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한 군인 아들의 정자를 보존하는 이스라엘 부모들

사망하기 불과 며칠 전 리프 하루쉬가 갓 태어난 사촌 동생을 안고 있는 사진. 하루쉬의 아버지는 아들이 평소 자녀를 원했다고 믿는다

이스라엘에선 점점 더 많은 부모들이 사망한 아들의 시신에서 정자를 채취해 보존하길 원하고 있다. 특히 군인 아들을 떠나보낸 부모들이 이러한 바람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와 관련한 절차에 대한 일부 규정이 완화됐으나, 유가족들은 여전히 정자 사용을 위한 긴 법적 절차에 분노와 좌절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비 하루쉬는 군에서 사람이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리기 며칠 전부터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직감했었다고 한다.

올해 4월 6일 가자지구 남부 전투에서 스무 살 난 아들 리프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을 떠올리는 아비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비는 이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들이 주어진 시간 안에 아들의 정자를 채취할 수 있다면서, 관심 있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아비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아들이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서 “끔찍한 상실을 겪었지만, 우리는 살아가길 택했다”는 설명이다.

아비는 “아들은 아이들을 사랑했고, 자녀를 갖고 싶어 했다. 분명히 그랬다”고 덧붙였다.

아비 하루쉬는 아들에게 아이가 생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우리가 꼭 붙들 수 있는” 무언가가 돼준다고 했다

리프에겐 아내나 연인이 없었다. 그러나 아비가 아들의 사연을 공유하자, 여러 여성들이 리프의 아이를 낳아줄 수 있다며 연락해 왔다.

아비는 손주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우리가 꼭 붙들 수 있는 무언가”가 돼줬다면서, “이제 이건 내 인생의 사명”이라고 했다.

한편 아비 가족 외에도 약 1200명이 사망하고 251명이 인질로 끌려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정자 동결을 택한 유가족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 지구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개시했으며,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 지구 내 보건부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 3만9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번 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서도 약 400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보건 당국에 따르면 10월 7일 공격 이후 민간인 및 군인 신분으로 사망한 젊은 남성 중 거의 170명 정도의 정자가 채취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5배 높은 수치다.

정자 보존은 우선 시신의 고환을 절개해 조직을 작게 떼어낸 다음 실험실에서 살아 있는 정자 세포를 분리해 냉동 보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자는 최대 72시간까지 생존할 수 있지만 사망 후 24시간 이내에 채취할 경우 성공률이 가장 높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시신에서의 정자 채취를 전면 금지하는 국가도 있으며, 사망 전 고인의 명시적 동의를 요구하는 등 그 규정이 엄격한 국가도 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보건부는 고인의 부모가 법원으로부터 정자 채취 절차 시행 명령을 받아내야 한다는 요건을 면제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최근 몇 년 동안 부모들에게 이 서비스를 더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정자 채취 및 동결 자체는 더 쉬워졌으나 복잡한 윤리적, 법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고인의 정자로 아이를 얻고자 하는 배우자나 부모는 고인이 평소 자녀를 갖고 싶어 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특히 부모의 경우 이 과정은 몇 년씩 걸릴 수 있다.

레이첼 코헨과 남편은 죽은 아들 케이반의 아기를 얻고자 노력했을 때, “너무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 죽은 아들의 정자를 냉동 보관해 실제 사용한 최초의 부모는 레이첼과 야코프 코헨 부부다. 이들의 아들 케이반은 IDF에 따르면 지난 2002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저격수의 총에 맞아 숨졌다고 한다.

그렇게 케이반의 정자를 이용해 태어난 손녀 오셔는 올해 10살이 됐다.

레이첼은 아들이 사망한 이후 그의 영을 느꼈던 순간에 대해 묘사했다. 그는 “아들의 옷장으로 갔다. 아들의 체취를 맡고 싶었다. 심지어 아들의 신발 냄새도 맡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진 속 아들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들은 제게 자신이 자녀를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레이첼은 “우리가 하려던 일을 이해하지 않거나, 지지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레이첼의 굳은 의지는 기념비적인 법원의 결정으로 이어졌고, 결국 레이첼은 아들의 자녀를 낳아줄 엄마를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게재했다.

이리트(오른쪽)는 딸 오셔(왼쪽)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망자를 위한) 살아 있는 기념물’로 키우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리트(가족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성을 공개하지 않았다)도 이 신문 광고를 보고 연락한 여성 수십 명 중 하나였다.

당시 이리트는 미혼이었다. 심리학자, 사회복지사와 상담 후 법원의 진단을 받아 시술에 들어가게 됐다.

