달했다.
도 대표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소독제”라며 손바닥에 한 방울 떨어뜨려 향을 맡게 했다.
“다른 데선 이런 원주를 아예 팔지 않아요. 숙성되기 전에는 맛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다릅니다. 처음부터 맛있게 만듭니다. 타협 없이요.”
김지원 한세엠케이 대표는 “기원 위스키를 처음 맛봤을 때 그 깊은 풍미에 감탄해, 20주년을 맞은 우리 데님 브랜드 버커루와 꼭 협업하고 싶었다”며 지난 2023년 선보인 스페셜 에디션을 소개했다.
김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싱글 몰트위스키와 데님 브랜드의 의미 있는 컬래버로 여겨졌으면 했다”고 덧붙였다.
국내 최초로 싱글 몰트위스키를 만들기로 결심한 계기와 배경이 궁금하다.
예전에 수제맥주 회사(핸드앤몰트)를 운영하며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녔다. 처음엔 우리 맥주를 들고 갔는데 금방 동이 나더라.
그래서 면세점에서 일본 위스키를 사 가곤 했다. 그때마다 친구들이 ‘왜 한국 위스키는 안 가져오냐’고 물었는데 그 당시엔 한국산 위스키가 없었다.
물론 한국 위스키 브랜드는 있었지만, 원액이 국산이 아닌, 병입형 제품이었다. 그래서 ‘왜 한국 위스키는 없을까’ 고민하게 됐고, 나중엔 ‘이제는 만들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다. 핸드앤몰트를 매각한 직후였는데, 마침 저녁 식사 자리에서 투자자 친구가 ‘이제 한국에서도 위스키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말을 꺼냈고, 바로 마스터 디스틸러(증류사)를 찾기 시작했다.
원래 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제조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맥주 회사를 차릴 때도 미국에서 양조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데려왔고, 위스키를 시작할 때도 스코틀랜드에서 실력 있는 디스틸러를 모셔왔다. 나는 방향을 잡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다.
위스키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프리미엄화’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한국도 국내총생산(GDP)이 오르고 여유가 생긴 만큼 단순히 취하려고 마시기보다는 술의 스토리와 맛을 즐기려는 분위기가 생겨날 거라고 예상했다. 그 흐름을 미리 읽었을 뿐이다.
위스키 이름을 ‘기원’이라고 지었다. 어떤 의미인가.
‘기원’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딱 맞는 단어였다. 시작이라는 뜻도 있고, 우리가 세계적인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간절한 바람(hope)도 담았다. 한국 위스키의 ‘기원(origin)’이 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또 면세점이나 해외시장에서도 불리하지 않도록 외국인들도 발음하기 쉬워야 했다.
처음엔 다른 이름들도 고민했지만 발음이 어렵거나 기억하기 힘들어서 결국 ‘기원’으로 정했다. 처음부터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다.
그 전에는 한국에 싱글 몰트위스키가 없었나.
한국에서 싱글 몰트위스키를 만든 건 우리가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없었다.
1980년대에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 주도로 위스키를 만들긴 했지만 대부분 블렌디드였고, 해외에서 원액을 들여와 병입만 하는 형태였다.
당시에는 고급 위스키를 소비할 인프라도 없었고, 제품 품질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수출도 어려웠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식처럼 한국 위스키도 해외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해외 싱글 몰트위스키와 비교하면 기원 위스키는 어떤 차별점이나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가장 큰 경쟁력은 ‘맛을 위해 타협 없는 원액 생산’과 ‘발효 공정’에 있다. 우리는 숙성에 유리한 위도인 38선에 위치해 자연적으로 숙성이 잘되는 환경을 갖췄다.
