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게임 기업 코에이(현재는 코에이테크모 게임스, 이하 KT)의 역사 시뮬레이션 명작들과 궤를 같이 하며 여기에 미지의 바다를 향한 모험이라는 요소를 접목해 오랜 세월 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은 ‘대항해시대’ 시리즈. 그 최신작인 ‘대항해시대 오리진’이 한국의 라인게임즈를 통해(개발은 모티브와 KT 공동참여) 3분기 서비스를 예고하며 사전예약을 진행 중입니다. 1990년 첫 등장 이래 30년, 이제는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컴퓨터 게임의 역사에 당당히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그 속에 숨겨진 흥미로운 실제 대항해시대의 역사 포인트와 함께 톺아보려고 합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 30년의 역사는
코에이의 ‘光榮’의 역사와 다름없다


2010년 게임회사 테크모와 합병, 코에이테크모게임스가 된 코에이의 이름은 과거에는 한자로 ‘광영’이었습니다(‘코에이’는 광영을 일본어로 읽을 때 발음). 대항해시대 1편이 발매된 때가 1990년이니 이제 시리즈 30주년이 넘었죠. 그 영광의 역사를 회사 이름이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원래 염색약 및 화학약품을 제조 판매하던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경영하던 시부사와 코우가 1980년경부터 당시 붐이 슬슬 일기 시작하던 컴퓨터로 즐기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면서 프로젝트를 총지휘, 그 첫 결과물로 내놓은 게임은 1981년 ‘카와나카지마 전투’(일본 전국시대 유명 무장인 타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 사이의 몇 차례 전투)라는 워 시뮬레이션이었습니다.

이 게임이 쏠쏠히 팔려 다음 작으로 1983년 발매한 것이 우리 모두 잘 아는 ‘노부나가의 야망’(우리나라에선 ‘신장의 야망’으로도 불립니다), 그리고 ‘삼국지’(1985년)를 내놓게 됩니다.


내놓은 게임들이 연달아 히트한 것에 크게 고무된 시부사와 코우 프로듀서는 이 두 게임의 기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역사적인 내용은 좀 더 확장하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때가 있었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 전체가 거대하게 흔들린 시대, 다양한 인종, 역사와 문화를 가진 여러 세력들이 격렬하게 충돌한 시대였던 ‘대항해시대’를 게임의 시대적 배경으로 선택한 겁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시도해보지 못한 거대한 스케일의 바다를 항해하며 다양한 나라, 인종, 문물들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 소재였기 때문에 ‘모험’과 ‘교역’ 요소를 빼놓을 수는 없었죠.그러니까, 대항해시대는 코에이의 그 유명한 역사 '시뮬레이션' 전략 RPG 시리즈들의 막내 격이었던 거죠.


잠깐! 대항해시대 소사(小史), ‘대항해시대’라는 표현의 고찰
‘대항해시대’라는 단어는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마스다 요시오 교수가 1963년 그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그때까지 영미권이나 유럽에서는 이 시대를 ‘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 또는 ‘탐험의 시대’(Age of Explore)라고 불렸죠. 이는 다분히 유럽인들의 기준으로 새로운 대륙과 섬을 발견한다는 의미가 지배적인 용어였기 때문에, 마스다 요시오라는 학자는 유럽인들의 시각이 아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지금도 유럽 중심주의나 제국주의, 식민사관 등에서 벗어나 전세계를 동등한 잣대로 평가하는 움직임이 대세가 된 것에 따라 발견의 시대라는 용어 대신 다른 표현으로 쓰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 이런 대항해시대에 대한 구분은 대략 언제부터 언제까지일까요? 마스다 요시오 교수 등 여러 학자들의 견해로는 보통 15세기 초중반부터 17세기 중반인 베링해 탐험까지의 200여년 정도를 본다고 합니다. 연도로 보면 1415년부터 1648년 사이입니다.

