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 얼차려 사망 누구 책임? 중대장·부중대장 서로 '네 탓'
조승현 기자 2024. 10. 11. 19:14
지난 5월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규정을 어긴 군기훈련, 이른바 얼차려를 지시해 훈련병을 숨지게 한 중대장과 부중대장이 법정에서 또 한 번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오늘(11일) 오후 춘천지법에서 중대장 강 모 씨와 부중대장 남 모 씨의 학대치사와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 사건 네 번째 공판이 열렸습니다. 두 사람은 차례로 증인석에서 사건 경위를 증언했습니다. 강 씨는 사건 당일 부중대장으로부터 전날 취침시간에 떠든 훈련병 6명을 완전군장 상태로 군기훈련 시키겠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훈련병들이 입소한 지 2주밖에 안 돼 완전군장을 싸본 적 없고 체력도 안 된다고 판단해서 '가군장'으로 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군장은 완전군장에서 일부 무거운 물품을 뺀 '가짜 군장'이라는 뜻이라며, 무게는 10~15㎏ 정도이고 군인들은 대부분 아는 용어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중대장이 완전군장 상태로 군기훈련을 진행했고, 강 씨 본인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겁니다. 당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군기훈련은 부중대장에게 믿고 맡겼다고 했습니다. 중간에 자신이 보는 앞에서 팔굽혀펴기하는 훈련병 군장에서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마저도 보급품이 없으니 무게를 맞추려고 넣은 것쯤으로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남 씨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중대장이 가군장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한 겁니다. 가군장의 뜻도 정확히 몰라서 그냥 제대로 싸지 않는 군장 정도로 추측했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완전군장 상태로 군기훈련을 진행하겠다고 중대장에게 보고한 기억이 없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남 씨의 변호인은 중대장이 가군장을 지시했다면 팔굽혀펴기 도중 군장에서 책이 쏟아졌을 때 왜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지를 강 씨에게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다른 몇몇 쟁점에서도 서로의 탓을 하며, 자신은 적절하게 행동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강 씨는 군기훈련을 조교에게 위임하고 싶다는 부중대장에게, 통제할 간부가 현장에 있어야 한다며 직접 시키도록 지시했다고 했습니다. 또 군기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훈련을 왜 하는지, 규정은 뭔지 훈련병들에게 먼저 알려줘야 한다고 부중대장에게 이야기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반면 남 씨는 완전군장을 멘 훈련병들이 뛰지 못할 것 같아서 연병장 두 바퀴를 걷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때까지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중대장이 내려와 지휘하기 시작하면서 달리기와 팔굽혀펴기 등 강도 높은 훈련을 하게 했고,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생각보다 완전군장 무게가 더 나가 보였고 훈련병들은 힘들어 보였지만, 하급자로서 상급자인 중대장이 통제하고 있는 일을 막거나 임의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당초 오늘 재판은 결심 공판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증인 신문과 피고인 신문이 길어졌습니다. 여기에 숨진 훈련병의 유족과 또 다른 피해 훈련병의 변호를 함께 맡게 된 법률대리인이 재판 도중 공소장 변경을 검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피해 훈련병이 있는 만큼 '학대치상' 혐의를 추가해달라고 한 겁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12일에 재판을 한 차례 더 열어 증거 조사와 최후변론까지 마무리하고, 공소장 변경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숨진 훈련병의 유족 측은 오늘 재판에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만 한 피고인들을 보며 참담하고 안타까웠다는 심경을 밝혔습니다. 말로만 잘못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죄는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해자들에게 더욱 중형이 선고될 수 있게 공소장 변경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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