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8강전, 우리가 착각한 것과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안승호의 PM 6:29]

안승호 기자 2026. 3. 1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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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WBC 대한민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8강전에서 2회말 주니어 카메네로의 좌익선상 안타에 1루주자 게레로가 홈까지 쇄도해 세이프되고 있다. 연합뉴스

선발투수 류현진의 공은 나쁘지 않았다. 최전성기 때 만큼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보더라인을 사이에 두고 공 한두 개로 볼카운트 싸움을 하는 안정감은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1회를 삼자범퇴로 가볍게 출발한 류현진의 게임이 어려워진 건 2회 선두타자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를 볼넷으로 내보내면서부터였다. 게레로 주니어는 유인구 3개에 반응하지 않았다. 류현진은 우타자 먼쪽으로 첫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볼카운트 3-1에서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스트라이크존 아래로 떨어뜨렸으나 타자의 방망이는 나오지 않았다.

류현진은 지난 14일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도미니카공화국과 경기에서 2회말 선두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며 위기를 맞았다. 1회를 마칠 때만 하더라도 3~4이닝은 거뜬할 것으로 기대된 류현진은 2회 아웃카운트 2개를 잡을 때 투구 수가 40개까지 늘어 마운드를 내려왔다.

WBC 8강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서 역투하는 류현진. 연합뉴스

이른바 전문가 그룹 대부분이 ‘착각’을 확인한 흐름이었다. 이번 대회 최강 라인업을 자랑하는 도미니카공화국 타자들은 보더라인 멀리 벗어나지 않는 공에는 방망이를 적극적으로 낼 것으로 여겼다. 도쿄 1라운드와 달리 마이애미 8강전에선 그래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유인구를 쓸 필요성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도미니카공화국 타자들은 아시아권 투수들의 습성과 전략을 계산에 넣어둔 듯 스윙을 아꼈다. WBC 초창기만 하더라도 대회 정체성에 대한 참가 선수마다의 해석이 조금씩 달랐다. 당시에도 미국이나 중남미 팀들 라인업에는 엄청난 이름들이 여럿 있었지만 올스타팀과 국가대표팀 사이 어느 지점의 마음가짐으로 뛰는 느낌의 슈퍼스타도 보였다.

한국이 17년 만에 진출한 8강 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 도미니카공화국뿐 아니라 미국, 베네수엘라 등 강호 대부분이 국가대표팀이란 100% 정체성으로 경기하는 인상이 뚜렷했다. 게레로 주니어가 욕심내지 않고 볼넷으로 걸어 나가며 찬스를 만들려는 접근법과 ‘밑장빼기’ 홈 슬라이딩으로 아웃타이밍을 뒤집은 ‘1조원의 사나이’ 후안 소토의 열의에서 WBC 토너먼트의 벽은 더 높아 보였다.

대한민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WBC 8강전. 3회말 무사 1루 도미니카 게레로의 우중간 2루타로 1루 주자 소토가 홈으로 쇄도해 세이프되고 있다. 연합뉴스

아웃타이밍을 아웃으로 잡아내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2회 1사에서 후니오르 카미네로의 좌익선상 안타가 흘러나갔을 때 1루주자 게레로 주니어의 홈쇄도는 분명히 무리였지만 우리는 눈앞 ‘아웃타이밍’을 우리 시간으로 만들지 못했다. 좌익수 저마이 존스와 유격수 김주원으로 연결된 송구는 파울라인 안쪽으로 치우쳤다. 무실점으로 상대 흐름을 끊을 수도 있던 2회에 대표팀은 3실점 했다.

3회 무사 1루에서도 게레로 주니어의 우중간 2루타에 1루주자 소토는 폭주했다. 3루를 돌았다. 또 한번의 아웃타이밍은 소토의 몸을 비트는 트위스트 슬라이딩에 세이프로 바뀌었다. 비디오판독까지 실패로 돌아가며 대표팀은 3회에도 4점을 내줬다.

누가 봐도 힘과 구속 차이는 확연했다. 그러나 10점 차까지 벌어지는 과정에서 한국 선수들이 우리만의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기도 했다. 7회 2사에 오스틴 웰스에게 콜드게임 3점홈런을 맞기 전에도 유격수-2루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 기회를 잡았으나 김주원의 포구에 이은 토스와 2루수 김혜성의 송구가 반의 반 박자씩 늘어지며 이닝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한국야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14일 WBC 8강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서 패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야구대표팀은 1라운드 최종 호주전에서 ‘2실점 이하, 5점 차 이상’이라는 8강행 조건을 소설처럼 채우는 초절정 집중력을 보였다. 대표팀이라는 무게감을 가슴에 안고 레이스를 벌인 정신을 그대로 가져가되 장면마다 보인 기술적 아쉬움은 반드시 씻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회 시속 157㎞의 강속구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고도, 미트를 땅에 대며 유인구를 주문한 포수 박동원에 반응하지 못하고 볼넷 3개를 연달아 내준 곽빈의 WBC도 그저 기억 한 페이지로 남아서는 안 될 일이다. 아픔을 아프게 느껴야 더 나은 다음이 온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하고 돌아오는 대표팀. 다음 국제대회를 위한 준비를 시작할 시간이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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