항해가의 명성을 올려 공주와 포르투갈 왕녀와 결혼하라
대항해시대 (1990)
앞선 두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의 성공을 바탕으로 시부사와 코우 프로듀서와 코에이 개발진이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은 바로 ‘대항해시대’. 역사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의 본질은 유지했지만 지금까지보다 더 스케일이 큰 시대를 배경으로 했기에 게임의 많은 부분이 새로 추가되었습니다.
여러 도시들을 배로 오가며 시세 차이가 발생하는 상품을 사고 팔아 이윤을 남기는 교역, 당시 시대적 고증에 충실한 운송수단이자 생명줄이었던 다양한 배의 운용들, 대양을 가로지르며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육지와 도시의 발견 등… 게임은 이전까지 코에이의 인기작인 ‘삼국지’와 ‘노부나가의 야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대항해시대의 모티브가 된 게임이 바로 ‘시드 마이어의 해적!’(1987, 마이크로프로즈)이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폭풍우를 만나 불의에 사망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역상인으로 제2의 삶을 시작하는 포르투갈의 항해사 청년 ‘레온 페레로’가 게임의 주인공. 가문의 노련한 항해사 ‘롯코 알렘켈’과 함께 모험과 교역, 전투 등을 수행하면서 ‘명성치’를 높이면서 공작 등 지위를 얻고 마지막에는 포르투갈의 왕녀와 결혼하는 것이 게임의 클리어 목표였으며, 비록 국내에는 정식 발매되지 않았고 당시 컴퓨터에 사운드 카드가 탑재되어 있는 가정도 그리 많지는 않았으므로(대부분 메인보드의 비프음을 들으며 게임을 했었습니다) 이 1편부터 유명 작곡가인 ‘칸노 요코’씨가 음악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걸 모르는 게이머들도 많았을 겁니다.

주인공인 레온 페레로가 아버지의 유지를 받아 여행을 시작한 해는 1502년이었습니다. 이 때 대항해시대 역사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아시다시피 1492년 스페인 여왕의 두둑한 지원을 받은 이탈리아의 항해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동인도제도에 상륙한 것을 시작으로,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는 등 유럽인의 입장에서 신대륙의 모든 것을 차지하려는 야심이 막 폭발하던 즈음이었습니다. 물론 그 주역이 되는 나라들은 지중해의 패자이자 해상 강국 스페인과, 이제 막 스페인의 적수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포르투갈이었죠. 유독 포르투갈의 여러 모험가들이 앞다투어 바다로 나아가던 때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스페인의 세력이 최강이었던 시기입니다.

레온 페레로가 막 항해를 시작하던 1502년에는 콜럼버스가 4차 항해를 하며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에게 피의 학살을 자행하던 때였고 스페인의 정복자이자 초대 필리핀 총독이 된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태어났습니다.
시리즈를 확립시킨 명작
대항해시대 2 (1993)

1편으로부터 3년 뒤 발매된 대항해시대 2는 시리즈의 시스템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보다 더 새로운 시스템의 추가, 확 늘어난 스토리 등, 역시 명 작곡가 칸노 요코의 손길이 닿은 아름다운 BGM 등으로 진정한 ‘명작’으로 분류되는 타이틀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덤, 바로 정식 한국어화되어 국내 발매된 최초의 대항해시대 시리즈라는 것도 빠질 수 없죠.
게임의 시작 년도는 1522년. 전작의 주인공이 한 명이었지만 2편에서는 무려 6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 면면을 보더라도 게임의 배경적, 시스템적 확장에 걸맞게 배치된 것입니다. 1편 주인공 레온 페레로의 아들인 조안 페레로를 포함해 페레로 일가 함대의 공격을 받아 형과 약혼자를 잃은 원수를 갚기 위해 스페인 해군을 탈주, 해적이 된 카탈리나 에란초 등 게임 상에서 이뤄야 할 목표가 전부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며 이들의 국적도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으로 게임 상 등장하는 국가도 늘어난 것이죠.
게임의 기본은 1편과 흡사했지만 주인공을 늘리면서 이에 맞춰 등장 국가도, 게임의 클리어 목표도 다양해지는 효과를 노린 겁니다. ‘명성치’라는 파라미터도 각각 모험 명성, 해적 명성, 교역 명성으로 늘어났고 ‘세계지도 완성’과 ‘발견물 탐색과 보고’라는 시스템도 새로 선보였습니다. 자유도가 그만큼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요.

