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사이코패스 정유정

김태훈 논설위원 2023. 6. 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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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2005년 수많은 사람을 몸서리치게 했던 ‘엄 여인 연쇄 살인’의 범인 엄 여인은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눈을 핀으로 찔러 멀게 했고, 얼굴에 뜨거운 기름을 부은 뒤 흉기로 살해했다. 재혼한 남편까지 보험금을 노리고 죽였다. 피붙이인 친정어머니와 오빠까지도 같은 목적으로 눈을 멀게 했다. 몇 해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배 위에서 바다에 버린 고유정도 그 못지않았다. 잔인한 여성은 역사적으로도 드물지 않다. 한(漢) 고조의 아내 여후는 남편 첩의 손발을 자르고 눈과 귀, 혀를 뽑았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잔인한 행동의 근저에 잘못된 인지도식(認知圖式)이 있다고 설명한다. 인지도식은 특정 상황에서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는 저마다의 내면 규칙이다. 인지도식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것을 세상의 기준에 맞춰 평가한 뒤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따르지 않는다. 이게 안 되는 사람이 사이코패스다. 이들은 행동을 이성적으로 제어하는 전두엽 기능이 발달하지 못했다. 심한 경우 정상인의 15%에 불과하다는 연구도 있다. 이들은 폭력 성향을 띠게 하는 ‘모노아민 산화효소’라는 전사(戰士)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사이코패스는 세상사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기 내면의 목소리만 듣는다.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거짓말도 태연하게 한다. 일본의 한 의학자는 사이코패스를 ‘정장 입은 뱀’이라고 했다. 또래 여성을 이유 없이 살해했다가 엊그제 신원이 공개된 정유정이 그렇게 행동했다. 딸의 과외 선생님을 찾는 학부모인 것처럼 거짓말로 피해자와 통화한 뒤 중학생 교복을 입고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검거된 뒤 범행 이유를 묻자 “살인을 해보고 싶었다”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2007년 영화 ‘한니발 라이징’은 소년 한니발 렉터가 사이코패스로 거듭나는 과정을 추적한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2차대전으로 가족을 잃고 굶주린 패잔병들에게 동생이 잡아먹히는 장면을 목격한 뒤 괴물이 된다. 인간 100명 중 한 명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한니발처럼 괴물이 되는 이는 극소수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갖고 태어난 뒤에 사이코패스가 되느냐 정상인이 되느냐는 어릴 때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잘 자랐느냐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정유정은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다. 고교 졸업 후 친구도, 직업도 없이 극도로 폐쇄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사회 어느 구석에 이런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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