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인프라…서울행 이유 多 있다 [경기도 청년에게, 이곳은②]

이연우 기자 2024. 7. 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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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자리로 '제조업'은 싫어”…눈 돌리는 청년들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경기도 청년들은 서울로의 잦은 이동을 반복합니다. 왜 '서울'을 택하고 '경기도'를 비울까요. 지역별로 분석해 봤습니다.

■ “내 일자리로 '제조업'은 싫어”…눈 돌리는 청년들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에 벽보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산재사고 상담'을 한다는 노무사 사무소 벽보와 인력파견업체의 광고물들이 서로의 공간을 다투며 붙어 있는 모습에서 현재 시화공단이 처한 현실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시화공단의 많은 중소 제조업체들은 청년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요즘 청년들은 힘든 일을 기피한다'는 말은 이제 공단의 일상적인 하소연. 하지만 산재사고가 빈번한 열악한 작업 환경에 등을 돌린 청년들에게 과연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조주현기자

교통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진 경기 서부권에는 국내 대표 산업단지인 시화·반월산단이 있습니다. 중소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가동되며, 시흥·안산 외에도 인근의 수많은 지역 일자리를 책임지는 곳입니다.

산단 가까이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와 한국공학대학교 제2캠퍼스 등이 위치한 만큼 산학협력도 비교적 수월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일대에서 '청년'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노동자 상당수는 중장년층 이상인 데다가, 취업을 준비하는 지역 청년 대부분도 제조업에 몸 담기를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2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청년층(15~29세 취업자)의 취업·근무 선호 업종은 ‘정보통신업’, ‘전문 연구개발업’,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등 정보기술(IT)을 다루는 업종이나 플랫폼 기업 쪽 분야로 추려집니다.

통계청 ‘2024년 4월 고용동향’만 봐도, 전국 청년층 취업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만9천명 감소한 가운데 청년 선호 업종이 선방한 편입니다. 예컨대 연구개발업계 고용보험 가입자가 최근 1년 동안 14만9천명에서 15만1천명으로 1.7%포인트 늘어난 식입니다.

시화산단 내 중소 제조업체들은 젊은 인력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힘든 제조업을 기피하면서 공단 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50대 이상으로 채워지고 있다. 조주현기자

하지만 경기도의 주력 산업인 ‘제조업’의 상황은 다릅니다. 첨단바이오산업이 몰린 충북 오창, 자동차·조선·철강이 집중된 경북 포항 등의 산단과 달리 수도권 ‘제조 산단’의 메리트가 크지 않아서 청년 인력이 점점 더 빠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국내 전체 산단 내 청년 근로자 비중은 20%도 채 되지 않고, 특히 서울·경기·인천 등에 한정하면 15% 아래에 그치고 있습니다.

시흥에 거주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 남상은 씨(25)는 “시흥에서 나고 자랐지만 시흥 내 산업단지에 취직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근무 여건이나 복지 등을 살펴봤을 때 제조업계는 물론, 산단 내의 현실이 좋지 않다고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지역색 지워져도 그저 '서울 생활권' 어필만

여주역. 조주현기자

경기 동부권은 어떨까요. 성남 판교에서 지하철로 40분 이동하면 도착하는 여주역의 모습은 황량했습니다.

역 주위는 드넓은 공터가 자리했고, 그마저도 주차된 차량들이 가득 찼습니다. 먼 거리에 아파트 한두 채가 보였지만 도보로 수십 분을 이동해봐도 마트나 병원을 찾아보긴 어려웠습니다.

시청·여주역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과 멀어져 그나마 최대 관광지인 신륵사 부근 신도심을 가도, 빈 건물이 널려있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영화관도 하나 없는 여주시 곳곳엔 그저 'GTX-D 노선 유치…서울 생활권 됐다'는 문구의 현수막만 내걸렸을 뿐이었습니다. ‘여주만의 지역색’이 묻은 곳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여주시 곳곳에 걸려 있는 GTX-D 노선 유치 경축 현수막. "강남 30분대"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조주현기자

여주에 사는 취업 준비생 박현진씨(25)는 “우리 지역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여주에서 대학을 다니거나 취업하고 싶진 않다”며 “청년들이 여주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적어 지자체 차원에서도 ‘서울과의 접근성’을 강조하는 게 홍보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1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용인특례시도 ‘서울 생활권’을 앞세웁니다.