잠깐! 대항해시대 소사(小史), 2편 1522년의 대항해시대 역사는?
2편의 역사적 배경은 1편과의 시간 차이가 크게 나지 않으므로 각 세력의 대세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1519년 스페인의 마젤란이 지구는 둥글다는 걸 직접 ‘찍먹’ 해보기 위해 세계일주 항해에 나섰고, 2년 뒤인 1521년 우여곡절 끝에 필리핀에 도착했으나 세부 원주민들과 싸우다가 최후를 맞이하죠. 그 한 해 뒤인 1522년에 마젤란을 잃은 나머지 선단의 배 한 척과 17명의 선원이 스페인에 도착, 세계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가 이루어졌습니다.

대항해시대 외전 (1997)
파워업 키트의 시조새?
시리즈 본편인 3편이 1996년 발매되었고 그 다음에 ‘외전’이 발매되었기 때문에 제목에서처럼 ‘파워업 키트’라고 액면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스템적으로 보나 성격적으로 보나 이 대항해시대 외전이 2편의 파워업 키트 역할을 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처음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발매된 외전은(이후 PC로 컨버전) 2편의 시스템은 몇 가지 개선점을 빼고는 거의 그대로 답습되었고 주인공은 새로이 이탈리아의 ‘미란다 베르테’와 해적 ‘살바도르 레이스’ 두 명으로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볼륨은 짧아졌지만 스토리의 완성도는 좋았다고 하죠.
참고로, 현재 사전예약 중인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이 2편과 외전을 베이스로 개발 중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대항해시대 3 Costa del Sol (1996)
역대 최강의 자유도를 얻은 만큼 깎여나간 명성

대항해시대 3는 시리즈 중 가장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게임, 역대 최강의 볼륨과 자유도를 가진 게임이라는 칭송과 터무니없이 높은 난이도, 전통을 버린 터무니없는 게임이라는 비판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호불호가 확실한 게임이라고 해야겠네요. 변화와 혁신 없이는 시리즈 롱런이 어려울 것이라는 개발진의 심기일전은 돋보였지만 그에 따른 기존 팬들의 반발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임의 시작은 1480년. 최고의 역사적 고증과 역대 최강의 탐험 콘텐츠와 함께 온 모험의 재미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때는 아직 이베리아 반도에서 카톨릭 국가들이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는 ‘레콘키스타’도 끝나지 않은 때였고(1492년에야 마무리됩니다),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발견하면서 내륙을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을 피해 향신료 직접무역을 할 수 있는 희망의 단초를 본 해보다 8년이나 이른 때였습니다.
게임의 흐름은 자연히 아직 미지의 세계를 누구보다도 먼저 탐험하며 새로운 땅을, 새로운 문명을, 새로운 유적을 발견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겁니다. 당연히 크리스토퍼 콜럼부스, 바르톨로뮤 디아스, 에르난 코르테스, 바스코 다 가마, 프란치스코 피사로 등… 이름만 들어도 몸이 부르르 떨린 유명 ‘라이벌’이 게임에 등장하며 이들보다 한발 앞서 모험왕이 되어야 했었죠.

이미 스토리가 정해진 주인공도 없어 게이머는 가상의 주인공을 만들어 지구 역사의 새 페이지를 써야 했습니다. 게이머는 자신이 모험을 떠날 함단을 지원해줄 스폰서를 찾아 그와 계약, 교역과 전투 등을 거치며 세계일주 항해를 완료해야 했죠.
사실 3편은 시대를 앞서간 게임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지금 이렇게 글로 풀어보니 이 얼마나 이상적인 게임의 모습인가요? 하지만 이렇게 높아진 자유도는 필연적으로 엄청난 난이도 상승을 가져왔고 이미 전편의 게임 시스템에 익숙해진 많은 시리즈 팬들에게는 너무나 큰 장벽으로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었죠. 이는 앞서 언급한 ‘대항해시대 외전’의 서두른 후속 발매의 단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잠깐! 대항해시대 소사(小史), 3편 1480년의 대항해시대 역사는?
3편의 시작년도인 1480년부터 1편의 시작년도 1502년 사이의 실제 대항해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정말 많지만, 1494년 스페인(에스파냐)과 포르투갈 사이에 이루어진 ‘토르데시야스 조약’도 매우 중요한 이벤트라고 해야겠습니다.
콜럼버스가 유럽인들이 처음 접한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이곳의 땅과 각종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싸움은 점입가경에 달해, 자칫하면 전쟁까지 갈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부랴부랴 이 두 나라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나선 것은 역사 속에서 늘 그랬듯이 바로 카톨릭 세계의 ‘대빵’인 교황.
당시 교황이었던 알렉산데르6세의 중재를 두 나라가 받아들여 구대륙 끝과 (지금까지 발견한) 신대륙 끝의 딱 중간 지점에 직선을 딱 그어, 그 선을 기준으로 동쪽에서 발견되는 땅은 포르투갈의, 서쪽에서 발견되는 땅은 스페인의 것으로 한다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성립된 것입니다.
지금 관점으로 보면 참으로 지독한 조약이 아닐 수 없죠. 참 웃픈 역사의 단면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아무튼, 이 조약으로 인해서 중남미 대륙에서 브라질만 포르투갈의 세력권이 되어 이는 오늘날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나머지 나라들은 전부 스페인어를 쓰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한답니다.


