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기아 EV9의 실내가 넓은 것은 비단 차가 크기 때문만이 아니다
기아 EV9의 실내 공간은 넓다. 물론 차체가 거대하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 차의 크기는 길이가 5010mm, 너비가 1980mm, 높이가 1755mm로, 4995mm의 길이를 자랑하는 팰리세이드보다 몸집이 크다. 하지만 필자가 이 차의 공간을 넓다고 이야기한 것은 단순히 차체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팰리세이드와 EV9은 길이로만 따지면 15mm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차량의 실내에 번갈아 들어가 보면 길이 이상의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왜일까. 이는 EV9이 E-GMP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전용 플랫폼 전기차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된 차량은 비슷한 체급의 내연기관 플랫폼 기반 차량보다 넓은 실내 공간 활용성을 지닌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부분은 플래그십 크기의 대형 SUV에서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그 이유는 엔진룸과 언더보디에서 찾을 수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경우 보통 커다란 엔진이 전면부 엔진룸에 자리를 잡게 된다. 물론 엔진의 부피도 크지만 여기서 공간을 더 잡아먹게 되는 것은 변속기를 비롯한 동력 전달 파츠다. 바퀴 축까지 엔진의 동력을 전달하는 이 부품들이 차지하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그만큼 실내 공간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엔진이 가로형으로 배치돼 있으면 그나마 낫지만, 모하비와 같이 세로형 엔진을 장착하는 경우 실내 공간이 더 좁아진다. 후륜구동 혹은 사륜구동 기능을 탑재한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이는 변속기의 회전 구동력을 바퀴 축까지 연결해 주는 드라이브 샤프트가 뒷바퀴까지 이어져 그 공간만큼 실내를 침범하기 때문이다.
엔진에서 연소를 마친 배기가스가 배출되는 촉매와 머플러가 자리 잡은 공간인 '센터 터널'도 실내 바닥에 턱을 생성해 공간에 손실을 준다.
반면 전기차인 EV9은 센터 터널이 없다. 이는 전륜과 후륜에 장착된 전기모터가 직접 바퀴 축에 동력을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EV9은 바퀴 축에 동력을 전달해 줄 드라이브 샤프트를 장착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배기가스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머플러도 필요하지 않아 평평한 바닥 공간을 갖출 수 있었다.
물리적인 변속기도 사라져 변속 레버가 자리 잡았던 센터 콘솔도 여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변속기가 없어진 자리는 휴대폰 무선 충전기와 컵홀더를 비롯한 각종 수납공간이 자리 잡았으며, 기존 변속 레버의 기능은 스티어링 휠 하단 칼럼 스틱이 맡게 되었다.

엔진이 없는 부분도 공간 활용성 극대화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 앞서 설명했듯 부피를 차지하던 엔진이 사라졌기 때문에 엔진룸 자체의 크기와 전륜 오버행을 줄일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실내 공간을 늘릴 수 있으며, 엔진이 사라진 자리도 그대로 수납공간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제조사가 이 공간의 명칭을 전면부를 뜻하는 Front와 적재 공간을 뜻하는 Trunk를 결합해 'Frunk'(프렁크)라고 부른다. 전면부에 배치된 트렁크란 뜻이다. 또한, 짧아진 앞뒤 오버행은 그만큼 휠베이스를 늘려 99.8kWh에 달하는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도록 만들며, 바닥에 깔린 배터리만큼 실내 공간도 늘어나게 된다. 이 같은 기아의 노력이 있었기에 EV9은 팰리세이드와 크기가 비슷함에도 훨씬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번엔 실내로 직접 들어가보자. 도어를 열고 시트에 앉으면 널찍한 실내 공간이 탑승객을 환영한다. 듀얼 파노라마 선루프가 주는 탁 트인 시야와 개방감이 더해지니 과장을 조금 보태 광활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실내 디자인은 적절히 직선적이면서 미래적인 분위기를 주도록 설계돼 콘셉트카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시보드 상단에는 12.3인치 계기판 클러스터와 12.3인치 센터 디스플레이 화면이 하나로 통합된 파노라믹 디스플레이가 자리 잡았다.
가운데에는 공조 장치 기능을 수행하는 5인치 디스플레이가 하나 더 배치되며 각 디스플레이의 정보들은 시인성이 높고 터치 반응속도도 빠릿빠릿해 만족감을 준다.

실내 소재는 가죽이나 크롬 도금 등 고급스러움에 초점을 맞춘 경쟁 럭셔리 브랜드들과 달리, 옥수수, 사탕수수, 천연 오일 등과 같은 식물 기반 소재와 재활용 플라스틱 및 페트병 등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했다. 이는 친환경을 우선하는 전기차의 취지를 우선시하기 위함이다.

시트는 나파 가죽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착좌감이 푹신한 편이다. 장거리 주행에도 엉덩이나 허리 배김이 없다. 먼저 운전석은 팰리세이드와 비슷한 높이 정도의 시트 포지션을 지녔다. 고속구간에서 가속하면 럼버 서포트가 허리를 조여 안정적인 자세를 만들어 주며, 장시간 운전을 할 때는 에르고 모션 시트가 작동해 허리의 피로를 풀어준다.

