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이자 위스키 애호가 정보연의 공간, 술과 인문, 예술이 흐르는 '보연정'
Q. 보연정은 어떤 공간인가요?
보연정은 한자 뜻으로 보면 보배 ‘보宝’에 고울 ‘연姸’, 정자 ‘정亭’이에요. 제 이름인 정보연을 활용하여 뭔가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브랜딩을 할 수 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기능적으로 보면 다양한 인문학 관련 이야기들을 많은 분들과 나누는 공간인데, 정자는 물이 흐르는 곳에서 쉬는 공간이잖아요. 물도 흐르고 이야기도 흐르고 종종 술도 같이 흐르고 하면서 쉼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위스키 관련 프로그램을 제가 직접 진행하기도 하고, 외부에서 모셔 온 선생님들의 인문학 강연도 열립니다. 최근에는 매월 재즈 칼럼리스트 조원용 님과 <향기를 듣다>라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위스키를 페어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또 지난달까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함께 읽는 책 읽기 모임이 있었고, 지난주부터 단테의 『신곡』을 읽기 시작했어요. 혼자 읽기는 어려운 책들을 여럿이 모여서 윤독하는 모임이에요.
와인이나 위스키 한 잔 곁들이면서 돌아가면서 읽기도 하고요, 『파우스트』를 읽고 나서는 메조소프라노 오주영 선생님을 모시고 오페라 <파우스트>에 관한 설명과 해석을 듣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른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가 흐르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Q. 매번 위스키를 드시는 건가요?
높은 확률로 위스키를 마시기는 합니다. 제가 술을 좋아하니까요. 수지타산을 따지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분들을 대접하고 싶어서 제가 모아 놓은 위스키를 드리고는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술을 마시게 될지 기대하면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 종종 전통주라든지 샴페인이라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가져오셔서 함께 나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Q. 청파동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요?
첫 작업실은 강남역 한복판에 있는 오피스텔이었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작업실 메이트들과 공유하던 공간이었는데, 캘리그래퍼, 플로리스트 친구들과 요일별로 나누어 썼어요. 저는 금요일 오후 위스키를 공부하는 공간으로 사용했고요. 그곳에서 3년 가까이 지내다가 제가 이직을 하면서 북아현동에 있는 상상헌이라는 한옥으로 작업실을 옮기게 됐어요.
저와 오랫동안 독서 모임으로 교류하던 분의 작업실인데, 작업실 메이트를 구한다 해서 제가 합류하게 됐지요. 그곳에서 『하루의 끝 위스키』라는 책을 완성했고, 다양한 위스키 관련된 콘텐츠와 행사를 만들었어요. 지금 진행하고 있는 <향기를 듣다>의 프로토타입이 거기서 시작된 셈인데, 재즈 컬럼리스트인 황덕호 선생님, 트럼페터 김영민 선생님, 이런 분들과 작은 모임들을 가졌어요.
이곳에는 2019년 여름에 오게 됐어요. 계속 상상헌에 있을지 독립을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가 직장생활을 마치고 독립하는 시점이기도 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일할 새로운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제가 당시 킨츠기라고 깨진 그릇이나 도자기를 수리하는 공예를 배우고 있었는데, 킨츠기 선생님이 남영동 근처에 가 보면 을지로 못지않은 분위기의 작업 공간들이 꽤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날 수업을 마치고 무작정 이곳으로 와서 둘러보다가 덜컥 여기를 계약하게 됐어요.
보통 직장인분들이 저희 프로그램에 주로 참여하시는데, 이 동네가 강남, 강북 양쪽에서 오가기가 좋아요. 제가 사는 강동에서 오가기도 좋고요. 프로그램 없을 때는 보통 책을 쓰거나 사업 미팅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습니다.
Q. 전문가 선생님들은 어떻게 섭외하시나요?
대부분 제가 팬이었던 선생님들이시기도 하고, 저와 같은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님인 경우도 있어요. 강연을 듣거나 예술 작품을 보다가 좋다고 생각되면 용기를 내서 인사드리고 부탁을 드려요. 좀 적극적인 편이에요. 그렇다고 바로 행사를 함께하고 그런 경우는 없고, 시간이 쌓이면서 교류가 깊어지면 주제가 맞는 게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행사를 기획해요.
Q. 보연정에 오시는 분들은 어떤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오시나요, 아니면 여러 분야에 걸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지속해서 찾아오시나요?
보통 n회차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처음에는 위스키에 관심이 있어서 왔는데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셨다가 마작에도 관심을 갖게 되거나 하는 식이지요. 이 분야는 나도 관심이 있는데 하고 오시는 분이더라도, 대다수 분들이 기본적으로 위스키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단순히 술만 마시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라기보다 뭔가 풍류를 아는 분들이랄까요? 술을 마시는 시간을 좀 더 다양한 이야기로 채우고 싶어 하는 결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 같아요.
