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21은 수단일 뿐..." UAE가 KF-21 블록3에 투자하는 진짜 이유

2025년 3월 25일,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조용하지만 묵직한 역사가 쓰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시험비행과 개발 과정을 거치며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온 KF-21 보라매의 첫 양산기 출고식이 마침내 열린 것이죠. 시제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공군에 인도될, 진짜 전투기가 생산 라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출고식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방산 업계는 또 다른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UAE 사절단이 오는 5월 한국을 방문해 KF-21 블록 3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는 것이죠.

단순한 수출 협상이 아닙니다. 차세대 전투기의 미래 형상 자체를 함께 설계하겠다는, 전례 없는 수준의 협력이 시작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KF-21 블록 3란 무엇인가 — 전투기의 '다음 세대'를 향해


KF-21을 이해하려면 먼저 '블록(Block)'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전투기 개발에서 블록이란 동일한 기체 플랫폼 위에서 단계적으로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발전 단계를 뜻합니다.

현재 양산이 시작된 블록 1은 공대공 전투, 즉 하늘에서 적기를 격추하는 임무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이후 블록 2에서는 공대지·공대함 능력이 추가되고, 그다음 단계인 블록 3에 이르러서야 KF-21은 비로소 완전한 4.5세대 전투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블록 3의 핵심은 바로 유무인 복합 체계, 영어로는 MUM-T(Manned-Unmanned Teaming)라고 부르는 기술입니다.

조종사가 탑승한 유인 전투기가 여러 대의 무인기를 마치 편대원처럼 지휘하고 통제하는 개념이죠.

블록 3가 완성되면 KF-21 조종사는 혼자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명령하는 무인 전투기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전 세계 공군이 가장 주목하는 미래 전장의 핵심 기술이고, UAE가 공동 개발에 뛰어들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UAE는 왜 블록 3에 투자하는가 —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다


UAE가 KF-21에 관심을 가져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 협력의 성격은 기존의 무기 도입 계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UAE는 단순히 완성된 전투기를 사겠다는 것이 아니라,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자국의 요구 사항을 설계에 반영하겠다는 것이죠.

그 핵심에 바로 UAE가 자체적으로 개발 중인 무인기가 있습니다.

UAE는 독자적인 무인기 개발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무인기들을 미래 전장에서 실제로 운용하려면 유인 전투기와의 연동 체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UAE의 요구는 명확합니다. KF-21 블록 3의 유무인 복합 체계를, 자국이 개발 중인 무인기에도 호환·통합할 수 있는 형태로 설계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범용적인 MUM-T 아키텍처를 원하는 것이죠.

이는 UAE 입장에서 매우 영리한 전략입니다.

완성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발 단계에서 투자금을 투입해 자국 무인기와의 연동 기술까지 확보하겠다는 것이니까요.

한국 입장에서도 블록 3 개발 비용을 분담할 파트너를 얻는 동시에, 국제적 수출 가능성을 넓힐 수 있는 윈윈(win-win) 구도인 셈입니다.

유무인 복합 체계, 왜 이것이 미래인가


유무인 복합 체계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전장에서 전투기 조종사는 극도로 복잡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적의 미사일을 피하면서 동시에 지상 목표물을 타격하고, 아군 함선과 교신하며 편대를 이끌어야 하죠.

이 모든 것을 한 명의 인간이 감당하는 데는 물리적 한계가 있습니다.

바로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MUM-T입니다.

조종사가 직접 위험 지역에 진입하는 대신, 무인기를 먼저 투입해 적의 방공망을 탐색하거나 교란하고, 조종사는 안전한 거리에서 전체 상황을 지휘하는 방식입니다.

미국의 F-35와 함께 운용되는 CCA(Collaborative Combat Aircraft) 프로그램이나, 영국·일본·이탈리아가 공동 개발 중인 GCAP의 무인기 연동 계획도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KF-21 블록 3가 이 기술을 성공적으로 구현한다면, 한국은 독자적인 MUM-T 플랫폼을 보유한 세계 소수의 국가 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UAE와의 공동 개발은 그 기술이 처음부터 국제 표준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5월 계약, 그 무게가 남다른 이유


오는 5월 UAE 사절단의 방한은 단순한 외교적 방문이 아닙니다.

계약서에 서명이 이뤄진다면, 그 순간부터 KF-21 블록 3는 한국만의 프로젝트가 아닌 한·UAE 공동 프로젝트로 전환됩니다.

이는 KF-21의 국제적 위상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인도네시아가 재정 문제로 분담금 납부에 어려움을 겪으며 KF-21 공동 개발국으로서의 역할이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UAE의 참여는 단순한 자금 유입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오일머니로 대표되는 풍부한 재정력과 함께, 실제 운용 요구 사항을 가진 수요자가 개발 초기부터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KF-21 블록 3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발자와 사용자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설계 방향을 논의하는 것이죠.

또한 UAE가 참여한 무기 체계라는 사실은, 중동을 비롯한 여타 국가들에 KF-21의 신뢰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마케팅이 되기도 합니다.

UAE는 F-16, 라팔(Rafale), 유로파이터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기들을 운용해온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가 한국 전투기의 차세대 형상 개발에 직접 투자한다는 것은, 국제 방산 시장에서 KF-21의 경쟁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죠.

양산과 블록 3, 두 개의 시계가 동시에 돌아간다


첫 양산기 출고와 블록 3 공동 개발 착수가 거의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보통 신형 전투기는 현재 형상의 양산과 안정화에 집중한 뒤, 이후 단계에서 업그레이드를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죠.

그러나 KF-21은 양산과 다음 세대 개발이 사실상 동시에 진행되는 이례적인 속도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KAI와 방위사업청이 KF-21을 단순한 전투기 한 기종이 아닌,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플랫폼'으로 운용하겠다는 전략적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UAE와의 계약이 5월에 성사된다면, 한국은 첫 양산기를 세상에 내보낸 지 불과 두 달 만에 차세대 블록 공동 개발 계약까지 체결하는 셈입니다. 그야말로 숨 가쁜 일정이죠.

앞으로 남은 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공동 개발에서는 기술 이전의 범위, 지식재산권 귀속, 양산 시 우선순위 등 복잡한 협상 사안들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025년 봄 사천의 공장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가 한국 항공 산업의 역사에서 결코 작지 않은 챕터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첫 양산기가 활주로를 향해 움직이는 그 순간, 블록 3의 청사진도 함께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