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의 ‘푸른 누드 Ⅳ’

'블루'(blue), 파란색은 인간과 가장 친근한 색일 것이다.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다. 파란색을 바라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위안을 받는다. 유럽의 수많은 미술가들이 지중해의 푸른 바다 근처로 모여드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의 '푸른 누드 Ⅳ'는 지중해 바다의 색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 '마티스 블루'로 표현된다. 마티스가 말년에 남프랑스의 휴양 도시 니스로 거처를 옮긴 후 만든 이 작품은 과슈(Gouache) 물감으로 색을 만들어 종이에 칠한 후 가위로 오려내 작업한 것이다. 니스 근처의 햇살 좋은 생 폴 드방스에 자리잡은 마티스는 여성의 누드에 심취했고, 이를 '컷-아웃'(cut-outs) 방식으로 재현했다. 과슈는 천연 색소, 아라비아검 등의 결합제로 만든 불투명 수채화 물감으로, 묽게 쓰면 수채화처럼 투명하고 진하게 쓰면 아크릴처럼 불투명하며 색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1941년 십이지장암으로 수술받고 관절염을 앓은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붓을 손에 묶어 사용할 만큼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그때 붓 대신 가위를 잡고 과슈를 칠한 종이를 오린 다음 잘려나간 패턴들을 붙여 작품을 만드는 기법을 만들어냈다. 콜라쥐와 비슷하지만 '컷-아웃'으로 부르는 이유는 붙이는 것보다는 자르는 행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마티스는 도안없이 즉흥적으로 종이를 잘라 이미지를 만들었다.
니스에는 마티스의 작품을 소장한 마티스 미술관이 있으며, 방스에는 그가 작업한 로제르 예배당이 있다. 로제르 예배당은 마티스의 말년에 탄생한 또하나의 역작으로 '마티스의 예배당'으로도 불린다. 마티스는 "나는 이 예배당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 정화되고 무거운 짐을 덜었다는 생각을 하기 바란다. 미술이란 고달픈 하루가 끝난 후 쉴 수 있는 안락의자와 같이 편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이 예배당의 실내장식 일체를 맡아 벽화에서 스테인드 글라스까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의 조화로 생명의 나무에서 뿌리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신약 성경 요한계시록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라는 구절을 주제로 했다. 1953년작 '다발'에도 이 생명의 뿌리를 형상화했다. 다발의 이미지는 이브 생 로랑 드레스의 영감이 됐으며 특유의 밝고 경쾌한 색감 덕분에 폰케이스, 무선 충전 패드 등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과 굿즈로 제작되고 있다. 마티스는 예배당을 완성하고 3년간 종이 그림에 몰두하다 1954년 85세의 나이에 숨을 거둔다.
대담한 변형과 자유로운 터치, 강렬한 보색 대비, 평평한 구성 등으로 색채의 해방을 이끈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는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꼽힌다.
1869년 프랑스 북부 르 카토 캉브레지에서 태어났다. 1887년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원 행정관으로 일한 그가 미술로 전향한 것은 1889년 충수염을 앓은 이후다. 어머니가 가져다준 미술 재료로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훗날 마티스는 이때 "일종의 낙원을 발견했다"고 회상했다. 1892년엔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들어가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모로에게서 배웠다.
1904년 무렵 친분이 있는 피카소·드랭·블라맹크 등과 함께 20세기 회화의 첫걸음으로 불리는 야수파(Fauvism) 운동에 참가, 중심 인물로 활약했다. '야수파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색채를 마치 야수처럼, 작가의 감정에 따라 거칠고 힘있게 사용해 야수파라는 별명이 붙었다. 야수주의자의 목적은 색채의 해방에 있었다. 그들은 "본다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다. 마티스의 작품 세계엔 빈센트 반 고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강한 붓 터치와 다양한 색감, 보색 대비의 활용은 고흐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주로 니스에 머무르면서 모로코·타히티 섬을 여행했다. 이는 마티스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슬람 문화의 화려한 색채, 아라비아풍의 문양 등 아라베스크는 그의 화풍을 바꿔놓았다.
만년에는 색도 형체도 단순화됐으며, 밝고 순수한 빛의 광휘와 청순 명쾌한 선에 의해 구성된 평면적인 화면은 '세기의 경이'라고까지 평가됐다. 조각·동판화에도 뛰어났고 직물 디자인, 삽화 등 새로운 분야도 개척해 냈다.
마티스는 평생동안 색채의 표현력에 천착했다. 정물화와 풍경화 등 초기 작품들은 어두운 색조를 띠었으나 곧 화풍이 바뀌었다. 생생한 색의 천을 둘러싼 사람들의 춤추는 모습, 자연광의 색조 등을 표현하며 활력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인상주의에 매료된 마티스는 다양한 회화 양식과 빛의 기법들을 실험하기도 했다. 앙드레 드랭과 마티스가 처음으로 공동 전시회를 열었을 때, 미술 비평가들은 조롱하듯 '레 포브'(Les Fauves, 야수)라고 불렀는데, 이로 인해 '야수파'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마티스는 일상 속에서의 즐거움이나, 평온한 감정, 유쾌함 등을 작품에 주로 표현했다. 평생 아틀리에, 창문, 벗은 여인, 바이올린, 금붕어, 춤 등을 반복해 그렸다. 대표작으로 '춤' '젊은 선원' 등이 있다. '춤' 연작에선 즐거운 인생관이 드러나 있다. 마티스에겐 하늘을 칠할 파란색, 인물을 칠할 붉은색, 동산을 칠할 초록색 세가지만 있으면 충분했다. 이 단순한 색채로 '조화'를 이루어냈다. 작품 속에는 5명의 등장인물이 손을 맞잡고 마치 강강술래 하듯 춤추고 있다. 몸의 형태나 곡선은 이상적인 비율의 신체가 아니지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몸에선 리듬감과 유쾌함이 느껴진다. 마티스는 파리 몽마르트르의 유명 무도회장이었던 뮬랭 드 라 갈레트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피카소는 앙리 마티스를 "그의 뱃속에는 태양이 들어있다"고 했다. 마티스가 사용한 색의 찬란함을 칭송한 것이다. 병으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자 색종이를 잘라붙이는 기법을 개발해 극한까지 순화된 색채와 형태를 추구한 그는 20세기 현대 회화를 연 선구자였다. 피카소가 형태를 현실로부터 해방시켰다면, 마티스는 색채를 현실로부터 해방한 혁명가였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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