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서점의 망한 이유에 숨은 열쇠 [컬처노믹스 : 두 전직 서점지기의 辨]
대한민국 문화혈관 복구 프로젝트
에필로그 1편 전 서점 주인 인터뷰
독립서점 가치 한번쯤 따져봐야
공익적 상업적 공간 창출 가능해
지방 소멸 풀 열쇠로 작용할 가치
대구와 화성(경기도)은 인구가 적지 않다. 대구는 광역시고, 화성은 최근 동탄신도시가 생기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도 서점이 문을 닫는다. 이유가 뭘까. 우리가 독립서점의 가치를 놓친 결과인 건 아닐까. 망한 사장님의 이야기를 통해 컬처노믹스의 열쇠를 찾아봤다.
인구가 없는 지역에서 문을 여는 서점이 있는가 하면 '광역시'나 '신도시' 주변에 있어도 문을 닫는 서점이 있다. 대구광역시에서 '시인보호구역'을 운영했던 정훈교 시인과 경기도 화성시에서 '바다숲책방'을 열었던 안해림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각각 진행했지만 기사에서는 안해림 대표와 정훈교 시인의 답을 함께 묶었다.
✚ '시인보호구역'은 대구, '바다숲책방'은 경기도 화성에 있었죠. 문을 닫기 전까지 어떤 서점을 꿈꾸셨나요?
안해림 대표(이하 안해림): "2022년 6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책방을 운영했습니다. 제 취향대로 고른 공간이었어요. 슬로건은 '취향의 시작이 되는 책방'이었고요. 손님들께 책 취향의 기준을 제안하는 책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정훈교 시인(이하 정훈교): "2012년에 시인보호구역을 시작했을 때는 서점보다는 열린 공간에 가까웠어요. 특히 지역 작가의 시집을 알리려 했죠. 그러던 2015년 봄에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서점을 시작했습니다. 지역 작가를 알리는 곳, 그게 목표였죠."
✚ 문은 닫았지만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었는지요.
안해림: "「대도시의 사랑법」 등을 쓴 박상영 작가님과의 북토크가 기억에 남아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신청했고 미참석자도 없었습니다. 정말 박상영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분들만 모인 것이 공기로 느껴졌어요."
정훈교: "시인보호구역을 애써 찾아주신 많은 시인이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강사료나 출연료를 많이 드릴 수 없었는데도 거절한 분이 한명도 없었어요. 오히려 초청 작가분께서 금일봉을 주신 적도 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죠."
✚ 바다숲책방과 시인보호구역은 지역에서 나름의 문화 거점 역할을 했었네요. 그런데도 왜 문을 닫았는지요?
정훈교: "실질적인 문제는 결국 돈이었어요. 월세 60만원에, 수도요금과 전기요금까지 포함하면 100만원에 달했죠. 강의를 하거나 돈을 벌려고 자리를 비우면 책방을 열지 못한다는 한계도 있었어요. 지역문화를 위해 여러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는데, 사람이 안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안해림: "서점이 돈벌이가 안 되는 건 알고 시작했지만 문을 닫은 결정적인 계기는 전망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동네에서 자리를 잡으면 지속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혼자 헤쳐나가기엔 쉽지 않았어요. 적자를 면한 달이 한번도 없었을 정도니까요."
✚ 서점을 위한 정부 지원사업이 있긴 한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안해림: "서점지원사업의 원칙은 행사비로 소진하는 거예요. 서점 운영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기보단 그 행사로 서점을 알리고 행사 참석자들이 책을 구매했을 때 수익이 남는 식이죠. 서점 운영자의 행사기획비용이나 인건비는 책정되지 않는 구조여서 한계가 분명합니다."
정훈교: "지역서점이라고 다른 지원사업이 있는 건 아니에요. 수도권에 있는 서점들과 똑같이 경쟁해서 사업을 따오는 구조죠. 대구나 지역사회에서도 별도로 서점을 지원하는 사업은 없었습니다. 지역 공공도서관에서 700만원가량의 도서를 구매한 게 전부였죠."
독립서점의 운영이 어려운 건 정부 지원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반 소비자는 잘 모르는 '공급률'이 발목을 잡는 경우도 숱하다. 일반 기업에 '원가'가 있는 것럼 서점에도 책을 공급받는 금액인 '공급률'이라는 게 있다. 대략 70~80%다. 더 나아가서는 책 자체를 공급받지 못해 팔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 서점도 결국 경영을 해야 하는데 공급률, 책 수급 방식 등이 어렵진 않았나요?
정훈교: "지방에선 책을 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발품을 정말 많이 팔아서 유통사를 겨우 찾았습니다. 중간 유통사, 출판사 통해서 공급률은 70% 전후로 받았습니다."
사실 독립서점의 경영난을 조명하는 건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정부 지원 문제도, 공급률 이슈도 숱한 미디어에서 지적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독립서점에 어떤 역할이 있는지 발굴하는 것이다.
✚ 지역에서 서점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듯한데, 다소 아쉽습니다.
안해림: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독립서점은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 절대 줄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동네 서점은 사람들이 책을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주죠. 베스트셀러 대신 책방지기만의 취향으로 고른 책을 볼 수 있고 다른 곳에서는 안 보이는 책을 만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무명 작가나 작은 출판사가 기회를 얻기도 하죠."
✚ 독립서점이 독자나 출판사에 일종의 기회를 준다는 거군요.
안해림: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독립서점은 점점 사라지는 건전한 토론의 공간을 오프라인으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상업 공간이지만 동시에 공익적 가치도 있는 셈이죠."
정훈교 : "같은 생각입니다. 전 독립서점이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자본으로 운영하는 것이니 운영 방식은 각자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만요. 지역서점은 지역문학을 가장 앞서서 경험하는 곳입니다. 서울 중심, 자본 중심의 문학에서 탈피할 수 있는 곳이에요."
'텍스트 힙'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남과 다름을 꾀하는 MZ세대가 '책을 읽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는 거다. 독립서점은 이런 면에서 텍스트 힙을 키우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서점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다"는 정훈교 시인의 말에 답이 있다는 거다.
독립서점은 사람을 모으고, 문화를 만들며, 상업적이든 공익적이든 또다른 '장場'이 될 수 있다. 정부 정책 역시 '단순한 지원'을 넘어 또다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컬처노믹스를 통해 지방 소멸의 문제를 풀어내는 작은 열쇠가 될 수 있다.
✚ 앞으로 서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안해림: "요즘 누가 책을 읽느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계속해서 책방을 열 겁니다. 여기에 문화적 가치를 얹는다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열릴 수 있겠죠."
정훈교: "서점을 살리고 싶다면 책 외에 책과 어떤 방식으로 독자를 만나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자본으로 밀고 들어오는 대형서점과의 차별점도 찾아야 하고요. 그 지점을 저는 사랑방이나 지역 커뮤니티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정신이 무너지는 현실에서 서점이 빈 공백을 채운다면 독자에게 사랑받지 않을까요? 그런 서점을 또 만들어나가기 위해 저도 준비 중입니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 더스쿠프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kr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