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박'

여름 들녘의 초록빛이 짙어지는 요즘, 한때는 흔했지만 이제는 보기 힘든 채소가 있다. 어릴 적 전래동화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던, 마음씨 좋은 흥부가 제비를 돌본 뒤 받았던 '박'이다.
박은 수많은 민담에 자주 등장하며 민족의 서사 속에 깊이 자리했다. 실제로 조선시대 그림에 묘사된 초가집 지붕 위에는 잘 말린 박이 얹혀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속을 긁어낸 박은 나물로 무쳐 여름철 별미로 식탁에 올랐고, 단단한 겉껍질은 오래 두고 두고 쓸 수 있는 생활 도구로 활용됐다.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두고두고 쓸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식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박을 맛볼 수 있는 곳도, 재배하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에 집집마다 박 넝쿨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 많던 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 민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박에 대해 알아본다.
삼국시대부터 널리 재배한 '박'

참조롱박, 박덩굴, 포과라고도 부르는 박은 쌍떡잎식물 박목 박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원산지는 인도와 아프리카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널리 재배한 것으로 유추된다.
청록색의 줄기는 전체에 짧은 털이 있으며, 덩굴손으로 주변의 물체를 감으면서 뻗는다. 또한 생장이 왕성하고 각 마디에서 많은 곁가지가 나온다. 잎은 어긋나고 심장형이나 콩팥모양으로 얕게 갈라지며, 나비와 길이가 20∼30cm이고 잎자루가 있다.
7~8월에 피는 흰색의 꽃은 암수가 나뉘어 있지만 한 가지에 피는 일가화다. 꽃은 잎겨드랑이에 1개씩 달리고 수꽃에 긴 꽃자루가 있으며, 암꽃의 꽃자루는 짧은 편이다. 이 꽃은 오후 5~6시경에 피고, 다음날 아침 5~7시에 시든다.
열매는 다소 편평한 구형으로, 종류에 따라 다르나 보통 수정 후 10일경부터 급격히 커지기 시작해 15~20일이면 무게는 5~6kg, 지름은 30cm 이상으로 커진다. 이 때가 박고지용 등 식용으로 활용하기 적당한 시기다. 수정 25일 후부터는 박 고유의 모양이 잡히고, 40~45일에 걸쳐 과피가 딱딱하게 굳는다.
예로부터 전해진 박 요리법

박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먹거리로 활용된 채소다. 1766년 집필된 농업서인 '증보산림경제'부터 1931년 언론사인 동아일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서적과 매체에 박 요리에 대한 기록과 소개가 남아있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작게 자른 박 조각과 쌀로 죽을 쑤며, 돼지고기나 닭고기, 굴을 더하면 맛이 좋다고 기록돼 있다.
1800년대 말 저자 미상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는 박나물을 만드는 법이 기록돼 있다. 이에 따르면 어린 박의 껍질을 벗기고 얇게 썬 뒤 다진 소고기, 표고버섯, 석이, 실고추, 파와 함께 볶으면 맛이 좋다고 전해진다. 이때, 간은 진한 간장으로 하며, 볶은 다음에 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무친다.
1924년 일제강점기의 학자였던 이용기는 조선의 요리를 만드는 법과 가공법에 대해 저술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집필했는데, 여기에도 박 요리에 대한 서술이 남아 있다. 이에 따르면 박의 속살과 함께 양념한 고기를 맑은 장국으로 끓여먹는다고 한다.
깔끔하고 아삭한 박 먹는 법

현대에는 박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지만, 여전히 여름철 별미로 먹는 경우도 있다. 특히 다양한 간장, 들깨가루, 고추장 등 양념을 이용해 무친 박나물은 깔끔한 맛과 아삭한 식감 덕분에 밥반찬으로 먹기 좋다. 칼슘이 풍부한 박은 단백질이 많은 닭가슴살이나 새우 등과 잘 어울려, 이를 곁들이면 더욱 좋다.
충청도에서는 박김치를 담가 먹기도 한다. 만드는 법은 간단한데, 어린 박을 씻어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갈라 속을 긁어내고 두께 5mm로 가로로 썰어 소금에 절인다. 배는 껍질을 벗겨 4등분한 뒤 박과 함께 썬다. 절인 박은 헹군 후 배와 함께 양념해 담고, 심심하게 간을 맞춘 김칫국을 붓는다.
이렇게 완성된 박김치는 옥 같은 빛을 내는 정갈한 모습과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상에 낼 때는 위에 잣을 동동 띄워서 마무리한다.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안성맞춤인 박

박은 비타민이 풍부해 시력과 면역 기능 유지에 도움을 주며, 피로 회복에도 효과적이다. 베타카로틴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지방 연소를 돕고,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 식단에 적합하다.
게다가 칼슘과 인, 철분과 엽산 등 각종 미네랄과 무기질이 많이 함유돼 있어 많은 영양소를 필요로 하는 임산부에게도 좋고, 칼륨이 많아 소변배출을 돕고 부종을 완화하는 효능도 가지고 있다.
단, 기본적으로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냉증이 있는 사람이 섭취하면 복통,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비장, 위장이 약한 사람은 섭취를 피하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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