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전원일기'를 통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배우 김혜정. 그녀는 1980~90년대 한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였다. 맑고 건강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김혜정은 1988년, 시인이자 스님으로 활동했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대중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결혼이었지만, 그들의 부부 생활은 영원하지 않았다. 결혼 15년 만인 2003년, 김혜정은 이혼이라는 아픈 결정을 내리게 된다. 겉으로는 여전히 밝게 웃던 그녀였지만, 그 이면에는 상처가 깊게 남아 있었다.

이혼 후 찾아온 대인기피증과 깊은 고독
이혼 후 김혜정은 한동안 극심한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사랑받는 스타였던 만큼, 대중의 관심과 시선은 때로 그녀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친근하고 밝은 이미지로 대중과 소통했던 김혜정이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사람을 향한 불신과 두려움이 커져갔다. 방송 활동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꺼리게 됐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그녀에게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전원일기 촬영지에 뿌리내린 새로운 삶
김혜정은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전원일기의 실제 촬영지였던 마을로 눈을 돌렸다. 그곳은 한때 그녀가 배우로서 활약했던 추억이 서린 장소였다. 마을 이장이 추천한 매물, 1000평 가까운 대지 위에 자리한 오래된 저택을 그녀는 2002년에 매입했다. 이혼 전 이미 그곳으로 이주를 결심했던 셈이다. 낯선 도시보다 오히려 익숙한 전원의 고요함이 그녀에게는 위로가 됐다. 물론 전원생활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농사일, 잡일, 외로움까지 모두 김혜정이 직접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에게 맞는 삶을 찾고자 하는 의지 하나로 버텨냈다.

200년 된 소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
김혜정이 거주하고 있는 저택에는 특별한 존재가 함께하고 있다. 바로 수령 200년이 넘은 소나무다. 이 소나무는 집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견뎌낸 존재로, 김혜정에게는 일종의 버팀목 같은 존재다. 그녀는 소나무를 바라보며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고 말한다. 변화무쌍한 연예계 생활과는 달리, 소나무처럼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는 삶을 선택한 김혜정. 이 오래된 나무는 그녀의 새 삶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주고 있다. 도시의 소음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내는 그녀의 일상은 겉으로 보기에 단조롭지만, 누구보다 충만한 삶일지도 모른다.

심리학 박사 과정에 도전한 이유
놀랍게도 김혜정은 현재 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오랜 시간 외로움과 싸워온 그녀는 스스로의 상처를 마주하면서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다. 단순한 취미 수준이 아니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심리학 공부는 그녀에게 또 다른 치유의 과정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여전히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곳에서, 김혜정은 조용하지만 확고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과거의 스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성장해가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지금 더 빛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