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은의 시선] 새벽빛에 이름을 묻다

노동절 연휴의 첫날, 가족과 함께 상하이의 루쉰공원을 찾았다. 햇살이 여름을 불러오듯, 하늘은 말간 파랑으로 가득했다. 공원 입구마다 펼쳐진 형형색색의 꽃들은 저마다의 빛깔로 살아 숨을 쉬었고, 방문객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곳곳을 채웠다. 우리 가족도 자연스레 그 흐름에 섞여, 순간의 기쁨을 마음 깊은 곳에 남겼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땅 위 작은 별 무리처럼 흩어져 지나가는 걸음마다 반짝임을 남겼다. 비 온 뒤 느껴지는 맑은 흙냄새가 바람결에 실려 와 코끝을 간질였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흙길의 감촉이 온몸을 편안하게 했다. 계절이 가져다주는 미묘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공원 안쪽, 윤봉길 의사 기념관으로 가까워질수록 사람들로 붐볐다. 단체 관람객이 가이드의 해설을 한국어로 듣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낯선 타국에서 접한 모국어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윤봉길 의거 현장'이라 새겨진 기념비를 지나자, 붉은 기와를 얹은 전시관 앞에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고, 어른들은 안내원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공간 가득 역사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자, 누렇게 바랜 유물들과 의사의 흉상이 조명 아래 시대의 아픔을 전하고 있었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는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던진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나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큰아이 손을 꼭 잡은 채 아이에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갑자기 아이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결의 가득한 표정에서 선조들의 희생이 지금 우리 삶과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좁은 계단을 따라 2층 영상관에 오르니, 윤봉길 의사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고민, 독립운동에 투신하기까지의 궤적이 잔잔한 영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화면에는 소박한 풍경과 서툰 글씨로 써 내려간 결의가 펼쳐졌고, 그 모습이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손짓 한번 없이 한 사람의 진심이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윤봉길 의사는 우리 역사 속 한 줄기 새벽빛 같은 존재로 남았다. 짙은 어둠이 걷힌 새벽의 첫 빛처럼, 그의 이름은 희망과 용기로 다가온다. 그는 거센 억압에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세상을 밝히는 불씨가 되었다. 윤 의사의 용기와 희생은 빗방울이 땅에 스며들 듯, 우리의 일상과 마음에도 깃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념관을 빠져나오며, 역사의 이름이 결코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새롭게 깨달았다. 윤봉길 의사는 우리에게 책임과 헌신의 의미를 묻고 있었다. 그분이 보여준 강한 의지와 뜻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 위에 오늘의 자유와 평화를 가능하게 했고, 우리는 그 뜻을 이어받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그럴 때마다 윤 의사의 용기를 떠올리며,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길은 언제든 새로 트일 것이라는 희망이 솟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념관에서 스며든 작은 다짐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이 벅찬 다짐과 따뜻함이, 바람을 타고 다른 이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어 닿을 수 있을까. 오늘의 이 마음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작은 꽃으로 피어나,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빛으로 오래오래 남길 바란다. 루쉰공원에서 만난 윤봉길의 용기와 희생, 그리고 거기에 깃든 우리 모두의 희망을 기억하며, 다음 세대에도 이 값진 마음이 전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