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의 연예인이자 범접할 수 없다는 이 여배우 근황

(Feel터뷰!) 영화 '데드맨'의 김희애 배우를 만나다

1월 6일 삼청동 카페에서 <데드맨>의 심여사를 연기한 김희애를 만났다. 지적이고 우아했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성숙한 아름다움의 대명사였다. 데뷔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성장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었다. 해외 진출도 바랬다. “새로운 환경, 작업 방식이 궁금하고 배워보고 싶다”며 작은 역할도 좋고, 해외 진출도 다 원한다고 밝혔다.

깐깐하고 카리스마 있는 전문직을 자주 맡아 생긴 이미지가 있지만 의외로 허당끼 있는 매력이 있었다. 종종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변을 웃게 했다. 특히 과거보다 지금이 연기 열정이 더 크다며 “20대 때는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질 정도의 생활이었다. 어를 때 데뷔해서 여기까지 올지도 몰랐다. 그만두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 하면서 제 존재 이유가 생겨 버렸다. 연기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오래 할 수 있다면 그저 감사한 일이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영화 <데드맨>은 이름값으로 돈을 버는 일명 바지사장계의 에이스가 1천억 횡령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후, 이름 하나로 얽힌 사람들과 빼앗긴 인생을 되찾기 위해 추적에 나서는 이야기다.

김희애는 이름 알리는 데 정평 난 정치판 최고의 컨설턴트 ‘심여사’를 연기했다. 뛰어난 언변과 독보적인 카리스마로 수많은 국회의원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화려한 의상과 볼드한 장신구, 볼륨감 있는 헤어스타일은 물론, 컬러렌즈까지 끼며 변신에 성공했다.


-과거 인터뷰를 더듬어 보니 ‘연기하면서 전율을 느꼈다’는 말을 했다. 심여사를 연기하며 전율이 찾아왔을 때가 있었나.

“전율을 경험하려면 감정의 끝까지 가 토해내는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심여사는 이성적일뿐더러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라 다른 색깔을 보여주어야 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이만재의 오프닝이 강렬했었다. 지옥의 관이라 불리는 사설 감옥에 수감된 만재를 구출해서 나오자마자, 따귀 때리는 장면이 기억 난다. 평상시에는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냐, 작품을 통해서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느꼈다”

-심여사는 본인 모습이 어느 정도 반영된 건가. 본인 분량을 보기 힘들다고 했는데, 그래도 이 장면은 신경 썼다고 자부했던 장면이 있을 것 같다.

“심여사는 나와 전혀 다르다. 가끔 명랑한 일상을 다룬 톤이나 역할도 갈망한다. 현실적이지 않은 작품을 맡아와서 캐릭터도 이에 따라왔던 거다. 생활 대사, 인간적인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다. ‘밥 먹었니?’ 같은 대사가 오고 가는 작품도 하고 싶다. 다만, <데드맨>에서는모든 장면에 신경 썼다. 연기는 정답이 없다. 배우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수천만 가지의 감정이고 달라진다”

-전문직 여성 캐릭터의 대명사가 된 것 같다. <데드맨>의 정치판 컨설턴트 심여사와 [퀸메이커]의 황도희와 겹친다. 곧 공개되는 시리즈 [돌풍]에서는 국무총리에게 맞서는 경제부총리다. 전문용어도 많고 정치물이라는 공통점도 포함이다.

“(웃음) 정치는 하나도 모르고 선거철이라 신경 쓴 것도 아니다. 우연히 정치 소재 작품을 하게 되었고 공개 시점이 겹친 것뿐이다. 글쎄.. 비슷해 보이는 역할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으로 볼 때,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 심여사는 정치를 손에 두고 쥐락펴락하는 어나더 레벨의 인물이다. 세 작품 모두 캐릭터의 결이 완전히 다르고 색깔도 달라서 저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심여사를 또 다른 옵션으로 연기해 보고 싶은 욕망도 있다. ‘김희애가 이런 역할도 할까’ 싶어 비틀어 봤는데, 그걸 또 돌파하고 싶다. 앞으로의 연기 경력에 어쩌면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겠다. 배우의 평생 숙제일 테고 재미도 있다. 앞으로도 여러 옵션을 실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영화처럼 이름은 브랜드이고 이미지다. 이름 석 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겠다. 본인 이름값을 매긴다면 얼마 정도 생각하는지.

“배우로서도 그렇지만 이름값의 소중함을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500만 원에 이름 팔고 관 속까지 들어갔던 이만재의 이야기를 보고 생각이 많았다. 실제로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다고 하니 놀라웠다. 제 이름값은 얼마로 환산하기는 뭐하고 비싸게 팔릴 수 있도록 열심히 만들어 놔야겠다. (웃음)”

-상대 배우 조진웅이 앞선 인터뷰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선배였다고 극찬했다. 함께 호흡 맞춰 보니 어땠나.

“현장에서 연기할 땐 집중하는 편이라 푸근하거나 정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다. 근데 또 한 번 정 주면 질척거릴 정도로 많긴 하다. (웃음) 이번에는 괜히 또 그러면 부담스러워할까 봐. 눈치 봤다. 진웅 씨는 유머러스하지만 선 넘지 않고 지키는 배우였다. 각자 사담은 없었고 일만 했다. (웃음) 오히려 그런 스타일인가 싶어서 방해하지 않고 저도 선 넘지 않았다”

-얼마 전 하준원 감독과 <괴물> 공동각본을 쓴 봉준호 감독과 GV를 했다. 봉준호 감독이 김희애 연기에 극찬했다고 들었다.

