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집이 있다. 외관은 깔끔하고 절제된 느낌을 주지만, 한 발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이 집의 콘셉트는 명확하다. 일상이 휴식이 되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 가족의 생활 공간이자 사람들을 초대하고 머무르게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최근 주거 트렌드에서 자주 언급되는 ‘공개적인 집’의 훌륭한 사례로, 개인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구조를 갖춘 주택이다.
골목에서 마주하는 외관

도로에서는 집 전체가 보이지 않으며, 좁은 진입로를 지나야 건물이 드러난다. 이러한 깊이 있는 배치는 오히려 기대감을 높인다. 1층은 목재 미닫이문으로 안정감을 주고, 2층은 큰 유리창으로 시선을 열어 대비를 이룬다. 층별로 다른 재료와 투명도를 사용하여 외관에 리듬감을 더했다.
지붕은 단순히 기울어진 형태가 아니다. 평지붕과 경사지붕을 조합해 다양한 각도를 주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지붕의 일부는 옥상 발코니의 벽 역할을 하여 외부 시선을 자연스럽게 차단한다. 디자인과 기능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식이다.
현관 파우치

목재 미닫이문을 열면 바로 실내로 들어가지 않고, 여유 있는 현관 파우치가 먼저 반긴다. 정면 유리 너머로 계단이 보이며, 가느다란 난간과 떠 있는 듯한 디딤판이 조형물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 집의 첫인상은 단순히 ‘아름답다’가 아닌 ‘기분이 좋아진다’에 더 가깝다.
유리문을 통해 들어서면 넓은 현관 홀이 펼쳐진다. 한쪽에는 벤치 겸 수납장이 놓여 있다. 벤치 높이는 앉아서 신발을 신거나 벗기 편하도록 낮추었다. 벤치 아래는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실용적이면서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1층 작업 공간

현관 옆 유리로 구분된 방은 작업 공간이다. 바닥을 한 단 낮춰 천장 높이를 확보했다. 이렇게 낮아진 바닥은 앉았을 때 안정감을 주고, 유리로 들어오는 빛이 공간을 더 넓어 보이게 한다. 벽은 차분한 톤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바닥 타일과 나무 질감의 마감재가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복도는 석고 벽으로 공용 공간과 개인 공간을 나눈다. 이는 단순히 이동 통로가 아닌, 공기와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완충 구간이다. 복도를 지나면 주 침실과 옷장, 욕실이 이어진다.
2층 거실

계단을 오르면 새로운 분위기가 펼쳐진다. 천장이 높아지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거실은 남쪽 발코니와 직접 연결된다. 큰 접이식 문을 열면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사라지며, 바람과 빛이 깊숙이 들어온다.
벽과 천장은 석고 마감으로 통일하여 배경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대신 식탁과 가구에 질감을 더했다. 통원목 상판의 다이닝 테이블은 거실과 다이닝룸의 중심을 잡는다. 긴 벤치형 가구는 벽을 따라 이어지며, 앉는 자리이자 수납 공간이 되어 손님이 많아도 개인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이닝룸과 주방

다이닝룸은 거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조명과 가구 배치로 영역을 나누었다. 테이블 위에는 낮은 조명을 달아 집중도를 높였으며, 식탁은 창과 나란히 배치되어 식사 중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했다.
주방은 2열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한쪽에는 조리대와 조리 기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아일랜드형 카운터가 놓여 있다. 아일랜드는 요리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주방 기기는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는 높이에 배치하여 동선을 단순화했다. 팬트리와 생활용품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정리해 주방의 깔끔함을 유지한다.
루프 발코니

실내에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옥상 발코니가 나온다. 사방이 열려 있는 듯하지만, 지붕과 연결된 벽이 외부 시선을 막아준다. 내부는 프라이빗하고, 외부는 개방된 구조다. 여름에는 작은 수영장을 두고, 저녁에는 야외 식탁을 펼친다.
이 공간은 집 안의 또 다른 거실이다. 거실, 다이닝룸, 주방이 실내의 공공 공간이라면, 루프 발코니는 하늘 아래의 공공 공간이다. 가족과 손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이 집은 단순히 아름다운 집이 아니다.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을 명확히 구분하면서도, 동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설계되었다. 최근 주거 트렌드가 말하는 '환대의 집'이란 이러한 모습에 가깝다. 생활의 장소가 모임의 무대가 되고, 일상이 휴가처럼 느껴지는 구조.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 순간, 이 집에서는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른다. 그리고 그 느린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더 오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