그보다 더 중요한 차별점은 발효와 원주의 품질이다. 효율보다 ‘맛’을 최우선으로 원액을 만들며, 발효 과정에서 한국산 효모를 30% 사용한다. 나머지 70%는 스코틀랜드 효모를 사용하는데, 한국 효모는 제빵용 효모로, 일반적으로 위스키에서는 쓰지 않는 방식이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 이 효모가 가장 깊고 풍부한 맛을 낸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현재까지도 이 조합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조합은 다른 나라에서 그대로 따라 하기 어려운 독창적인 방식으로, 기원 위스키의 고유한 풍미와 깊이를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또 일본 위스키가 깊은 감칠맛을 갖췄다면, 우리는 된장찌개처럼 강한 풍미와 묵직한 끝맛이 특징이다. 이걸 위해 우리는 일반 증류소보다 2~3배 긴 발효 시간을 거치고 있다.
장시간 발효하면 효모에 스트레스가 가해지고, 그로 인해 더 풍부한 에스터(알코올과 산이 결합해 만들어진 화합물) 성분이 생성된다. 덕분에 기원 위스키는 복합적인 향과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이게 우리의 진짜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위스키에 대한 해외 반응도 뜨겁다.
싱가포르 위스키 라이브에서는 작고 구석진 부스였음에도 판매량 상위 5위 안에 들었고, 태극기만 걸어도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작년 런던 위스키쇼에서도 우리 부스는 작았지만, 전체 수백 개 브랜드 중 판매량 10위 안에 들었다. 심지어 일본 산토리, 야마사키 관계자도 직접 우리 부스를 찾아와 시음을 요청했을 정도다. 자부심을 느꼈다.

위스키의 맛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로 ‘기후’를 꼽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곳의 기후가 위스키 숙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들었다.
기원 위스키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남양주의 기후다. 이 지역은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해서 맥주 양조장도 많다. 우리도 이 물 때문에 여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기후에 있다. 남양주는 여름엔 매우 덥고 겨울엔 몹시 춥다. 특히 1월 한 달 동안은 뒤편 백봉산 때문에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런 극단적인 온도차가 위스키 숙성에 아주 유리하다. 오크통은 나무니까 여름에는 팽창하고, 겨울에는 수축하면서 안팎으로 원액을 주고받는다.
스코틀랜드는 연중 내내 서늘해서 나무가 거의 수축 상태로만 있고, 대만은 덥기만 해서 항상 팽창 상태다.
반면 우리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보니 팽창과 수축이 반복돼 숙성이 훨씬 잘된다.
그래서 우리 마스터 디스틸러는 ‘한국은 세계에서 숙성이 가장 잘되는 나라’라고도 말한다. 실제로 남양주에서 1년 숙성하면 스코틀랜드의 5년 숙성과 맞먹는다고 할 정도다. 해외에서도 이 점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 국내 위스키 시장의 트렌드나 소비자 반응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위스키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비가 줄어든 건 저가 로컬 위스키다. 유흥주점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제품들이 수요가 급감하면서 시장이 작아졌다.
반면 프리미엄 싱글 몰트위스키 시장은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주류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젊은 소비자층을 겨냥한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마실 때 사진을 찍고 SNS에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라벨·패키징 디자인도 클래식한 스타일에서 컬러풀하고 젊은 감각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최근 제품 라인업은 한복의 색상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으며, 여성 소비자와 젊은 층을 겨냥해 브랜드 전체의 정체성도 더욱 부드럽고 세련되게 재정비했다. 애초에는 40대를 타깃으로 설정했지만, 실제 구매 패턴을 분석해보니 20~30대의 반응이 더 뜨거워 전략 방향을 전환했다.
기원에서는 여러 가지 위스키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각 제품의 특징이나 차별점은.
우리는 2023년 2월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위스키 배치( 한 번에 증류하고 숙성해 병입한 동일한 위스키 묶음)를 선보였다. 다양한 오크통에서 숙성한 6종을 시장에 먼저 내놓고 반응을 본 뒤, 세 가지 시그니처 시리즈를 확정했다. 바로 호랑이, 독수리, 유니콘이다.