한편, 이 1480년에는 바로 최초의 세계일주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탄생했습니다.
전통으로의 회귀와 함께 막 내리는 패키지 게임 시대
대항해시대 4 PORTO ESTADO (1999)

혁신이 돋보였지만 흥행에는 실패한 3편 이후 코에이는 다시 과거로의 회귀를 택했습니다. 무한 자유도 시스템을 폐지하고 모험 요소를 대폭 축소, 그 대신 플레이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인공과 스토리를 다시 포함시킨 것이죠.이 게임의 키 포인트는 ‘패자의 증명’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세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의 무역 세력권, 자신의 세력과 우호되는 세력을 확보하고 상대 세력을 전투에서 패퇴시키는 것 등이 게임의 주요 요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선택 가능한 주인공은 3+1명(3인으로 게임을 클리어하면 1명이 추가로 해금됩니다).4편의 시대적 배경은 이전 편들에서 대부분 써먹었던 년도들은 버리고 이른바 대항해시대의 말기라고 할 수 있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를 채택했습니다. 오세아니아 대륙 이외의 모든 지역이 유럽인들에게 알려진 때입니다(호주 대륙 발견은 1606년입니다). 미지의 세계가 거의 없어진 세상에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이른바 세계의 패자(覇者)가 되는 것이 게임의 목표였으므로 그에 잘 부합되는 시대 배경이라 하겠습니다.다만 이런 이유로 인해 4편에는 큰 단점이 생겼죠. 그건 바로 모험 요소가 대폭 줄어든 것입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도시들도 역대 시리즈 중에서 가장 적었습니다. 과거로 회귀하며 시리즈의 전통은 일부 되살렸지만 예상치 못하게 또 다른 단점이 부각된 것입니다.


설상가상, 시대는 사람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온라인 시대로 이행해 가고 있었습니다. 전통으로의 회귀는 스토리성의 강화와 RPG적 재미는 되살렸지만 모험성의 부재라는 뼈아픈 상처를 남긴 채 대항해시대 시리즈도 패키지 게임으로서의 항해는 여기서 마감하고 드넓은 온라인 세계로 닻을 올리고 출항하게 됐습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 5, 6 (2005 ~ 2021)
대 ‘온라인’ 시대의 개막, 그리고 긴 침체
코에이가 자신들의 넘버링 타이틀들을 온라인 게임으로 본격적인 이행을 시작한 2005년 ‘노부나가의 야망 온라인’에 이은 두 번째로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런칭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게임 대기업 중 하나인 넷마블이 서비스를 담당했죠.
온라인 버전은 패키지 게임 시리즈에서 어느 한 두 가지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제약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스케일로 선보일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나 스토리에 집중하려다 보니 자유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취사선택을 해야 했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솔루션이었던 거죠.
게임에 접속하는 전세계 다양한 플레이어들은 군인, 탐험가, 상인 중 하나의 직업을 택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3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캐릭터들은 저마다 다양한 배경과 분기를 지닌 스토리가 있었는데 이것은 2편과 4편의 것이죠.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지역의 여러 연령층과 성별의 게이머들과 만나는 것이었기에 이들과 파티를 결성해 항해를 나서거나 유적 발견 등을 위한 탐험을 즐기는 것은 패키지 게임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현실에 가까운’ 재미였습니다.
모험, 교역, 전투라는… 전통적인 대항해 시리즈의 세 가지 재미를 향상된 비주얼과 함께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대항해시대 온라인이 내세운 가장 큰 장점들이었기에 초반 서비스는 인기리에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문제점은 각 나라별로 상이한 운영 정책이나 과금 등 게임 외적인 문제들로 하락세를 보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국 서비스의 예를 들면 매우 비싼 정액제를 지나치게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하며 당시 온라인 게임 유저들의 인식과는 괴리가 심했다던가, 게임의 밸런스를 심각하게 붕괴시키는 각종 과금 요소를 마구 넣는다거나, 탐험 등의 요소에 적절한 파티 플레이가 뒤따라야 재미가 있는 것들을 싱글플레이 콘텐츠로 전락시키는 다중 클라이언트 허용 등등 매우 많은 운영에서의 미스가 잇따르면서 유저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이죠.

