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하루만 맡아달라고 부탁한다면? [임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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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해 4월이었다.
강원도 고성 북끝서점 책방지기 김상아씨의 차로 '누렁이' 한 마리가 뛰어들었다.
"이 누렁이가 글쎄 며칠 전에 나타났지 뭐야. 근데 동네 여기저기서 얻어맞고 다녀. 이대로 두면 개장수에게 끌려갈 거야. 얼마나 가여워." 자크 할머니는 상아씨에게 하루만 맡아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상아씨는 그 두 마음 사이 어딘가 '미지근한 마음' 정도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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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해 4월이었다. 강원도 고성 북끝서점 책방지기 김상아씨의 차로 ‘누렁이’ 한 마리가 뛰어들었다. 비에 쫄딱 젖은 누런 털에 축 늘어진 귀. 어쩐지 기가 죽은 듯한 모습. 귀가하던 상아씨가 차를 세워 내리자, 다가온 존재는 작고 마른 몸을 비볐다.
동네에서 횟집을 하는 할머니가 저만치서 헐레벌떡 오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들 ‘자크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분이었다. 상아씨를 보자, 마침 잘 만났다는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이 누렁이가 글쎄 며칠 전에 나타났지 뭐야. 근데 동네 여기저기서 얻어맞고 다녀. 이대로 두면 개장수에게 끌려갈 거야. 얼마나 가여워.” 자크 할머니는 상아씨에게 하루만 맡아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럼 지낼 곳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가여워하며 기꺼이 환대하는 건 아마도 뜨거운 마음. 감당 안 된다며 모른 척하는 건 차가운 마음. 상아씨는 그 두 마음 사이 어딘가 ‘미지근한 마음’ 정도였단다. 처음엔 조금 미웠다. 왜 내 눈앞에 나타나서. 강아지 산책하느라 책을 볼 시간을 빼앗겨서. 자크 할머니가 돌봐달라는 하루가 이틀이 되고, 보름이 지나가서. 집엔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는 가족이 있어서 데려가지 못하고, 누렁이는 책방 뒤뜰로 왔다. 이대로 떠맡으면 어쩌나. 그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상아씨 책방 앞에는 숯불고깃집 사장님인 ‘몰디브 할머니’가 있었다. 상아씨가 ‘몰디브 할머니’에게 “저 누렁이 어떡하느냐”라고 우는소리를 했다. “그래? 그럼 우리 집에 데리고 와.” 몰디브 할머니는 가게 한쪽을 내어주었다. 그 무렵 행운의 누렁이에겐 ‘럭키’란 이름도 생겼다. 숯불고깃집 할아버지와 동네 미용실 아저씨는 럭키가 살 집을 아치형으로 멋지게 지어줬다.
함께하니 책임이 줄었다. ‘공동육아’ 방식이 됐다. 상아씨는 럭키 사료와 산책을, 몰디브 할머니는 집을, 자크 할머니는 럭키 똥을 치우며 청소를 맡았다. 상아씨에게도 이런 방식의 돌봄은 처음이었다. “뜨겁지도, 넘치지도 않은 미지근한 마음. 그게 누군가를 다시 살게 하는구나 싶어요. 할머니들도 생계를 위해 일하시느라 열정적으로 돌보진 못하시거든요. 그런 미지근한 마음이어도 모이니까, 럭키를 거둘 수 있게 된 거지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오래 묵은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차도로 자꾸 뛰어가려는 중년 남성 취객을 막아선 적이 있다. 그는 내게 욕하고 발길질했다. ‘아, 그냥 모른 척하고 가버릴까.’ 마음이 확 식었을 때 곁에 있던 여성 시민이 경찰에 신고해줬다. 곁을 함께해주었다. 그 덕분에 경찰이 올 때까지 그를 지킬 수 있었다.
경찰이 도착해 중년 남성의 지갑을 확인했을 때,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가족사진이 있는 걸 봤을 때, 그를 포기하지 않아 무사히 살린 게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어찌 보면 미지근한, 각자 가능한 정도의 마음이 모여서 살렸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를. 이처럼 냉기를 없앨 뭉근한 화롯불 정도의 온기가 세상 구석구석을 촘촘히 데우고 있겠지. 그럼 괜찮을 거다. 올해 겨울도, 아마도.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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