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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이 '피지컬AI'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지금, 한국 로봇 산업의 경쟁력을 분석하고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국내 로봇 시장의 생태계가 대기업의 '인수합병(M&A), 플랫폼 통합'과 중견·스타트업의 '연구개발(R&D) 집중, 기술특화' 전략으로 양분되고 있다. 휴머노이드와 피지컬 인공지능(AI)에 대한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협력 생태계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K로봇 생태계의 두 축...대기업 vs 중소·스타트업
3일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로봇산업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로봇 시장 규모는 2017년 8조5000억원에서 2022년 11조8000억원으로 성장했으며, 올해는 13조6000억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피지컬AI 경쟁 가속으로 생태계가 재편되고 있다. 대기업은 M&A와 플랫폼 통합으로 사업 규모를 키우고, 중견·스타트업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로봇 R&D에 투자하며 핵심 모듈 내재화와 특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기업의 ‘통합·확장’ 전략은 현대자동차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가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이족·사족보행로봇 기술을 확보해 스마트팩토리·자율주행과 연계한 ‘엔드투엔드 자동화’를 추진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20년 그룹 차원에서 로보틱스를 자동차·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함께 '세 번째 성장축'으로 선정해, 향후 전체 사업의 약 20%를 차지하는 핵심 분야로 본격 육성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로 산업용·서비스로봇을 강화하고, 연간 30조원의 전체 R&D 중 상당 부분을 미래기술에 투입하며 내부 개발과 외부 M&A를 병행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LG전자는 생활가전·자동차전장·로봇·AI 등 다양한 사업의 R&D에 4조7632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또 상업용·가정용로봇을 이원화하며 ‘서비스·디바이스·클라우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네이버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1784’ 사옥에서 약 100대의 자율주행로봇을 운영하며 약 460건의 관련 특허를 냈다. KT, 삼성SDS, LG CNS는 서비스형로봇(RaaS) 플랫폼으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두산그룹 계열의 로봇 전문사로, 협동로봇 국내 점유율 1위를 바탕으로 위생·식음료(F&B)·물류 등 현장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중견·스타트업은 R&D에 집중해 기술 위주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전체 매출 기준으로 약 17~18%를 R&D에 사용하며 기술 고도화와 정부 연구과제(휴머노이드, SLAM, 협동로봇 등)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2028년 인간형로봇 상용화를 목표로 R&D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뉴로메카는 매출의 30~40%를 R&D에 투입하며 자체 로봇 운영체제(OS)인 ‘콜라보’ 시리즈로 차별화했다. 로보티즈는 10%대 중반의 R&D로 자율이동로봇(AMR) 등을 자체화하며 글로벌 고객사를 늘리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큐렉소가 정형외과 수술로봇을 내세워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을 통한 북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물류 분야에서는 트위니가 자율주행로봇 ‘나르고’로 택배·풀필먼트 실증을 상용화로 전환하고 있다. 유진로봇은 청소로봇 중심에서 물류·스마트팩토리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성장세를 이어가는 한편 현장통합 솔루션으로 레퍼런스를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이 플랫폼 통합으로 리스크를 분산하는 동안, 중견·스타트업은 핵심 모듈 내재화와 빠른 현장 적용으로 기술 격차를 줄이고 있다. 다만 대기업의 로봇 매출 비중은 여전히 1% 미만에 머물러 양산·글로벌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가속돼야 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로봇 패권 경쟁 치열
한국산업연구원의 ‘글로벌 로봇산업 동향 분석과 우리의 발전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제조로봇 시장은 중국·일본·미국·한국·독일 등 5개국이 주도하며 전체 시장의 77.6%를 점유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산업용·서비스·휴머노이드 등 전 영역을 통틀어 세계 로봇 시장 진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산업용로봇은 일본 화낙·야스카와, 독일 쿠카, 스위스 ABB가 공급망과 기술표준을 장악하고 있다. 서비스·물류로봇은 아마존과 영국 오카도가 주도한다. 덴마크 유니버설로봇은 협동로봇 인터페이스 표준화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했다.
차세대 격전지는 휴머노이드와 피지컬AI다.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는 테슬라가 ‘옵티머스'를 공장·물류 현장에 투입해 상용화에 나섰으며,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2025년까지 1만대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미국 애자일리티로보틱스는 이족보행로봇 ‘디지트’를 아마존 물류센터에 적용하고 있다. 피규어AI는 제조·서비스 현장을 겨냥한 범용 휴머노이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피지컬AI 플랫폼에서는 엔비디아가 로봇용 AI컴퓨팅과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며 업계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는 휴머노이드뿐 아니라 AMR·서비스로봇까지 아우르는 로봇 AI 생태계의 기반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의 지원과 대량생산을 앞세워 로봇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유비테크는 2025년 매출이 약 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며 휴머노이드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고, 유니트리는 사족보행·휴머노이드 분야의 유니콘으로 평가된다. 우시와 지아이(GI) 등은 산업용·서비스로봇을 대량 보급하며 내수 기반을 키우고 있다. 특히 중국은 2023년 기준 글로벌 산업용로봇 신규 설치량의 50% 이상을 차지한 세계 최대 수요처로, 보조금과·산업단지 정책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영향력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이처럼 일본·독일은 '산업표준', 미국은 ‘빅테크·물류 연계 현장 확산’, 중국은 ‘양산 규모’ 등에서 각각 우위를 확보하며 글로벌 로봇의 패권 다툼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98%가 중소 기업...대기업과 생태계 연결 필요
산업연구원(KIET)의 ‘글로벌 로봇산업 동향 분석과 우리의 발전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글로벌 제조용로봇 시장에서 약 5.8%의 점유율로 세계 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시장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구조적 제약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 대기업의 로봇 매출은 그룹 전체의 1% 미만에 불과하고, 중견기업의 합산 외형도 1조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전체 4300여개 기업 중 98%가 중소기업일 만큼 산업 기반도 취약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실제 기술성능·품질·경쟁력은 글로벌 선진국 평균의 80~85% 수준이다. 핵심 부품 국산화율은 약 44%로 글로벌 경쟁사 대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소프트웨어 내재화와 전문인력 확보도 미흡해 하드웨어·소프트웨어·운영을 기업들이 한꺼번에 떠안는 구조적 비효율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은 매출 대비 R&D 비중이 높지만 사업화 리스크가 크다. 시제품에서 대량도입까지의 시차가 크고, 벤처·후속투자 위축 등으로 투자와 수요가 끊겨 ‘죽음의 계곡(상용화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금 공백)'에 빠지기 쉽다. 여기에 특허·지식재산권(IP) 장벽과 개인정보·AI 규제에 대응하는 비용이 추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박상수 KIET 디지털AI전환생태계연구실장은 “중소기업이 시제품 단계에서 대량도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금 공백을 겪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지금도 산업통상자원부나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증 지원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지만, 기업들로서는 규모가 작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전반적인 지원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타트업은 R&D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대기업의 자본과 유통망, 스타트업의 기술역량을 연결하는 협력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며 "로봇 공급 기업과 대규모 수요처 간의 얼라이언스가 촘촘히 구축되면 생태계가 훨씬 더 강건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이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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