“세계적인 감독의 GV라 내내 행복했다. 함께 GV 해주신 건 됨됨이를 보고 의미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끝나고 식사 자리도 함께 했는데 ‘월드 클래스는 뭐가 달라고 다르구나’ (웃음) 느꼈다.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조금 유명해지면 착각 속에 빠져 태도가 달라지더라. 그러다가 보면 업계에서 안 보인다. 남다른 아우라가 오스카라는 결과물을 얻었다고 끄덕였다. 성품, 실력, 태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더라”

-하준원 감독은 김희애 버전으로 다시 써 시나리오를 건넸다고 들었다. 애드리브도 안 하고 안 고친다며 작가의 글을 존중해 준다는 생각이라 감동을 전했다. 대본에 충실한 편인 거 같다.

“순발력이 부족하고 애드리브에 재주가 없다. 제가 배우로서 발전하고자 하는 요소가 저는 버리고 최대한 역할로 살아가려고 하는 거다. 그래서 시나리오는 있는 그대로 해야 한다고 본다. 어미, 조사가 달라지면 혀가 꼬여서 엔지가 나더라. 제 입맛대로 편하게 바꾸면, 그걸 저를 통해 나오는 대사밖에 안 된다. 대사를 캐릭터에 흡수하게끔 하는 게 저의 원칙이다. 완벽하게 대사를 숙지하고 인식 못 할 때까지 숙성되어 있어야 좋은 요리가 나온다. <데드맨>은 워낙 좋은 대사와 명언이 많아서 버릴 게 없었다”

-현장에서 하준원 감독은 어떤 디렉션을 주었는지 비하인드를 들려줄 수 있을까?

“모범생이다. 선비 같고 예절도 바르시다. 수많은 선택에서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모질어야 하는데 안쓰러울 정도로 착해서 걱정될 정도였다. 저는 감독의 디렉션이 오히려 편하다. 세상과 세대가 달라져서 작업 방식도 전문적이라 믿고 의지할 수 있다. 그래서 디렉션이 더 발전될 기회라고 생각해서 좋아하는데, 하 감독님이 디렉션을 잘 안 주시더라. (웃음) 선배라서 조심스러운 건지, 믿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의 여왕으로 불린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영어 공부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영어 학원도 다니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요즘말로 갓생 살고 계신다.

“그게 관리라고도 할 수 없다. 행복해지려고 그런다. 인생의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다. 배우가 캐릭터로만 살아오고 인기에 편승하다 보면 예민해진다. 자기는 없고 착각 속에 붕 떠 있게 된다. 연기를 오래 하면 정신적으로 결핍이 생긴다. 일과 인생을 동시에 살아야 건강하다. 40대부터 생긴 루틴인데 앞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막 몸 만들어야지, 영어 공부해야 된다는 그런 압박이 아니다. 아이들 키우면서 피곤해서 일찍 자고 일찍 깨면서 아침형 인간이 된 것 같다. 6시에 기상해서 20분짜리 EBS 라디오를 들으면서 1시간 동안 자전거를 탄다. 복습과 예습까지 하면 마무리다. 한 과목당 20분이 딱 적당한 시간이더라.

절대 공부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게임하는 것처럼 재미있다. 한 번 들어보면 교제도 너무 좋고 절대 후회 안 한다. (웃음) 학원 다니기 힘든데 방송은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청취 레벨 범위도 넓어서 누구나 듣기 좋다. 오후 3-4시까지만 운동, 청소, 공부, 음식을 하고 이후부터는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누워서 예능도 본다. 오전에 열심히 보내고 오후는 즐기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고 보상이다”

-혹시 영어 공부를 놓지 않고 있는 게 앞서 말한 해외 진출도 포함인가. <더 문>에서 나사 연구원 역할 때문에 시작한 건지, 앞서 말한 할리우드 진출 의지 때문일지 궁금하다.

“아.. 만약 캐스팅이 들어온다면 지옥이겠지만 지옥을 겪어야 천국이 온다. 한국과는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해 보고 싶은 소망과 갈증이 있다. 다른 나라라도 동종업계 사람이 가족보다 일에 대해서는 더 잘 아는 사람 아닌가. 이 분야에 오래 머물고 싶고 머물고 싶다는 건 희망이고 복이라고 생각한다.

데드맨
감독
하준원
출연
조진웅, 김희애, 이수경, 하준원
평점
2.26

내일이 불행하다면 아무것도 안 할 거다. 연기나 루틴은 숨쉬기 위한 행복이다. 긍정적이거나 멘탈이 강한 편이 아니라 매일 훈련해야 한다. 의식처럼 하루를 위해 치러내는 거다. 행복하지 않다면 연기하지 않을 거다”

한편, 봉준호 감독 영화 <괴물>의 각본을 공동 집필한 하준원 감독의 데뷔작으로 2월 7일 개봉해 절찬상영중이다.

글: 장혜령 사진: 콘텐츠웨이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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