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끌어올린 은행들…떨어지는 명분
시장 역행…기존 대출 차주까지 금리부담 커져
한국은행 기준금리 내려도…당분간 '그림의 떡'
주요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상품의 금리를 연이어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길고 길었던 '고금리 시대'의 종말을 기대했지만, 정작 은행들은 이에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리는 것은 가계부채 증가 억제를 위해서다. 다만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는 것이 신규 대출은 물론이고 기존 대출차주들의 이자부담까지 키워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더 많은 이자수익을 내고 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증가 억제를 바탕으로 배만 불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3개월간 20번 넘게 대출 금리 올린 은행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주요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개인신용대출의 금리를 0.1~0.2%포인트 가량 끌어올렸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이들 은행들은 지난 7월 이후 이들 은행들은 20차례에 가깝게 가계 대출 상품의 금리를 끌어올렸다.
은행들이 최근 대출 상품 금리를 끌어 올리는 것은 가계대출 증가세 억제에 쐐기를 박기 위해서다. 앞서 금융당국이 은행의 가계대출 상승세에 대한 우려를 내놓자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대상 축소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가계대출 취급에 보수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효과는 있었다. 지난 8월 이들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9조원 이상 폭증했었지만, 9월에는 8월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은행들은 당분간 가계대출의 증가세가 축소될 것으로 봤다. 다만 은행들은 아직도 가계대출의 증가세가 높다는 판단아래 대출 금리를 더 끌어올려 대출 수요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은행 관계자는 "9월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속도가 8월에 비해서는 더뎌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본 것"이라며 "기존에는 유주택자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제한했는데, 이로 인한 풍선효과 등을 차단하기 위해 신용대출 등의 금리를 끌어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억제 명분…떨어지는 설득력
은행들이 가계부채 증가 억제라는 명분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신규 대출 수요를 꺾는 효과는 있을 지 모르겠으나, 기존 대출 차주들의 대출 부담 역시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끌어 올린 것은 신규 대출 차주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대출차주들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대출 차주별 가입한 상품의 금리의 변동 주기에 따라 금리가 변화하는 상황인데, 일단 은행이 정한 대출 상품들의 금리가 올라간 만큼 이들 차주들도 금리 변동시기가 오면 대출 이자가 상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출 상품군에 대한 금리를 조정할 수는 있지만 개별 대출별 금리는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개별 대출 차주가 금리가 높다고 판단될 경우 금리인하요구권 등을 개별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가계의 이자부담은 높아지지만 은행들은 가계대출 억제라는 명분 아래 이자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올해 상반기 은행들의 이자이익은 29조8000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금감원 역시 이같은 행태를 꼬집었지만 당장 뾰족한 수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서도 가계부채를 억제하는 수단을 고민하고는 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은행들의 노력 외에 정책적인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리인하, 당분간은 그림의 떡
일단 은행권에서는 올해에는 가계부채 관리 목표가 명확해졌기 때문에 대출 금리가 인하하는 시점은 내년이 되고 나서야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은행 관계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이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곧장 반영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특히 지금은 가계부채, 주택가격 상승 등에 대해 정책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이를 곧장 반영하기는 어려워 어느정도 시차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과거 은행들은 가계의 이자부담 절감이나 가계의 소득 증가를 위해 기준금리가 변동되면 이를 즉각 대출 혹은 예·적금 상품에 반영하기도 했었지만, 이번에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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