이후, 웹게임 플랫폼과 모바일 게임 플랫폼으로 각기 서비스에 들어갔던 대항해시대 5, 대항해시대 6은 5편이 서비스 기간 7년, 6편이 서비스 기간 2년(모두 한국 서비스 기준) 정도의 라이프 사이클로 서비스를 종료하고 말았습니다.

잠깐! 대항해시대 소사(小史), 아시아의 대항해시대들
대항해시대가 서양, 특히 유럽 국가들의 기준에서 펼쳐진 시대적 배경이 있다보니 게임 속에서도 주로 유럽 국가들의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은 한국인으로서 많은 아쉬움을 남게 합니다. 물론 시리즈 전체를 볼 때 아시아 국가들도 등장하기는 하며 각종 소소한 이벤트들도 아시아 배경으로 하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요.

실제 역사에서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과 일본 등 대륙 연안 국가들은 주로 육로를 중심으로 교류를 해왔고 해금령이니 쇄국이니 하는 식으로 타국과의 접촉을 철저하게 금지하는 정책을 펴왔기에 아시아 국가들만의 눈부신 대항해시대 업적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주류에서 밀렸던 것은 역사를 되돌아보며 아쉬움을 갖게 하는 대목입니다.
여기서는 그나마 아시아 국가들의 해상 진출 사례에서 유명했던 이슈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보려 합니다(소개 순서는 무작위입니다).
중국의 대항해시대 - 정화의 대원정
통상 대항해시대라고 일컫는 시대보다 훨씬 빠른 14세기 말 ~ 15세기 초에 활약했던 중국 명나라의 ‘정화’라는 인물이 펼친 이른바 ‘정화의 대원정’이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화라는 사람은 특히 본토 중국인이 아닌 ‘색목인(튀르크 계열로 알려져 있습니다)’인데다 명나라에 납치되어 거세된 ‘환관’으로도 유명하죠.
정화는 당시 명나라 황제 영락제의 명을 받들고 조공 무역을 위해 총 7차례에 걸친 해상 원정에 나섰고 가까이는 말레이시아 근처 인도양부터 멀리는 아라비아의 아덴, 아프리카 서안의 모가디슈까지 다녀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화 이후에도 중국 왕조들이 이러한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흥미로운 ‘if’ 상상이 가능한 일이겠죠?

일본의 대항해시대 - 오다 노부나가와 덴쇼 소년 사절단
마침, 바로 이 기획을 쓴 오늘이 코에이테크모게임스의 또 다른 ‘네임드 시리즈’인 ‘노부나가의 야망’의 최신작 ‘노부나가의 야망: 신생’의 발매일입니다(2022년 7월 21일).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대표적 역사인물인 오다 노부나가와 얽힌 대항해시대의 편린을 살펴봅시다.
자신의 가신인 아케치 미츠히데의 예기치 못한 모반으로 일본 정복을 눈앞에 두고 저세상으로 간 비운의 전국시대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 그가 호방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조총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신문물에도 관심이 많고 서양 문물과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죠.
일본 내의 천주교 다이묘의 비호 아래 신앙을 공부하던 소년 세 명이 일본과 서양의 교류를 위해 당시 전국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의 서찰을 가지고 스페인으로 파견된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덴쇼 소년 사절단’입니다(덴쇼는 당시 일본의 연호).
이 소년 사절단은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하기 불과 4개월 전인 1582년 2월 나가사키를 떠나 험한 항해길을 거쳐 무려 3년만인 1584년 11월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를 알현하게 됩니다. 물론 도중에 폭풍우를 만났다거나 몸이 아프고 병약해져 중간에 머무르기도 하고 유럽 도착 후 육로로 이동하는 것을 포함한 여정이지만, 편도 이동이 3년이 걸렸다는 건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절단의 일본 귀국은 1590년 7월, 출발부터 도착까지 무려 8년이 걸렸는데, 당시 일본인의 평균 수명이 대략 40세-50세 사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인생의 1/6이나 소비한 셈입니다.