호랑이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달콤한 셰리 오크통 숙성 위스키고, 독수리는 미국산 오크통에서 숙성된 제품이다. 유니콘은 스코틀랜드 스타일의 스모키한 풍미를 담았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제품은 단연 호랑이 에디션이다. 한국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모티브로 했고, 대중적으로 선호되는 셰리 캐스크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풍미 덕분에 반응이 좋다.
애호가 사이에서는 유니콘의 인기도 높다. 유니콘은 최근 세계 최대 위스키 대회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 월드 스피리츠 컴페티션(SFWSC)’에서 ‘베스트 싱글 몰트위스키’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종 수상 결과는 오는 9월 발표 예정이며, 현재는 세계 5위 안에 드는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된 상태다.
국내와 해외에서는 각각 어떤 방식으로 판매하는지.
현재 기원 위스키는 미국, 영국, 일본을 중심으로 총 12개국에 수출하며, 면세점 채널에도 입점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는 프랑스· 독일·중국 진출도 준비 중이다.
국내 유통은 편의점 판매가 1위다. 처음에는 고가 제품이라 편의점에서 팔릴까 싶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편의점이 프리미엄 주류의 주요 채널이 되고 있다.
초기에는 바틀벙커, 와인앤모어 같은 주류 전문점에서 판매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통주 전문 매장에서도 굉장히 잘 팔린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전통주를 사러 갔다가 ‘한국에도 싱글 몰트위스키가 있다’는 걸 알고 관심을 갖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어떤 연령대나 성향의 고객들이 많이 찾아오는지 궁금하다.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에는 작년 기준 수천 명이 방문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23세 이하의 젊은 층이었다. 특히 여성 비율이 절반에 달했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라고 한다.
한국 여성들이 새로운 경험에 적극적이고 ‘욜로(YOLO)’ 성향이 강한 점이 주된 배경으로 분석된다.
투어 수요 증가에 발맞춰 남양주시와 협력해 ‘비지터 센터(Visitor Center)’도 조성 중이다. 오는 가을 오픈 예정인 비지터 센터에서는 시음, 판매, 브랜드 역사 체험 프로그램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서울에서 양조장까지 셔틀 운영도 검토 중이다.
우리나라에 위스키 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한국 위스키 문화가 더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주세 제도 개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종가세’ 방식으로, 판매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위스키에 붙는 세금이 무려 92%에 달한다.
반면 선진국 대부분은 양(도수나 용량 기준)으로 매기는 ‘종량세’ 방식을 택하고 있다. 현 제도는 수입 주류보다 오히려 국산 위스키에 불리하게 작용하며, 국내 위스키 산업 활성화에 큰 장벽이 되고 있다.
제도만 바뀌어도 다양한 소규모 증류소의 진입이 가능해져 시장 자체가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일본만 해도 증류소가 500개가 넘고, 위스키 시장 규모는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기원 위스키가 한국을 대표하는 위스키가 돼 국내 위스키 시장을 선도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후배들을 위해 길을 닦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먼저 시작해서 ‘한국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위스키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더 많은 후배와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께 시장이 성장하길 바란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기원이 일본의 야마자키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위스키’로 자리 잡는 것이 꿈이다.
이정은 기자
lee.jeongeun2@joongang.co.kr
김지원
한세예스24홀딩스의 자회사인 한세엠케이를 이끌고 있는 김지원 대표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뉴욕 International Culinary Center와 르 코르동 블루,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대학원, 요리 아카데미 츠지원에서 요리를 공부했다.
이후 예스24에 입사하여 경영훈련을 받은뒤 2019년 한세엠케이 대표직에 올랐다. 한세엠케이는 현재 모이몰른, 나이키 키즈, 버커루, NBA 등 유아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대 라이프웨어를 선보이며 패션을 넘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까지 아우르는 비즈니스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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