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면 묘지" 깨알 글씨로 끝?…10억대 빌라 사기분양 논란

[땅집고]지난 3일부터 입주 중인 제주 노형동 고급빌라‘더샵 노형 포레’단지 내에 있는 공터가 사실 묘지로 확인됐다. 시행사가 땅을 처음 매일할 땐 무연고 묘지였으나, 공사 중 땅 주인이 나타나면서 사유지가 됐다. /독자 제공

[땅집고] “10억원 넘는 고급빌라 단지 내에 묘지가 있다고 하면 누가 계약을 했겠어요. 보험 들 때도 중요한 특약 사항은 일일이 말해주잖아요. 단지 내 중앙공원 바로 옆에 공원보다도 더 큰 묘지가 있으면 당연히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더샵 노형 포레 입주민 A씨)

대기업인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을 맡은 제주도 노형동 고급빌라 ‘더샵 노형 포레’. 입주 전부터 하자 폭탄 논란을 빚은 데에 이어 입주 이후 단지 내에 건들 수 없는 30평 규모의 묘지가 있는 사실이 확인돼 또다시 입주민들 분노가 거세지고 있다.

[땅집고]더샵 노형 포레 103동 주민이 문을 나서면 보이는 묘지 공터. /독자 제공

10일 땅집고 취재에 따르면 더샵 노형 포레는 지난달 26일 준공 허가를 받은 후 11월3일부터 입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현재 3가구가량이 입주를 마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입주민들은 단지 안에 있는 텅 빈 흙밭이 사실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묘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토지이용계획에 따르면 이 부지는 노형동 461에 있는 면적 99㎡(약 30평) 규모 묘지다. 시행사인 다온씨엔아이가 빌라 단지를 짓기 위해 전체 땅을 매입한 2019년 당시엔 이 묘지는 ‘주인이 없는 땅’이었다. 이듬해인 2020년 제주시가 부동산 특별 조치법을 시행하면서 후손이 나타나 해당 묘지를 등기하면서 ‘주인 있는 땅’으로 바뀌었다.

입주민들에 따르면 시행사 측은 “당시 땅 주인에게 매입 의사를 밝히지 않아 사유지로 남겨두게 됐다”며 “당시 묘 부지를 매입할 경우 가처분에 따른 공사 중단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완공 이후 입주자대표회를 결성한 뒤 부지 매수를 고려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땅집고] 입주민들은 시행사에서 단지 배치도 등에 중요 정보인 묘지를 표시하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묘지는 노형동 461에 있다. /독자 제공, 토지이용계획 등
[땅집고] 입주민공고문에 따르면 설계관련 유의사항 맨 끝에 묘지에 대한 문구가 있다. 입주민들은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한 줄 적어놓기엔 너무 치명적인 단점"이라면서 "구두 고지는 시행사의 의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샵 노형 포레 입주민공고문

묘지에 대한 논란은 ‘시행사의 고지 의무’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시행사 측은 “입주자공고문에 고지했기 때문에 입주자들이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입주자들은 중요한 내용은 구두로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시행사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일부 입주자들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검토 중이다. 입주민 A씨는 “변호사 자문을 해보니 중요한 내용을 말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해지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은 “누가 묘지랑 같이 살기 위해 10억원을 내고 살고 싶겠냐”며 분개하고 있다. A씨는 “단지 내에 중앙공원이 있는데 묘지 공터는 그 바로 옆에 있는 데다가 공원보다도 커서 외면할 수도 없을 정도”라며 “심지어 103동에서는 문 열고 나가면 바로 묘지”라고 말했다.

시행사 측은 “절차 상 문제는 없지만, 입주민들의 불만이 있으니 적정가격으로 매입을 하려고 한다”며 “도의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시행사 측은 묘 부지를 3.3㎡당 150만~200만원, 6000만원 밑으로 매입하기 위해 토지주와 접촉을 시도 중으로 알려졌다.

제주 노형동에 들어선 ‘더샵 노형 포레’는 지하 1층~지상 9층 총 80가구 규모로 조성한 고급빌라다. 98㎡~165㎡(이하 전용면적) 구성에 분양가는 8억~12억원 수준으로 비싼 편이다. 10억원 안팎의 분양가에도 90% 이상 팔릴 정도로 고급 빌라에 대한 제주 부동산 시장의 기대감이 높았다. 그런데 9월 초 진행한 사전점검에서 한 가구당 100건 정도의 하자가 나타나 논란이 일었었다. 

글=박기람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