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SVB 파산 쇼크] 美 은행 잠재손실 6000억 달러… `제2 리먼 사태` 치닫나

이윤희 2023. 3. 1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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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리먼 이후 최대 파산
'닷컴 버블' 악몽 다시 떠올라
은행 보유채권 평가손 눈덩이
SVB 다음 차례 '모기지' 부실
투자자들 주식·채권 탈출 러시
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의 자금원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선언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대규모 은행이 폐쇄된 것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금융시스템 위기 가능성에 투자자들은 주식에서 돈을 빼 채권과 금을 비롯한 안전자산으로 대피하는 분위기다.

◇은행주 폭락= 위험자산인 주식의 투매세가 미국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SVB의 22억5000만달러 증자 계획이 무산되고 예금 인출 사태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소식에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물론 S&P500, 나스닥지수가 일제히 급락했다. 은행주와 기술기업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다우존스는 1.07%, S&P500은 1.45%, 나스닥 지수는 1.75% 하락했다.

나스닥 시장은 장 시작 전 거래에서 최대 68% 추가 폭락하던 SVB 주식의 거래를 중지했으며, 금융당국이 SVB의 영업을 중단시키고 파산 절차에 돌입하면서 특히 은행주들의 폭락이 두드러졌다. 퍼시픽웨스턴 은행의 지주회사인 팩웨스턴 뱅코프는 35.5%, 웨스턴얼라이언스 은행은 23.8%,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14.8% 동반 폭락했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 주가가 장중 20% 이상 폭락했다.

SVB 사태의 여파는 미국 밖으로도 급속히 전염됐다. 10일 코스피지수는 약 한 달 반 만에 2400선을 밑돌았다. 홍콩 항셍지수는 3.04%,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1.67%,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4% 각각 하락했다. 범유럽지수인 스톡스(STOXX) 600지수도 1.35%, 영국 FTSE 지수 1.67%, 독일 DAX 지수 1.31%, 프랑스 CAC 40 지수 1.30%씩 각각 떨어졌다. 도이체방크, 소시에테제네랄, 크레디트스위스 등 유럽의 대형 은행주들은 4% 이상 급락했다.

위험자산 회피로 가상화폐도 하락했다. 비트코인이 한때 2만달러선이 무너지는 등 불과 24시간 만에 가상화폐 전체 시가총액에서 700억달러가 증발했다고 CNBC가 전했다.

투자자들은 대신 미 국채와 금을 비롯한 안전자산을 집중 매입했다.다우존스 마켓데이터에 따르면 2년물 미 국채 금리는 SVB 문제가 부각된 이틀 동안 0.478%포인트 급락(국채가격 상승), 이틀 기준으로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9월 이후 최대폭 하락했다. 10년물 미 국채 금리도 이날 하루에만 0.2%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금도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은 온스당 1.8%(32.60달러) 오른 1,867.2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미 주요 은행들은 미국 국채를 포함해 많은 채권을 자산으로 보유 중이며, 연준의 금리 인상 장기화로 인해 손실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악의 시나리오는 예금 인출을 충당하기 위해 일부 증권을 손실로 매각함으로써 SVB를 따라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SVB 다음 차례는 부동산 대출 은행?= 시장은 이번 사태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억을 소환하며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몇몇 은행들의 문제가 월스트리트를 넘어 전 세계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됐던 것과 비슷한 양상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는 게 일부 비관론자들의 견해다. 아직은 SVB 붕괴를 개별 은행의 특별한 사례로 취급하는 분위기에 힘이 실리지만, 적지 않은 다른 은행들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가 전파될 가능성을 무조건 배제하기는 어렵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은 SVB 위기의 근본 원인을 코로나 팬데믹 기간 팽창한 특정 자산들의 거품이 지난 1년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꺼지는 과정에서 찾고 있다. 예일대에서 금융위기 대응을 연구하는 스티븐 켈리는 WSJ에 "연준은 대놓고 금융 여건을 긴축하려고 했으며 은행이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이유는 없다"면서 "이는 가장 거품이 낀 시장에 연결된 은행들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미국의 은행업계는 금리 상승으로 보유 증권에서 총 6000억달러 이상의 미실현 손실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만기까지 보유하면 실제 손실은 없지만, SVB처럼 예금 인출이 늘어나면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중도 매각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따라서 기술기업이나 가상화폐처럼 거품이 큰 분야에 많이 노출된 은행이 다음 타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높다. 시장은 부동산 대출에 많이 노출된 중소 규모 지역은행들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틀간 주가가 54% 폭락한 팩웨스트 뱅코프는 대출의 3분의 2가 부동산과 연관돼 있다고 WSJ은 보도했다. 역시 이틀간 29% 폭락한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최근 몇 년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사업에 집중하면서 대출을 급속도로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기준금리 인상폭에 영향 미칠까= SVB 파산 사태는미 기준금리 인상 폭에 대한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SVB 파산 이후 미 은행업계의 불안정성이 증폭될 경우 연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연준은 오는 21일부터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열어 금리 인상 수준을 결정할 예정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지난달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았던 연준이 '빅스텝'(0.5%포인트 인상)으로 보폭을 넓힐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연준이 지난 1년간 미국의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에서 4.75%까지 급격히 상승한 것이 은행 자산의 건전성을 악화시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은행 입장에선 금리 인상 속도에 맞춰 기존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이 어려운데다, 기준 금리 상승으로 은행이 보유한 국채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현금화를 할 경우에도 막대한 손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SVB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타격이 큰 IT 분야 기업들에 대한 대출이 많았기 때문에 부실자산 규모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이번 달 FOMC에서 또다시 급격한 인상을 선택하는 것은 힘들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자산 운용사 제프리스의 선임 금융분야 이코노미스트 아네타 마코스카는 "SVB 파산은 연준의 정책이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준의 통화정책은 SVB 파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아닐 카시압 시카고대 부스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은행은 건전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연준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개별 은행이 아닌 전체 은행 시스템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스템 위기로는 번지지 않을 것"= 아직까진 일부 부실 은행이 정리되더라도 2008년처럼 시스템의 위기로 전면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IT와 바이오 스타트업에 집중한 SVB처럼 특정 분야에 지나치게 쏠린 은행은 많지 않고, SVB처럼 초과 현금을 대부분 미 국채에만 투자해 보유한 은행은 별로 없다고 CNBC방송은 지적했다. 만약 국채 보유 비중이 높은 다른 은행이 있더라도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주택저당증권(MBS) 자체가 폭락했던 것과 달리 미 국채는 디폴트 위험이 거의 없어 만기 때까지 보유하면 손실을 보지 않는다.

또 금리에 민감하게 돈을 움직이는 기관투자자 비중이 높은 SVB와 달리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개인 소비자 비중이 높아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에 휘말릴 확률이 낮다. 금리 변동에 덜 민감한 개인 고객들은 머니마켓펀드(MMF) 등 다른 상품의 수익률이 더 높아졌다고 해서 빠르게 은행 예금을 빼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JP모건 애널리스트 비베크 주네자는 "대형 은행들은 훨씬 더 많은 유동성을 갖고 있고, 다양한 사업 모델로 다각화돼 있으며, 위기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는 은행 전반의 걸친 문제점이 아닌 SVB의 특수 사업 모델로 다변화되지 못한 고객층과 특정 자산에 집중된 투자 모델이 긴축과 만나면서 발생한 상황임이 분명한 만큼 은행 전반의 위기로 성급하게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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