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참사로 불거진 아주 오래된 논란

이오성 기자 2024. 7. 1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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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자동차 사고의 가해 운전자는 차량 급발진을 주장한다. 민사사건과 달리 형사사건에서는 급발진 가능성을 인정한 판결이 있다. 고령 운전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
7월4일 오전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 현장에 피해자를 기리는 꽃이 놓여 있다. ⓒ시사IN 이명익

9명이 숨진 서울 시청역 자동차 참사는, 해묵었지만 점점 심각해지는 이슈에 다시 불을 지폈다. 하나는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또 하나는 고령자 운전 문제다. 이번 참사는 68세 운전자가 7월1일 밤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제네시스 G80 차량으로 200m 가량을 최대 100㎞(추정) 속도로 역주행한 후 인도로 돌진하면서 벌어졌다.

사고 직후 운전자는 급발진이라고 주장했고, 사고 사흘째인 7월3일 경찰은 운전자가 사고 직전 액셀을 강하게 밟았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전했다. 아직은 모든 것이 ‘추정’인 상태에서, 운전자의 운전 미숙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마지막에 차가 정상적으로 멈췄다는 점에서 급발진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지만, 급발진한 차가 주행 도중 충격으로 원상복구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기 때문에 최종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 급발진 인정 사례가 ‘0건’이라고?

급발진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매년 의심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는 데 비해 그 원인이 밝혀진 적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시청역 사고 원인이 급발진? 국내 인정 사례는 0건’ 같은 제목을 달고 쏟아지는 기사들은 잘못됐다. 제목만 놓고 보면 급발진은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렇지 않다. 급발진이 인정되지 않은 것은 ‘민사사건’일 경우다. 급발진 차량의 운전자가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을 청구한 결과 법원이 자동차 회사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운전자가 피고인이 된 ‘형사사건’의 경우는 다르다. 운전자가 불가항력으로 사고를 냈음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여럿 있다. 2011년 경북 안동에서 급발진 의심 정황 속에 70대 할머니를 숨지게 한 사건에서 법원은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운전자의 차는 다른 차와 연이어 충돌한 뒤에도 엔진이 계속 굉음을 울리며 돌아가다가 겨우 멈춰 섰다. 담당 판사는 “현장 목격자들이 대부분 큰 굉음과 함께 앞바퀴가 헛돌고 빠른 속도를 냈다고 증언하는 등 여러 정황이 A씨의 제동 조작 과실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된다”라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운전자의 ‘과실’이 아니라는 말은, 결국 급발진 등 ‘차량 결함’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형사사건에서 급발진 가능성을 인정받으려면 다양한 증거가 필요하다. 교통사고 전문인 한문철 변호사는 7월2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블랙박스 오디오 장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빠르게 달리는 영상만으로는 자동차 결함인지 운전 미숙인지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이 차 미쳤어” 같은 ‘소리’가 함께 제출돼야 법원에서 유리한 판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19년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건에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량 결함이 없다’라고 감정했지만, 법원은 “차가 미쳤어, 미쳐” 하는 블랙박스 소리 등을 근거로 운전자 과실로 볼 수 없다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2022년 12월6일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60대 여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급발진 의심 사고로 지하통로에 추락해 동승한 12살 손자가 목숨을 잃었다. ⓒ강릉소방서 제공

‘차량 결함은 없지만 운전자 잘못도 아니다’라는 의아한 판결은, 법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현행 법(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을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자동차의 결함을 소비자가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다. 급발진 의심 사례가 잇따르면서 이런 법령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제21대 국회에서도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해외에서는 제조물책임법을 손보고 있다. 올해 3월 유럽연합(EU)은 소비자가 제품의 결함과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과도하게 어려운 경우 그 입증 책임을 제조사에 지우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런 변화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AI) 기술과도 관련이 크다. 자동차 등 다양한 제조물에 고도의 AI 기술이 접목될 경우 소비자가 그 결함을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내외에서 관련 법 개정 요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 고령 운전자 면허 제한이 해법일까

시청역 참사를 일으킨 차 아무개씨의 나이는 68세다. 현행 법에서는 고령 운전자의 기준을 따로 정의하고 있지 않지만, 65세 이상을 고령 운전자로 통칭한다. 시청역 사고 이후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은 최근에도 있었다. 지난 5월 정부는 고령 운전자 등 고위험군에 대해 야간·고속도로 운전 등을 금지하는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를 비판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졌고, 정부는 하루 만에 고위험군에 연령대를 특정하지 않겠다며 발표 내용을 수정했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사망률이 높다. 지난해 3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최근 10년간(2012~2021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를 분석한 결과 고령 운전자로 인한 사망 비율이 13.3%에서 24.3%로 11%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아래〈그림〉 참조). 또 최근 5년간(2017~2021년) 운전 미숙으로 인한 사망자 발생 사고 중 30%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일괄 제한하기는 어렵다. 특히 대중교통이 취약한 농어촌 지역 거주자에게 이런 규제는 치명적이다. 하루에 버스가 한두 번밖에 다니지 않거나 아예 대중교통이 전무한 지역도 많다. ‘카카오택시’ 같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하지 않으면 도심 거리에서 택시 잡기조차 어려워진 시대에, 고령자들의 운전을 무조건 제한하는 법은 국민의 기본 이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 참고할 사례는 없을까. 2023년 국회입법조사처가 펴낸 ‘고령자 운전면허 관리제도의 해외 사례와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70세 이상 운전자는 운전면허 재심사 결과에 따라 거주지 내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제한면허 등을 취득할 수 있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75~80세 운전자는 4년, 81~86세는 2년, 87세 이상은 1년 주기로 운전면허 갱신을 의무화하고 있다. 갱신 시험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운전 시간 등을 제한한 면허를 발급한다.

초고령사회로 일찍 진입한 일본의 경우 노인들의 ‘페달 오조작’ 사고가 빈번하다. 고령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잘못 인지하는 사고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은 2022년부터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서포트카 면허’ 제도를 실시했다. 서포트카는 충돌 시 자동 브레이크 장치가 작동하고, 급격한 가속 시에는 엔진이 작동하지 않게끔 설계된 자동차다.

한국은 자발적 면허 반납 제도(서울시의 경우 10만원짜리 교통카드 지급)와 면허 갱신 의무화 제도 정도가 관련 조치의 전부다. 75세 이상은 면허 갱신 시 인지능력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65세 이상은 교통안전교육만 받으면 되는 까닭에 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령 운전자의 이동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잇따르는 사고에 대비하는 제도 보완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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