한국의 대항해시대 - 홍어장수 문순득의 ‘의도치 않은’ 대항해시대
우리도 고대에는 장보고니 청해진이니 하는 대단한 해상의 역사들이 있지만 중세 및 근세에는 쇄국을 기치로 내걸었던지라 의미 있는 기록들은 대부분 ‘당사자가 의도하지 않은’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주인공이 바로 ‘홍어장수 문순득’입니다. 19세기의 일이라 대항해시대의 시간 배경과는 맞지 않지만 이야기가 워낙 흥미로우니 덧붙입니다.
전라도의 흑산도 일대에서 홍어 상인으로 지내던 24세의 문순득이라는 청년은 1801년 흑산도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하고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게 되죠. 고생 끝에 도착한 곳은 무려 류큐왕국이었습니다(지금의 오키나와). 여기서 8개월을 체류하며 언어도 배워 간신히 의사소통에 성공, 중국으로 가는 조공선을 타고 고향인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합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죠(?). 조공선을 타고 출발에는 성공했는데 가는 길에 또 한 번 엄청난 풍랑을 만나 배는 또 좌초합니다. 바다를 헤매다가 도착한 곳은 조선에서 가까운 곳이 아닌, 훨씬 더 멀어진 ‘무려’ 필리핀의 루손이었던 겁니다.
기가 막히게 된 문순득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그쪽 말을 익혀(당시는 스페인령) 사람들과 친분을 가지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최초 좌초된 지 2년만인 1803년 중국 마카오로 가는 배에 타고 마카오에 도착, 거기서부터는 육로로 난징, 베이징을 거쳐 결국 3년만인 1805년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더 대단한 것은, 문순득은 후에 그쪽 지방으로 유배를 온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을 만나 그의 표류담을 전해줬고 그것으로 정약전은 ‘표해시말’이라는 표류기를 쓰고 그것이 또 동생 정약용에게 전해지는 등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외에도 1696년 영조 때 무신 이지항이 표류하여 일본 홋카이도 다녀온 기록(표주록), 성종 때 문관인 최부의 표해록 등 다양한 우리 선조들의 ‘대항해시대’가 기록으로 있으니 관심이 생기신다면 한 번씩 찾아보기로 합시다. ^^
대항해시대 오리진, 어디까지 왔나?
온라인 게임과 웹게임, 모바일 게임을 두루 거치며 지금까지 시리즈의 명성을 이어온 ‘대항해시대’의 최신 버전은 바로 한국 개발사 모티브와 코에이테크모게임스가 동시에 개발중인 ‘대항해시대 오리진’입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시리즈의 기틀을 마련한 초기 대표작인 대항해시대 2, 그리고 대항해시대 외전을 베이스로 하고 있죠. 앞서 온라인 게임이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어서 대항해시대 시리즈 재미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교역, 탐험과 모험, 전투 모두 소홀히 하지 않는 게임성이 최대 특징입니다. 2차에 걸친 CBT에서 유저들로부터 지적받았던 미비점을 꾸준히 개선했고 얼리 액세스도 진행하면서 게임의 완성도는 차츰 높아지고 있다고 유저들도 공통적으로 호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한층 게임에 대해 기대해 볼만합니다.
언리얼 엔진 4를 120% 활용해 그래픽은 매우 뛰어나고 다양한 분위기를 골고루 연출합니다. 인게임 컷신 등은 회화풍으로, 게임 속의 도시를 돌아다니는 실제 게임 캐릭터들은 3등신 가량의 귀여운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죠. 디테일도 뛰어나 밤낮 및 사계절 변화에 따라 실시간으로 빛과 그림자가 변하고 바다에서의 다양한 환경 변화도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조안 페레로, 카탈리나 에란초, 롯코 알렘캘 등의 캐릭터들과 칸노 요코의 BGM 등 시리즈에 대한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이 한가득 준비된 대항해시대 오리진, 3분기 본격 서비스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감 MAX를 유지하며 기다려 보기로 하겠습니다.
글/ 베이더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