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비 100억 원 요구”…KT는 왜 노후 아파트에 이사했나?
■ 노후 아파트 재건축하는데…"KT 이전비 100억 원 요구"
제보를 받고 찾아간 아파트는 굉장히 오래됐습니다. 준공 연도는 1978년, 올해로 지은 지 45년이 되는 소규모 아파트로 전 세대는 지하층을 통틀어 18세대.
외벽에는 한 손이 쑥 들어갈 만한 큰 균열이 군데군데 나있고, 벽이 밀려 내려온 곳도 일부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KT통신시설이 있다는 걸까?
아파트로 들어서는 골목 입구, 건물 바닥 쪽에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파트 지하층의 유일한 창문인데, 그곳에 바로 KT 통신시설이 들어서 있다고 했습니다.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니 환풍기 너머 빽빽하게 쌓인 통신 기계들이 보였습니다.
이 아파트는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주변 아파트 2곳과 함께 재건축 추진을 위해 2020년 10월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을 설립해 인가를 받았습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소규모의 노후화되고 불량한 공동주택을 새로 짓는 사업이라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사업보다는 절차가 간소합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빠르게 재건축이 진행될 수 있을 거로 기대했습니다. 일정대로라면 다음 달 조합원 분양 신청을 진행할 예정.
그런데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18세대 가운데 지하층을 소유하고 있는 KT가 통신설비를 이전하는 데 최대 100억 원 정도의 비용과 1년 정도 이전 기간이 걸린다고 통보해온 겁니다. 주민들은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작은 규모의 오래된 아파트라, 아파트 전체 세대의 보상비를 다 합친다 해도 KT가 요구하는 이전비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KT가 터무니없는 이전비로 사실상 '알박기'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아파트 전체를 다 팔아도 백억 원이 될 듯 말 듯한데, KT 자기들 시설 해놓은 거, 그 돈 (이주비로) 내라 하면 되겠어요, 그게? 우리가 잘 모르는 걸 이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재건축하면 협조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지금 와서 비용을 내라고 하니까 가만히 생각하면 완전히 속은 거죠."
-조필수 / 00맨션 입주민
KT 측은 이전비가 과도하다는 주민들의 주장에 대해 통신설비 이전에는 도로 공사 등이 포함돼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는 입장. 특히 이전 부지의 위치에 따라 비용이 크게 차이가 난다며, 현재 50~80억 원 정도가 소요되는 다른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다며, "공법 도입 등으로 이전 비용을 줄이도록 최대한 협조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 '2만 회선 통신시설'이 50년 된 노후 아파트에…안전할까?
주식회사KT는 2015년 3월 170 제곱미터 규모의 이 아파트 지하층을 1억 3천만 원에 매입했습니다. 2만 회선의 통신설비를 이전한 뒤 운영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해당 통신설비는 대구시 동구 신천3동과 수성구 범어동 일대에 일반 유선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수성구청을 비롯해 동부소방서, 법원·검찰, 방송사 등 대구의 주요 국가기간시설들이 밀집한 곳. 이 때문에 화재나 지진 등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유선전화와 팩스 등의 통신서비스에 일시 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통신설비의 안전 문제 때문에 정부는 '방송통신설비의 안전성·신뢰성에 대한 기술기준'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KT가 아파트 지하층에서 운영 중인 2만 회선의 통신설비도, 관련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통신국사(방송통신설비를 운영하는 건축물)'에 포함됩니다. 다만, 등급을 부여해 관리하는 중요통신시설은 아닙니다.
안전성 관련 기준에서는 '통신국사의 조건'으로, 입지와 화재, 보안 등 7가지 조건을 걸고 있습니다.
○ 임차 통신국사는 내진구조의 건축물을 선정한다.
★ 통신국사는 지진대책 기준에 적합하여야 한다.
★ … 바닥시설은 지진대책에 적합하여야 한다.
○ 출입구에는 시건장치를 설치, 출입통제관리를 실시한다.
★자동화재경보설비 및 소화설비를 적절하게 설치한다.