2열 시트는 벤치 시트와 독립형 시트 중 선택이 가능하다. 독립형 시트는 등받이를 최대한 눕혀주는 릴렉션 시트 기능을 탑재해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으며, 여기에 안마 기능이 함께 포함된다. 3열 방향을 향해 시트를 돌릴 수 있는 스위블 시트를 선택할 수 있다. 2열과 3열을 접고 펼 때 모두 트렁크에 있는 버튼으로 가능하다.



3열 좌석은 여유 공간이 꽤 넓어졌으나 무릎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다. 시트 가장자리에는 3열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컵홀더가 자리 잡았고, 2열과 3열 시트는 트렁크를 열고 뒤쪽에서 버튼을 눌러 폴딩이 가능하다. 트렁크 적재 공간은 기본 775ℓ, 2열 폴딩 시 2715ℓ에 달한다. 리어 도어는 전동식으로 여닫을 수 있다. 2열과 3열에도 독립적 제어가 가능한 공조 장치가 배치된다.

더 기아 EV9, 더 편리해진 충전
충전과 관련된 사항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서 얻는 이점이 적지 않다. 그중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충전 포트의 위치다. 보통 내연기관 자동차를 개조한 전기차의 경우 충전 포트가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전면부 쪽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아 충전하려면 전면 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반면 EV9의 경우 E-GMP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돼 먼저 출시된 현대 아이오닉 5나 기아 EV6와 마찬가지로 후측 펜더 쪽에 충전구를 배치할 수 있었다.
충전 속도에서도 내연기관 기반 개조 전기차와 차이가 난다. 브랜드 및 모델 별로 차이가 있지만 내연기관 기반 개조 전기차의 경우 평균적으로 100~150kW급의 충전을 지원하는 것이 보통이며,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등 프리미엄 독일 브랜드도 상위 모델 정도는 되어야 200kW급 이상의 급속충전을 지원한다.

반면 EV9은 기아의 출시 모델 중 가격대가 가장 높은 편이긴 하지만, 제네시스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모델이 아닌데도 현대 E-pit를 통해 350kW급 충전을 지원한다. 배터리 용량이 100kW에 달하는데도 10%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불과 2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주행가능거리도 완충 시 시승차의 경우 454km를 달릴 수 있으며, 19인치 휠 2WD 모델을 선택하면 최대 501km를 주행할 수 있다.

여기에 전기차의 내부 전원을 이용할 수 있는 V2L 기능도 갖췄다. 이를 통해 EV9은 집이나 캠핑 및 레저 활동 중 개인 전자 장비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후측 외부의 충전 포트에 어댑터를 꽂아 이용도 가능하며, 프렁크 내부와 트렁크 조수석 방향에도 220V 규격의 플러그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가 배치돼 있어 휴대폰 및 노트북 충전은 물론 전기를 이용한 작업도 가능하다.

어댑터에 플러그를 꽂고 V2L 기능을 사용하면 운전석 계기판 클러스터가 V2L 사용 중 알람을 디스플레이를 통해 송출해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환경부에서 발표한 2023년도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 따르면, V2L 기능을 갖춘 모델만 20만원의 추가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하니, 기능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팔방미인 기능이라 볼 수 있겠다.

이번엔 실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충전 포트를 찾아볼 시간이다. 운전석에 탑승해 센터페시아 하단을 살펴보자. 잘 보이지 않는 여유 공간에 이스터 에그를 숨겨둔 듯 마련한 경쟁 브랜드의 포트 구성과 달리, EV9은 아래쪽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2개의 C-타입 충전 포트를 배치했다. 포인트를 부여한 듯 각 포트가 수줍게 빛나고 있어 위치를 확인하기도 편하다. 이 충전 포트들은 데이터를 읽어내리는 것은 물론 충전 전환도 가능하다.
운전석과 조수석뿐만 아니라 2열에서도 충전 포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앞좌석 시트 가장자리에도 USB 포트를 마련했다. 운전석과 조수석 시트 후방에 2개를 탑재해 2열에 앉은 두 명의 탑승객이 서로 눈치 볼 필요 없이 편하게 포트를 사용할 수 있다.

여기까지도 만족스러운데 기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3열 시트에도 C-타입 충전 포트를 추가로 배치했다. 가장자리 컵홀더 상단에 배치돼 찾기도 쉬우며, 이 역시 은은한 조명과 함께 빛을 내고 있어 충전구 사용도 편리하다. 2열까지만 있어도 탑승객을 고려한 설계라 평가받기에 충분한데, 충전에 진심인 기아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5010×1980×1755mm | 휠베이스 3100mm
공차중량 2585kg | 엔진형식 전기모터 | 배터리 용량 99.8kWh
최고출력 385ps | 최대토크 71.3kg·m | 변속기 1단 감속기어
구동방식 AWD | 주행거리 454km | 최고속력 -
전비 3.9km/kWh | 가격 934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