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주의 유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형주도 중앙정부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는 곳이라
호족들의 힘, 그리고 지방 태수들의 자의적 권한 남발 등의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이때 동탁이 살아있을 때 황실종친이기도 했던
유표를 형주자사로 임명합니다.

형주로 부임받은 유표는
당시 형주의 최고호족집안 중
채씨 집안과 괴씨 집안의 지지를 받으며
말 안 듣는 태수들 다 물갈이하고 호족들도 다 정리해버리면서
유표 부임 후 어지러웠던 형주가
안정을 되찾습니다.

이래서 형주 내에서만큼은 유표가
거의 왕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죠.
더불어 유표는 개인적으로도 문을 숭상하는 선비여서
형주에서 선비들을 상당히 우대해주며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았죠.

사마휘, 서서, 제갈량, 방통 등이 다 형주에 모여있던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이랬기에 유표는 형주 내에서의 기득권에 만족하고 있었고
굳이 어디 다른 지역으로 세력을 팽창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