용인시 동백에서 화성 동탄신도시까진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3번 갈아타고 1시간 20분이 소요됩니다. 반면 동백에서 서울 강남역까진 광역버스로 1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합니다. 22㎞ 떨어진 동탄보다 34㎞ 떨어진 서울이 더 빨리 도착한다는 의미입니다.

용인이나 동탄이나 경기도 안에서도 즐길거리는 많지만, 대부분의 청년들이 ‘강남’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용인에 사는 박성준씨(23)는 “같은 경기도 안에서 인근 지역으로 갈 때와 서울로 향할 때의 이동 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며 “같은 시간이 소요된다면 주변에 다양한 인프라가 더 많은 서울로 향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습니다.

■ 경기 북부, 신도시 품어도 인프라 ‘텅’

파주 운정 신도시의 모습. 경기 북부 신도시가 진정한 성장을 이루려면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경기북부지역 청년층에게 신도시의 아파트 가격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 조주현기자

최근 인구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파주시와 양주시. 두 지역은 각각 운정 신도시와 옥정·회천 신도시를 내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신도시여도, 수도권 규제와 군사 규제 등 6개의 중첩 규제를 받는 ‘경기 북부’라는 여건에서는 청년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현재 경기 북부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는 2천442만원으로, 경기 남부의 60% 수준입니다. 기업 유치가 어려워 일자리조차 구하기 버겁습니다.

갓 신혼부부가 된 청년층이 아이를 낳아 키우더라도 종합상급병원이 단 하나도 없는 지역에 남는 대신, 서울로의 이사를 택합니다. 속속 새롭게 들어서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하려 해도, 경제적 기반이 부족한 청년층이 입주하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파주에 거주하는 백건종씨(26)는 “파주의 경우 경기도 내 다른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인프라가 잘 갖춰진 편인데도 유명 토익학원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청년층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건, 놀거리건, 하다못해 ‘저렴한 집값’ 등이 받쳐줘야 하는데 경기 북부는 그 모든 부분에서 해당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 경기 남부 안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안성은 철도 불모지다. 1989년 폐선된 안성선은 이제 흔적만 남았다. 조주현기자

경기와 서울을 잇는 여러 교통수단 중 최근 큰 관심을 받은 건 단연 김포 골드라인입니다. 하지만 2량 규모의 이 경전철은 기대와 달리 수요를 맞추지 못하며 '골병라인'으로 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김포시에겐 짐이지만 이 짐마저 부러운 도시가 있습니다. 경기 남부권의 안성 이야기입니다.

안성은 현재 경기도에서 2곳 남은 '철도 불모지' 중 하나입니다. 1989년 안성선이 폐선된 이후 현재까지 철도선이 하나도 없고, 30년 넘게 ‘철도의 꿈’을 꿔왔지만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포천의 경우 2년 뒤(2026년) 7호선 도봉산 포천선의 개통이 예정돼 그나마 현재 상황을 모면할 수 있으나, 안성은 미지수입니다. 최근 ‘수도권 내륙선 광역철도 구축 사업’ 계획이 시동을 걸긴 했으나, 착공 시기 등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업이라도 조기 추진돼야 안성의 철도시대가 개막할 것이라는 여론이 있습니다.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 월동 버스정류장. 이곳을 오가는 50-2 버스의 배차간격은 최단 270분이다. 조주현기자

안성 내에 운행 중인 시내버스는 외곽으로 갈수록 기나긴 배차시간을 갖습니다. 정류장마저 발견하기가 힘듭니다.

청년들이 집을 구하러, 일을 잡으러, 공부를 하러 안성 안에서 이동하는 데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보니 자차를 활용하거나, 아예 서울로 떠나버리는 실정입니다. 경기 남부가 여타 권역에 비해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지만 이마저 수원특례시 등에 밀집된 탓에 ‘빈익빈 부익부’ 상태입니다.

안성에 사는 이현희씨(23)는 ”얼마 없던 버스마저 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나가려면 마을버스로 터미널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버스가 일찍 끊겨 택시나 부모님을 부를 때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안성이 경기남부에 있다지만 사실 충청남도와 가깝기도 한 만큼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이처럼 경기도 사방팔방에서 청년들이 ‘우리 터전’을 떠나고 있습니다. 지역이 청년들을 서울로 내몰고 있진 않은지, 청년을 잃은 지역은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연우·조주현기자, 아주대 ADDRESS팀(경제학과 윤주선, 경영학과 임승재, 사회학과 이자민·정민규)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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