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가 힘들다 vs 축구가 힘들다’
이 질문을 선수들에게 직접 해본 적이 있다. 그것도 프로야구 선수와 프로축구 선수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지난 1월 KIA 타이거즈와 광주FC 선수들의 만남을 주선했었다.
KIA에서는 박찬호, 박정우, 이의리, 김도영, 김민주가 자리했고, 광주FC에서는 지금은 울산HD로 떠난 이희균을 필두로 하승운, 박태준, 김진호, 정지훈이 나왔다.
이 모임의 시작은 이희균의 인터뷰였다.
지난 시즌 광주에는 그야말로 김도영 열풍이 불었다. 어디 가나 김도영 이야기가 나왔고 축구 선수들에게도 김도영은 ‘핫한 선수’였다.
종종 김도영을 응원하는 말을 했던 ‘부주장’ 이희균은 KIA의 우승이 확정된 뒤 “팀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그런데 KIA 타이거즈가 우승해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경기 다 봤다. 우승할 줄 알았지만 축하한다”며 “한 지붕 아래 KIA, 광주 모두 다 잘됐으면 좋겠다. 구단끼리 초대도 하고, 소통도 하면서 서로 야구도 배우고, 축구도 배우고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이희균의 이야기를 접한 KIA 선수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야구로 우승을 한 KIA지만 이들도 발로 하는 공놀이도 좋아한다. KIA 야수들이 우승 야유회에서 ‘족구’를 하는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비시즌에는 KIA 풋살팀도 운영된다.

운동 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유니폼까지 맞춰 입고 풋살을 하는 KIA 선수들은 이희균의 초대에 설레는 마음으로 광주축구전용구장을 찾았다.
그렇게 낯선 조합의 어색한 만남이 이뤄졌다. 같은 스포츠 선수들이자 그라운드 밖에서는 보통의 청년들인 이들은 이내 친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웃음꽃이 폈다.
‘야구가 힘들다 vs 축구가 힘들다’라는 주제를 던지자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야구가 안 힘드니까 경기를 매일매일 하지 않나”라는 정지훈의 이야기에 KIA 선수들은 박수를 보냈다. 생각하지 못했던 답변인데 ‘그럴 수도 있겠네?’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 묘한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홍명보 리틀 축구부 출신이라는 박정우는 “야구는 단거리 위주인데 축구는 계속 뛰어야 하니까 내 기준으로는 축구가 힘든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하승운은 “힘든 건 축구인데 멘탈, 심리적으로는 야구가 한 수 위다”며 두 종목의 세밀한 차이를 이야기했다.
1주일에 한 경기가 있는 축구와 1주일에 한 번 쉬는 야구. 박찬호는 ‘1경기’와 ‘6경기’를 놓고 설명을 하기도 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리가 힘들다”였지만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온 끝에 대충 “유산소 쪽은 축구가 힘든데, 체력 소모는 야구가 더 많다”로 결론이 났었다.
같은 구기 종목이지만 야구와 축구의 결은 많이 다르다. 뭔가 접점이 없는 것 같은 종목이기도 하다. 관중석의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가끔은 두 종목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기도 한다.
다름이 많았던 야구와 축구, KIA와 광주FC가 하나가 됐다.
지난 12일 밤 ‘야구 도시’ 광주 곳곳에서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순간처럼 광주 스포츠팬들은 저절로 터진 함성을 멈출 수 없었다.
이번에는 야구가 아니라 축구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이날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는 광주FC와 일본 비셀 고베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16강 2차전이 열렸다.

지난 시즌 J리그1 우승팀인 고베는 선수단 연봉으로 따지면 광주보다 3배 몸집이 큰 골리앗이다. 수치를 들여다봐도 광주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 같았다.
광주FC가 1차전에서 0-2로 졌기 때문에 일단 두 골 차 이상으로 앞서야 연장전을 갈 수 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앞선 리그 스테이지에서도 광주FC는 고베에 0-2패를 기록했었다. 무엇보다 이 두 경기에서 기록된 광주FC의 유효슈팅은 ‘0’이었다.
골은커녕 유효슈팅 하나 만들지 못했던 강적을 상대로 2골 차 이상의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광주FC는 연장 후반 13분 터진 아사니의 원더골로 3-0 승리를 거두면서, K리그 시도민구단 사상 처음으로 8강행 티켓을 차지했다.
경기장에 내걸린 ‘우리는 불가능의 반대말이다’, ‘1%의 가능성, 99%의 믿음’이라는 현수막처럼 광주FC는 기적 같은 승리를 만들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왔던 광주FC 이정효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말로도 화제를 모았다
이정효 감독은 아시아 축구팬들의 시선이 쏠린 이 자리에서 “KIA 타이거즈 김도영 선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왜 그런 날 있잖아요. 뭘 해도 될 것 같은 날’.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하면서 눈빛부터 달랐고 자세도 달랐고 믿음이 갔다. 그래서 오늘 기대가 많이 됐다”는 특별한 승리 소감을 밝혔다.

김도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박태준에게 받은 광주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올리며, 이정효 감독의 이야기에 화답했다. 이정효 감독의 말과 김도영의 사진에 광주와 KIA는 함께 주목을 받았다.
광주FC의 이번 승리는 다른 팀을 응원하는 축구팬들에게도, 축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지난 시즌 많은 KIA팬들에게 소름 돋는 순간들을 선물했던 김도영도 광주FC의 역전승에 감동을 했고 응원도 약속했다.
앞서 표현한 것처럼 광주는 야구도시다. 오후 6시 30분이면 어느 식당을 가도 KIA 중계가 틀어져 있다.
뜨거운 인기를 자랑하는 KIA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리그 최다 우승팀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모기업 기아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KIA는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구단이 됐다.
같은 광주를 연고로 하는 광주FC 입장에서 KIA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챔피언스필드를 가득 채운 팬들과 구단의 아낌 없는 지원은 광주FC에 타는 목마름이었다.
관심을 기다려왔던 광주FC는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경기로 ‘주인공’이 됐다.
흔히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구기 종목을 ‘그깟 공놀이’로 표현한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해도 ‘그깟’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에 따라서 기분이 달라지기도 하고, 짜릿한 승부의 여운에 취하기도 한다.
‘그깟 공놀이’를 통해서 인생도 배운다.
‘뭘 해도 될 것 같은 날’을 말한 이정효 감독은 선수들과 1%의 가능성에 집중했다. 팬들의 이야기처럼 99%는 불가능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자신과 팀 그리고 승리에 대한 믿음.
김도영이 쏘아 올린 ‘그런 날’은 역사적인 승리가 쓰인 날 KIA와 광주를 하나로 묶었다.
‘야구가 힘들다 vs 축구가 힘들다’라는 주제의 답은 모르겠다. 사실 알 수가 없다. 힘듦의 기준도 다르고, 두 종목을 모두 경험한 프로 선수도 없다.
하지만 야구와 축구, 두 종목을 두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공은 둥글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것.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