Q. 플랫폼 마케터로 일하다가 위스키 책을 쓰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하시게 됐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12~3년 전쯤이네요. 플랫폼 마케터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때가 e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때였어요. 모바일 쇼핑과 앱이 막 생겨나던 초창기라 야근이 엄청 많았어요. 20대에는 친구들 만나서 놀고 싶고 그렇잖아요. 퇴근하고 나면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일에 완전히 매몰돼 있었지요. 저만을 위한 시간이 절실하다 느꼈는데, 하루는 저도 모르게 무턱대고 바에 들어가게 됐어요. 혼술이란 문화도 지금처럼 정착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거기 바텐더 분이 위스키라는 술이 있는데 역사가 어떻고, 만드는 분들은 어떻고, 향이 어떻고 하며 설명해주고는 한번 마셔보겠냐는 거예요. 당시 저에게 위스키에 대한 경험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거든요. 위스키는 보통 회식할 때 3차 정도로 가서 실적 달성했다, 수고했다 하면서 폭탄주로 마시던 술이었으니까요.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에어컨이 어느 정도 차가운 기운을 주고 습도가 아주 낮은 상태에서 위스키 한 잔을 받았는데 향기가 저를 확 압도했어요. 그런 식으로 감각이 열리는 경험을 처음 하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퇴근하고 여유가 있으면 종종 혼자 위스키를 마시러 갔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제가 바에서 직장인의 얇은 지갑으로서는 말도 안 되게 무리일 만큼 마시고 있더라고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위스키 이야기의 재미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어요.
그러면 본격적으로 위스키 공부를 하면서 마시는 게 좋겠다 싶어서 강남에 있던 첫 번째 작업실에서 스터디를 시작했어요. 특정 증류소를 주제로 위스키를 마시기도 했고, 캐스크를 주제로 마셔 보기도 했어요. 요즘 진행하는 프로그램처럼 음악이나 음악가와 연관지어 그해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과 그 시점에 생긴 증류소를 매칭해서 마셔보기도 했고요.
지금처럼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았고, 국내 위스키 관련 서적도 거의 없을 때라 아마존에서 위스키를 검색하면 나오는 상위 열 권의 책을 전부 사서 모임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한 쪽, 한 쪽 독해하면서 공부했어요. 그렇게 스터디가 100회가 넘어가다보니 콘텐츠들이 정말 많이 쌓이게 되었지요.
Q. 최초의 압도적인 감각 경험을 준 위스키가 무엇이었나요?
라프로익이었어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보통 뭔가 향기롭고 달콤한 과실 향을 상상하시던데, 반대로 엄청 강렬한 스모크 향이었어요.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많이 불편한 향이지만 저에게는 아주 익숙한 향기였어요. 저희 아버지가 내과 의사이신데, 어렸을 때 병원에 가서 많이 놀았거든요. 그때 맡았던 병원 냄새가 저에게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집에서는 엄마가 간식 같은 거 못 먹게 하는데 병원에 가면 간호사 언니들이 요구르트도 주고 과자도 주고 또, 소아과에 환자로 온 또래들과 친구처럼 재밌게 놀기도 했어요.
라프로익을 처음 마셨을 때 그 추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어요. 라프로익 안에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소독약 말고 다채롭고 귀여운 과실들이 느껴지는데, 그게 병원에서 먹었던 간식의 맛 같기도 해요. 그런 기억들이 복합적으로 저에게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혹시 위스키가 아니라 몰두할 수 있는 다른 계기를 만났다면 거기에 빠졌을 수도 있을까요?
당시 제 별명이 ‘에듀케이션 푸어’였어요. 월급을 받으면 한 50%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썼거든요. 회사 일이 나를 압도하고, 나를 잃어버린 것 같고, 그래서 주말이나 늦은 시간에 원데이 클래스라도 찾아다니며 정처 없이 떠돌았어요. 회사 동호회를 만들어 캘리그래피를 배우기도 하고 수채화, 유화 선생님을 모시고 워크숍을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제 삶의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거지요.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고상지 님 공연을 보고 나서 탱고 바이올린을 배운 적도 있어요. 어렸을 적 제 첫 반항이 피아노를 배우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엄마가 피아노를 전공하셨는데, 엄마한테 피아노를 배우면서 매번 혼이 났거든요. 그래서 바이올린을 배우게 됐지만 바이올린 선생님들도 다 엄마 친구들이라 매우 불편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성인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바이올린을 그만 둔 거예요.
그런데 고상지 님 공연에서 탱고 바이올린이 마음에 들어왔고, 그 공연의 바이올리니스트 윤종수 님께 연락해서 레슨을 부탁드렸지요. 탱고를 배우지는 못했어요. 탱고를 배우기에는 제가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은 지 너무 오래됐다며 선생님이 냉철하게 평가하신 거지요. 대신 아이리시 피들을 1년 정도 배웠어요. 그러면서 뭔가 음악을 연주하면서 오는 즐거움이라든지 합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지요.
위스키가 아니라 음악으로 빠져들었을 수도 있었지만, 연주를 해 볼수록 취미로는 정말 즐겁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 인생에서 페이드아웃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적절한 시점에 위스키가 나타났고, 한국에 위스키를 잘 아는 사람이 많이 없던 때라 공부를 하면서 점점 내가 이걸로 뭔가를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어요. 그렇다고 작가가 되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지만, 공부를 해 보면 뭔가 새로운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인터뷰 | 이주호, 신태진
사진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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