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산다” 넘사벽 인텔이 어쩌다…삼성이 배워야 할 교훈은 [김민지의 칩만사!]
PC→스마트폰 전환기 몇 번의 판단 착오 치명적
AI 시대 속 삼성전자도 인텔 반면교사 삼아야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인텔에는 외계인이 산다.”
한때 반도체 업계에서 인텔을 향해 농담처럼 하던 말입니다. 출시하는 제품마다 기술 혁신을 반복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죠.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주름 잡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반도체 원조’. 이런 화려한 수식어가 어울리던 회사였는데 현재는 굴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50년 간 이어진 반도체 왕국의 ‘몰락’입니다.
인텔의 사례에서 우리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1등은 없다는 것이죠. 단 몇 번의 판단 미스와 기술 개발 실패는 눈덩이처럼 커져 회사의 존폐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지금 시점에서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위험도 큰 상황이죠.
오늘 칩만사에서는 인텔이 어쩌다 퀄컴에 피인수될 상황까지 놓이게 됐는지 살펴보고 한국의 삼성전자가 반면교사 삼아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인텔이 최근 얼만큼 흔들리고 있는지 살펴볼까요.
지난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안에 정통한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퀄컴이 인텔에 최근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이 거래가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퀄컴이 보유한 현금 자산은 지난 6월 말 기준 77억7000만달러로 인텔의 현재 시가총액(930억 달러, 한화 약 124조원)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여기에 규제 당국의 반독점법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등 제도상의 장애물도 높습니다.
하지만 인텔은 퀄컴의 인수 제안을 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인텔은 약 50년 간 반도체 시장을 이끌어온 원조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인텔의 역사는 화려합니다. 1968년 설립된 후 2년 만인 1970년에 세계 최초로 D램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1971년에는 최초의 CPU도 선보였죠. 현대 반도체의 역사가 인텔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후 D램과 CPU 사업을 병행하던 인텔은 일본 기업들에 밀려 메모리 사업을 접고 CPU에 역량을 집중합니다. PC시대가 열리면서 인텔은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인텔의 CPU가 탑재되지 않은 PC가 없던 시절이죠. 1992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 1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텔은 스마트폰 시대로의 전환기에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맙니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술에서 밀리면서 애플 아이폰에 자사 칩을 탑재시키지 못한 겁니다. 인텔이 놓친 AP 시장은 삼성전자, 퀄컴, 미디어텍 등이 차지했고, 인텔의 쇠락이 시작됩니다.
부진에 빠진 인텔은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추후 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2015부터 2016년까지 2년 동안 무려 1만3000여명을 감원합니다. 해고된 핵심 연구개발 인력들은 인텔의 경쟁사로 이직해 기술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여기에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의 ‘CPU 게이트’가 터집니다. 인텔 CPU에서 해킹에 취약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는데, CEO가 이를 알고도 수개월 동안 문제를 은폐했다는 논란이 일어난 겁니다.
약 10년 동안 이어진 경영진들의 오판, 폐착 등으로 인텔은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인텔의 현재 시가총액은 엔비디아의 30분의 1, TSMC 8분의 1, 삼성전자의 4분의 1입니다. 강점이었던 CPU 시장에서도 경쟁사인 AMD가 바짝 추격했습니다. 올해 CPU 매출에서 AMD가 인텔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2021년 재진출을 선언한 파운드리 사업도 녹록지가 않습니다. 2021년 51억 달러, 2022년 52억 달러, 2023년 70억 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파운드리의 누적 적자는 53억 달러(약 7조 2800억원)에 이릅니다. 결국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하기로 했고, 독일과 폴란드에서 짓고 있는 공장 건설도 잠정 중단했습니다. 또 전체 직원의 15%에 달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 상황입니다.
인텔의 사례에서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반면교사’ 삼아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일례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당시 HBM 시장의 확대를 예견하지 못하고 수익성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HBM 연구개발팀을 해체했습니다. 이후 2023년부터 시작된 AI 붐으로 이같은 결정은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밝혀졌죠. 이는 인텔이 과거 PC에서 스마트폰 시대로의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한 실수와 오버랩된다는 분석입니다.
지금 반도체 시장은 AI 시대라는 변곡점을 맞은 격변기 입니다. HBM에서의 실수를 만회하고 앞으로 펼쳐질 AI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넥스트 HBM’으로 불리는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 PIM(프로세스인메모리), 온디바이스용 HBM뿐 아니라 저전력을 구현하는 LPDDR, GDDR 등 다양한 제품의 기술력을 갖춰놔야 합니다.
인텔의 파운드리 분사 결정도 삼성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제조, 설계, 위탁생산(파운드리) 등을 전부 하고 있는 종합반도체기업(IDM)입니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IDM이라는 정체성은 큰 단점이 됩니다. 파운드리 고객사인 반도체 설계 기업들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에 수주를 맡기는 것이 경쟁사에게 자신의 기밀을 공유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반면 TSMC는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라는 신념으로 파운드리 사업만을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예전부터 삼성전자가 시스템LSI사업부 또는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해야 한다고 지적해왔습니다. 과거에는 자립이 가능할 정도의 역량을 갖추지 못해 어려웠지만, 최근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고 있는 만큼 더 늦기 전에 분사를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외에도 투자 분산, 인력 산재 등 선택과 집중이 어렵다는 점도 IDM의 단점으로 꼽힙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원가 절감 및 구조조정 보다는 삼성만의 ‘역발상 투자’를 이어가는 것이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인텔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실시했지만 이는 결국 기술 경쟁력 약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례없는 반도체 불황에도 57조61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설비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올해도 약 50조원 내외의 투자를 이어갈 전망입니다. 또한, 2022년부터 5년간 8만명 채용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입니다. 업황과 관계없이 꾸준한 설비투자와 인력 채용을 이어감으로써 미래에 초격차를 만들겠다는 포부입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5월 반도체 수장으로 부임한 전영현 부회장의 주도 하에 기본에 충실한 경쟁력 재고에 나서고 있습니다. 전 부회장은 앞서 문제 해결·조직간 시너지를 위해 소통하고(Communicate), 직급·직책과 무관한 치열한 토론으로 결론을 도출하며(Openly Discuss)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Reveal)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하고 철저하게 실행한다(Execute)는 의미의 ‘반도체 신(新)조직문화’(C.O.R.E. 워크) 조성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반도체인의 신조를 계승하되 ‘앞으로의 50년’을 위해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만들기로 했다고 합니다. ‘반도체인의 신조’는 1983년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삼성전자가 임직원의 의지를 다지고자 만든 10가지 행동 다짐을 말합니다.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큰 목표를 가져라 ▷일에 착수하며 물고 늘어져라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하라 등을 포함합니다. 매번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삼성전자가 이번에도 ‘반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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