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입차 시장의 변화, 과거부터 현재까지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사진=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대한민국 수입차 시장은 19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명확한 시장 구조나 통계 자료가 거의 없었다. 당시 수입차는 극소수의 고소득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으로 여겨졌다. 1987년, 한성자동차를 통해 메르세데스-벤츠가 국내에 처음 공식 수입되며 수입차 시장의 문이 열렸지만, 수입차를 둘러싼 높은 관세와 제한적인 정책으로 시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수입차 시장의 본격적인 변화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정부의 시장 개방 정책과 경제 성장, 그리고 소비자들의 차량 선택 폭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수입차 시장은 서서히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1994년 이전의 베스트셀링 모델에 대한 자료는 제한적이며, 수입차가 대중화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1994년: 미국차의 전성기, 포드 '세이블(Sable) LS'의 1위

1994년은 대한민국 수입차 시장에서 최초로 공식적인 베스트셀링 모델이 기록된 해로, 포드 '세이블(Sable) LS'가 904대를 판매하며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우리에겐 포드 토러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소비자들은 미국 대형 세단 특유의 크고 넓은 실내 공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안정감을 선호했다. 포드는 이 같은 수요를 충족시키며 초기 수입차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포드 토러스(북미형) 사진=포드


1995년~1997년: 포드와 크라이슬러의 시대

1995년에도 포드 '세이블'은 885대 판매를 기록하며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경쟁 브랜드들이 서서히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포드의 독주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1996년에는 크라이슬러의 '스트라투스(Stratus) LX'가 594대를 판매하며 1위를 차지했다.

1997년은 IMF 외환위기로 인해 경제적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포드의 '토러스(Taurus) LX'가 690대 판매를 기록하며 다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는 소비자들의 차량 구매 패턴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후 수입차 시장의 판도는 미국차에서 독일차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독일차의 전성기와 BMW의 약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경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독일차는 우수한 품질, 높은 내구성, 그리고 브랜드 이미지를 내세우며 시장 점유율을 확장했다. 특히 BMW 5시리즈는 2000년대 초반부터 매년 베스트셀링 모델 상위권에 오르며 독일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BMW 520d와 530i는 효율적인 연비와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꾸준히 사랑받았다.

렉서스 ES 사진=렉서스


2000년대 중반: 일본차의 부상, 렉서스 ES 시리즈의 성공

2000년대 중반, 일본 브랜드인 렉서스가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입하며 또 다른 변화를 이끌었다. 렉서스의 ES 시리즈는 조용한 승차감, 합리적인 유지비, 그리고 강남 지역 소비자들 사이에서의 높은 인기 덕분에 '강남 쏘나타'라는 별명을 얻으며 연간 2000대 이상의 판매량을 꾸준히 기록했다.

렉서스는 당시 국내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럭셔리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며 일본차의 선호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특히, 중산층 소비자들 사이에서 렉서스는 수입차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모델로 자리 잡았다.

2010년대: 대중화와 고급화의 양극화

2010년대는 수입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대중 브랜드와 고급 브랜드로 양분되는 시기였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시장 점유율을 양분하며 치열하게 경쟁했다. 이 시기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는 독보적인 인기를 끌며 수입차 시장의 중심에 섰다.

BMW는 3시리즈와 5시리즈를 앞세워 젊은 세대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반면 메르세데스-벤츠는 고급 세단 중심의 라인업으로 중장년층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2020년대: 프리미엄 세단의 독주와 단일 모델의 기록 경신

최근 수입차 시장은 여전히 고급 세단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2020년, 메르세데스-벤츠의 E 250은 1만1878대를 판매하며 수입차 전체 모델 중 1위를 기록했다. 이는 프리미엄 세단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높은 선호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기록이었다.

2023년에는 BMW 520i가 1만451대를 기록하며 수입차 역사상 단일 트림으로는 최초로 1만 대 판매를 돌파했다.

대한민국 수입차 시장의 역사는 단순히 판매량의 변화가 아니라, 소비자 선호도와 경제적 상황, 그리고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흐름이다. 앞으로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의 부상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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