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나라에서는 자녀의 삶에 대한 '설계 욕망'이 굉장히 강한 것 같다. 부모가 잘하기만 하면, 그래서 아이가 기어다니기도 전부터 잘 교육하고 양육하기만 하면, 아이를 완벽하게 설계하여 훌륭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다. 그러다 보니, 의대 보내는 걸 목표로 한국어를 말하기 전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서울대생도 풀기 어려워하는 영어 수학 문제를 7세 아이가 들어가는 학원에서 풀게 한다.
TV 영상이 나쁘다는 믿음 하에, 거실에서 TV를 치워버리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영상을 아예 못보게 하는 경우도 많다. 몬테소리 같은 서양의 교육법을 가져와서 잘만 쓰면, 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유아기에 아이를 어떤 학습에 최적화된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도 있는 듯하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도, 아이의 매일을 시간 단위로 설계해서 영어, 수학, 국어, 한자 등에다가 운동, 숙제 등까지 모든 것들을 마이크로 컨트롤하면, 아이를 '잘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크게 퍼져 있는 듯하다.
나도 이제 학부모가 된 입장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고 양육하는 법에 대해 자주 고민해보게 된다. 일단,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나의 어린 시절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렴풋이 기억하는 3살 무렵부터도 만화를 무척 좋아했다. 비디오방 가서 '호호아줌마' 빌리는 게 최고 행복한 순간이었고, '모래요정 바람돌이'를 끔찍이 좋아했다. 초등학생 시절을 지나, 중고등학생을 넘어, 대학생, 대학원생, 지금 마흔 무렵에 이르기까지도 오타쿠에 비견할 만큼 만화를 사랑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만화나 TV를 못 보게 한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아이를 무엇으로 만들기 위해 그 인류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최고조로 집약된 최고의 콘텐츠들을 못보게 한단 말인가? 의대 가려면 그 시간에 영어 동화책 읽고, 황소수학 입시문제를 풀어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부모의 바람대로 뭔가가 되기 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았으면 좋겠다.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되거나 버튜버가 되거나 픽사의 영화감독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아이의 판단력이라는 게 항상 최선은 아니다. 아이는 맨날 사탕을 먹고 싶어하지만 내버려두면 영구치가 다 썩어버릴 것이다. 공부하기도 싫어하지만, 기본적인 건 해야한다. 특히, 나는 아이가 외국어 만큼은 잘해서 대한민국에만 갇혀 살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어른이 먼저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아이 인생에서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일부에 불과하다.
언젠가부터 TV에 온통 '금쪽이들'이 방영되고, 아이의 모든 건 부모 책임이고, 그래서 부모만 잘하면, 아이를 인성을 비롯해 모든 걸 완벽하게 설계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통념이 널리 퍼진 것 같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들은 부모가 아니라 내가 했다. 부모는 내게 작가가 되라고 한 적이 없다. 지브리를 사랑하라고 시킨 적도 없다.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가장 값진 기억들은 부모가 시켜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은 순간들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찾고, 만들고, 추구하던 순간들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했다.
아무래도 요즘에는 모두가 불안을 안고 사는 것 같다. 상류층 부모들도, 인구소멸로 망해가는 대한민국에서 우리 아이가 먹고 살려면 의대를 보내는 게 의무라고 믿는다. 의사라도 해야 먹고 살지, 안 그러면 이 각자도생 사회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거라 믿는다. 저마다 절박하다.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봐, 인서울 못할까봐, 우리 아이 만큼은 잘 살았으면 해서, 필사의 '설계'를 시도한다. 그 모든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안하고, 불평등과 경쟁이 극심하며, 각자도생으로 치달았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불안을 마냥 투사하는 게 아이의 좋은 삶을 만든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차라리 아이를 믿어주고, 아이가 자기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쫓아보고, 삶에서 자기만의 의욕과 욕망을 가져보는 걸 응원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물론, 나중에는 아이 잘못 키웠다고 후회하며 우리 애도 어릴 때부터 입시기계로 만들었어야 하는 건데, 문제풀이 최상품 로봇으로 키웠어야 하는건데,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에서는, 내 나름의 믿음을 지키고자 한다.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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