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국인만 쓰는 옵션 하나에 수백억 쏟아 부은 수입 브랜드
2022년 하반기에는 내외관 디테일을 수정하고 각종 편의장비를 보강한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됐습니다. C40의 날렵한 헤드램프를 가져와 인상이 좀 더 샤프해졌다는 것을 빼면 딱히 도드라지는 변화는 없었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심플한 디자인은 여전히 멋스러웠어요.
2024년형 XC40을 잠깐 경험해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전 라인업이 2024년형 모델로 업데이트되면서 개선된 T맵 인포테인먼트가 탑재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이전에 선보였던 기존 T맵 시스템도 있으나, 마나였던 여타 수입차의 순정 내비게이션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편리했었는데, 거기서 기능이 더 좋아졌더라구요. 개선된 웹 브라우저는 강원도 산자락에서 유튜브 영상을 볼 만큼 빠릿했고, 오디오북이나 웨이브 같은 OTT를 더해 트렌드에 발맞췄습니다. 이전에도 있었던 AI 자연어 음성인식 기능도 인식 가능한 범위가 더 늘어났어요.
이 밖에 '루틴' 기능을 설정해두면 특정 멘트로 여러가지 편의 기능을 동시에 실행시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출근길'이라면 "오늘도 출근해보자" 같은 멘트로 회사까지 빠른 길 안내, 오늘의 일정 브리핑, 날씨, 음악 등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죠. 다른 브랜드들처럼 폰 커넥트 시스템으로 대강 때우고 계기판이나 헤드업 디스플레이 연동은 나몰라라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수백억의 거액을 쏟아 부어서 오로지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이런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게 참 놀랍죠.
이외에도 막내 라인업이지만, 볼보 특유의 듬직하고 차분한 주행 감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투박한 엔진음과 반박자 늦게 반응하는 터보랙은 여전했지만, 도심과 고속주행에서 모두 여유로운 가속이 가능했어요. 또,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덕분에 오래전 타본 T4에 비해 'ISG'의 개입이 상당히 매끄러워졌는데, B 파워트레인만 접했다면 체감이 쉽지는 않겠지만 두 모델을 모두 타본 저로서는 변화가 와닿더라고요.
모듈러 플랫폼을 그 어떤 브랜드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볼보의 단점이자, 장점인데요. 차급에 따라 구동 방식까지 차별화하는 여타 프리미엄 수입차들과 달리 모델 간의 주행감 차이가 크지 않다는 건 경우에 따라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대신 저처럼 이 볼보 특유의 질감이 만족스러운 소비자라면 어떤 모델을 타던 만족스럽게 운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죠. 운행 환경과 예산,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선택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인지 중간 성격의 '60 라인업'이 아무래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죠.
XC40은 브랜드가 처음 시도하는 차급이었음에도 기대한 만큼 준수한 상품성으로 무장했고, 국내에도 앞서 출시된 신형 라인업들이 닦아놓은 좋은 브랜드 이미지의 후광에 힘입어 사전계약 물량 1,000여 대가 모두 소진되는 등 열띤 관심 속에 출발했습니다. 여기에 '젊은 여성 연예인들이 타는 차'로 여러 미디어에 노출된 것 역시 판매의 호재로 작용했죠. 당대 트렌드의 정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그들이 선택한 것을 보면 과거 볼보 브랜드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참 놀랄만한 일이죠?
XC40의 합류 덕에 볼보는 지난 2019년 국내 진출 이후 처음으로 연간 판매 1만 대의 벽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경쟁력이 좀 희석되긴 했지만, 2023년 기준 40의 누적 판매량만 2,573대로 브랜드 전체 판매량 1만 7천여 대의 약 15% 가량을 담당했습니다. 출시 초에는 그 인기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주문이 밀리기도 했는데, 정작 도로 위에서 흔하게 보이진 않았죠. 판매 걸림돌로 작용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볼보 본인이었습니다. 상위 라인업들과 마찬가지로 악명 높은 출고대기 앞에 이 XC40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국내에 들어오는 차량은 전량 벨기에 공장 생산으로, 이 한 곳에서 전 세계 물량을 모두 감당하다 보니 오랫동안 공급 부족 사태에 시달렸습니다. 입대 전 계약해 전역 후 받는다는 말이 나왔던 XC60보다는 사정이 좀 나았지만, 이 차 역시 구매대기가 최소 수개월 심할 때는 1년을 넘기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하네요. 이 오랜 기다림을 견디지 못해 중고차를 구매하거나 경쟁 모델로 이탈하는 소비자들도 꽤 있었어요.
볼보의 컴팩트 크로스오버 XC40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볼보 특유의 심플하면서도 존재감 넘치는 디자인, 뛰어난 상품성을 앞세워 프리미엄 소형 SUV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점유율을 확보했고, 과거 해치백 C30처럼 볼보를 보다 젊고 스타일리시한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모델이었습니다.
그동안 볼보는 전동화에 가장 앞장섰던 브랜드 중 하나였죠. 가장 안전한 브랜드를 넘어 가장 친환경적인 브랜드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꾸준히 내비치고 있는데, 볼보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의 성향과도 잘 맞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소비자들은 제품을 선택하기 앞서 브랜드의 가치와 그들이 내세우는 철학까지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파타고니아 후리스를 입고 손에 텀블러를 쥔 저 남자가 타는 차가 볼보라면 어떤 사람일지 대략 느낌이 오시죠?
실제로 향후 출시되는 차세대 모델들은 모두 순수 전기 차량으로 판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전 모델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하는 등 진정성 있는 행보를 이어 왔습니다. 이후 발표한 플래그십 'EX90', 최초의 미니밴 'EM90', 2023년 국내 정식 출시된 'EX30'까지 차세대 라인업들이 몽땅 순수 전기차예요.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시장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죠. 전기차 산업의 둔화, 내연기관을 대체하기에는 아직은 너무 비싼 차량 가격 등 친환경만을 앞세워 급하게 추진되어오던 전기차 보급 사업이 삐걱대기 시작하면서 앞다퉈 전기차로의 전환을 선언했던 자동차 브랜드들도 조심스레 내연기관 카드를 다시 꺼내는 듯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오는 2030년까지 아예 '100%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밝혔던 볼보가 어떤 전략을 펼쳐나갈지 궁금해지네요. 개인적으로 하이브리드 라인업은 꾸준히 가져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볼보가 국내 시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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