(★ 의무사항, ○ 권고사항)
하지만 해당 아파트는 1978년에 지어져 '내진 설계' 자체가 전무합니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 통신시설로 내려가는 1층 출입문은 누구나 쉽게 열 수 있는 등 보안이 허술했습니다. 또, 노후 아파트인 탓에 전기나 배수시설도 오래돼 안전사고나 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건축물 자체에 대한 전문가 판단도 들어봤습니다. 정부 지정 안전진단기관의 한 전문가는 취재진과 동행한 건축물 상태평가에서, '종합평가등급 D등급 정도가 나올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건물 곳곳에서 균열과 심한 누수가 발견되는 것은 물론 건축물 안전성과 직결된 구조체에서도 철근 노출, 녹슬음 등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건물 바닥에서는 일부 침하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D등급은 '주요 부재에 결함이 발생해 긴급 보수·보강이 필요하며 사용 제한 여부를 결정하여야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에 대해 KT 측은 "해당 시설은 지진, 화재, 침수 등의 재해를 대비해 다른 KT빌딩, 국사와 동일한 통신시설 관리 기준으로 운용 중이며, 24시간 감시 및 긴급 복구 체계로 장애 발생 시 즉각 초동 대응이 가능하고, 끊김 없는 통신 서비스 제공을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장비랙(통신설비를 넣어두는 선반)을 내진랙으로 설치하고, 바닥에 내진 앙카볼트 시공을 완료'했으며, 자동소화설비 등 소방시설도 구축했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애초 지은지 40년이 다 된 아파트에 대규모 통신시설을 이전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 '재건축 알았으면서 일부러 이전?' VS '당시 가장 적합한 입지'
그렇다면 KT는 애초에 왜 노후 아파트 지하층에 통신설비를 옮긴 것일까?
2015년 KT는 대구 범어네거리 전화국을 주상복합건설사업 부지로 매각한 뒤, 인터넷 광케이블 등 주요 통신시설은 대구 효목사옥으로 옮기고 일반전화 유선 통신설비만 전진배치(서비스 지역에 가깝게 위치)를 위해 해당 아파트 지하층에 이전했습니다. 2만 회선의 설비를 직선거리로 9백 미터 정도 떨어진 이 아파트로 이전하는데 든 돈만 75억 원. 시간은 1년 정도 걸렸습니다.
주민들은 큰 돈과 시간이 드는데도, 굳이 재건축이 예상되는 노후 아파트에 설비를 옮긴 것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나갈 때도 그만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니 수십 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쓸 건물이 더 적합하지 않았냐는 겁니다. 이전 당시 아파트는 지은 지 38년이 넘었고, 재건축조합 설립 추진위원회가 설립된 지도 12년이나 지난 때였습니다. 특히 주민들은 지하층에 대규모 통신시설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이전이 끝난 뒤에야 알게 돼 크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재건축 무산과 통신설비로 인한 화재나 폭발 등 안전사고를 우려했습니다.
"(2015년에) 남자들이 지하에 들락거리길래 '뭐하시려고요?'하고 물었어요. '그냥 사무실 좀 보려고요' 이러더라고. 며칠 뒤에 지하에 뭐가 있다고 해서 들어가보니까 50평에 물건이 꽉- 찬거야. 깜짝 놀랐어요. 이 물건을 주민들 모르게 밤중에 다 들여가지고. (아파트 입주민 A씨)"
그 때문에 당시 KT는 '재개발 추진 시 협조'하며, '외벽 도색'과 등을 제공하겠다고 합의서를 작성해 반발을 무마시켰습니다. 그러나 최근 재건축이 본격화되자 막대한 이전비를 요구한 겁니다.
이전비 요구의 법적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0조(설비의 이전 등)'. 법령상 설비 이전 비용은 '원인을 제공한 자가 부담'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민들은 KT와 합의서를 작성할 때, 재건축이 추진되면 조합이 지하층에 대한 보상비 외에 이전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과 법적 근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워낙 오래된 아파트라 수년 내 재건축이 이뤄질 게 예상 가능한데도, KT가 이전비 부담에 대해 미리 알리지 않아 주민들이 수십억 원의 이전비를 떠안게 됐다는 겁니다.
"KT는 재개발하는 줄 다 알면서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당시에 이전비에 대해 알았으면 절대 합의하지 않았을 거고. 지하층에 물도 안 나오고 환기구도 하나밖에 없는데 왜 KT가 그런 데를 얻어왔느냐 이겁니다. 고의적으로 들어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중식/ 0000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장)
이와 관련해 KT는 재건축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을 하지 못해 이전비에 대해 논의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2015년 시설 이전 당시 주변 후보 지역 6곳에 대한 평가 결과, 기술적인 부분, 시설 인허가 여부 등을 고려했을 때 해당 지역 외에는 구축이 불가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재건축 조합과 합의해 제3의 신설 후보지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국가기간통신사업자인 KT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에 대한 근시안적 대응으로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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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현 기자 (shinjou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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