이리트는 “어떤 이들은 우리가 신에 대항해 장난을 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아이를 낳는 것과 정자은행 기증을 통해 낳은 아이 사이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리트가 낳은 딸 오셔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군 복무 중 전사했음을 알고 있다. 오셔의 방엔 돌고래 장식이 가득하다. 오셔 또한 아버지 케이반이 생전 돌고래를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한다.

오셔는 “(조부모님이) 아버지의 정자를 채취해 절 세상에 태어나게 해줄 완벽할 엄마를 찾아준 것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리트는 오셔가 친조부모, 외조부모는 물론, 삼촌과 사촌들과도 교류하며, “(망자를 위한) 살아 있는 기념물”이 되지 않도록 “정상적으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이리트는 “우리는 오셔에게 끊임없이 아버지의 존재를 상기시키진 않는다. 다만 오셔 또한 자신이 어떻게 태어나게 됐으며,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셔는 자신의 아버지가 군 복무 중 사망했으며, 생전 돌고래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편 ‘샤미르 메디컬 센터’의 정자은행 책임자이자 정자 채취 수술도 직접 집도하는 이타이 가트 박사는 “사망한 아들에게서 살아있는 정자를 채취한다는 건 (유가족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래의 생식 능력 및 자손을 볼 가능성을 보존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가트 박사는 최근 이 시술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큰 사회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긴 했지만, 현재의 규정으로는 미혼 남성의 정자 채취를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가트 박사는 미혼 남성의 경우 사전에 자녀를 원했는지 명확한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동시에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정자를 일단 냉동 보관하긴 했으나, 실제 수정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트 박사는 유가족과 직접 시간을 보내며 이들이 사랑했던 이의 정자 동결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느꼈다고 말했다

가트 박사는 “심장, 신장을 기증해 누군가를 살리자는 얘기가 아니”라면서 “이는 재생산에 대한 담론이다. 아버지 없이 자랄 것을 아는... 아이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트 박사는 대부분의 고인이 자신의 정자를 이용해 태어난 아이의 어머니가 될 여성을 생전에 알지 못했으며, 교육, 미래 등 아이에 대한 거의 모든 결정은 어머니에 의해 내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트 박사 또한 이전엔 고인의 명시적인 동의가 없는 정자 보존 사례에 반대했으나, 이번 전쟁을 통해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 유연해졌다고 한다.

“이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때로는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봤다”는 설명이다.

법적 싸움 끝에 레이첼 코헨은 죽은 아들 케이반의 아이를 낳아 엄마가 돼 줄 사람을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냈다

한편 유명한 자유주의 성향의 랍비이자 텔아비브 소재 ‘유대인 윤리를 위한 초하르 센터’를 이끄는 랍비 유발 셜로는 이에 대해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라고 말했다.

"윤리적으로, 우리는 사망한 후일지라도 그 남성이 동의하지 않은 채 아버지가 되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면서 셜로는 남성의 혈통 보존, 시신을 온전한 상태로 매장한다는 유대교 율법상 중요한 2가지 원칙과도 관련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일부 랍비들은 혈통 보존이 정말 중요하기에 신체 조직을 손상해도 된다고 말하는 반면, 시신 훼손 행위이기에 절대 시행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랍비들도 있다고 한다.

10월 7일 발생한 하마스의 공격 및 그 이후 벌어진 전쟁으로 이스라엘인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서 정자 채취를 둘러싼 법적 문제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고인의 정자 채취에 관한 현존 법령은 지난 2003년 법무부 장관이 발표한 지침으로, 법으로 규정돼 있진 않다.

이스라엘 의회가 더욱더 명확하고 포괄적인 법규 제정을 위한 초안 작성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진전은 없다.

이에 정통한 사람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명시적 동의가 필요한지,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자녀에게 일반적으로 제공되는 복지 혜택도 그대로 적용돼야 하는지 등을 두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 또한 만약 군인의 미망인이 그 정자를 이용해 아기를 갖길 원치 않는 상황에 대한 논쟁, 이 경우 부모가 죽은 아들의 정자 사용권을 갖고 임신할 다른 여성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 등을 보도하고 있다.

한편, 이미 아들의 정자를 동결한 사람들의 경우 법안 내용이 최종적으로 확정될지라도, 향후 동의 문제만 다룰 뿐 오랜 법정 싸움을 피하진 못할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아비는 슬픔 속에서도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일기장, 앨범 등 아들을 기념할 물건으로 가득 찬 상자를 꺼내 보여준 아비는 아들 리프에게 자녀를 줄 수 있기 전까진 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 아들의 아이가 이 상자를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