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구글까지 다녔는데..."지금은 구둣방에 출근하는 50대 여성
저는 로이스라고 하고요. 지금은 미국 실리콘밸리 중에서 '마운틴 뷰'라고 하는 동네에 살고 있어요. 지금 잠깐 3주 동안 한국에 방문 중입니다.
전체 직장 경력은 30년 됐고 가장 최근엔 구글에서 16년 반 정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2023년도 1월 달에 저희 팀이 다 없어졌어요. 사실 본인의 성과가 안 좋아서 당하는 'Fire'라는 해고가 있고 'Layoff'는 어떻게 보면 경제가 안 좋아서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 구조조정을 한 걸 'Layoff'라고 하는데요. 사실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숨길 것도 아니지만, 단지 그래도 충격은 받죠. 왜냐하면 갑작스럽게 일어난 거니까요.
지난 2023년 1월에 'Layoff'가 됐고 '왜 우리 팀이...'라고 막 화도 났어요. 근데 환경은 어쩔 수 없고 그러면 내가 바뀌어야지 싶었어요. 이 기회에 내가 30년 동안 못했던 걸 좀 해보자는 생각이 그날, 주말 저녁인 일요일 밤에 들었어요. 그래서 책상에 앉아서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회사를 다니느라 못했던 걸 쭉 써보는데 '슈퍼에서 일하기', '운전사 되기', '도서관 사서 되기', '아기 돌보기' 같은 걸 쭉 쓰는데, 그 자체로 막 신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거는 미국에 있는 '트레이더 조'라고 슈퍼마켓인데 고객 감동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곳이에요. 그다음 날 제가 이력서를 프린트를 해서 매장에 찾아갔어요. 꼭 취직하고 싶다면서 원서를 내고 열흘 만에 취직을 했죠. 아르바이트생이 돼서 캐셔도 하고 물건 진열도 했어요.
30년 동안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펜대만 잡고 산 사람이 20kg 감자 박스, 양파 박스를 들고 육체 노동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나한테서 누가 컴퓨터를 뺏어가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30년 동안 그런 생각 을 했었거든요. 근데 슈퍼마켓에서 1년 이상 일하면서 느꼈던 거는 제 몸뚱이 하나로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두 번째로 했던 건 운전사였어요. 저는 '리프트'라는 공유 택시를 운전했어요. 운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너무 값지고 짧으면 8분 거리를 이동하면서 인생철학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그래서 '1만 시간의 법칙'처럼 '1만 명 만나기'라는 목표를 세웠었어요. 1만 명 만나면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스승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 정말 큰 자산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 번째로 스타벅스에서 일했어요.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일했는데요. 한국에선 보통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간단한 메뉴를 시키잖아요. 근데 미국은 왜 그렇게 간단한 메뉴를 시키지 않는지 곤혹스러웠어요.
이틀 뒤인 수요일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오늘 하고 내일 일정이 약간 좀 빡빡한데. 오늘 오전에는 인터뷰가 있고 11시에는 앞으로 쓸 책이 있어서 출판사랑 줌으로 미팅을 해요. 그리고 제가 컨설팅을 하고 있어요. 그 회사에 방문했다가 한국에 와서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을 처음으로 닦으러 들어간 역삼역 4번 출구에 오영각 사장님이 계신 구두 박스에 견습생으로 있어요. 그냥 제가 '여기서 좀 배울 수 있게 도와주세요~' 했더니 오라고 해서 가게 된 곳이 있어서 거기 잠깐 방문하려고 해요.
저는 대학교도 한국에서 나왔고 MBA를 따러 미국에 갔다 왔고 첫 직장이었던 모토로라에 8년 있었어요. 핸드폰 만들던 회사요. 그다음에 (일라이) 릴리라는 제약회사, 한국에 있는 오피스에서 일을 했고요. 그다음에 구글 코리아에 들어갔죠. 그래서 통틀어서 한국에서 25년을 이미 일을 했었어요. 마케팅하고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요. 초고속 승진은 하진 않았더라도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 올려서 릴리 때부터 제가 임원이었고, 구글 코리아에서도 제가 전무로 있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제 일이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기회가 없을까 하던 찰나에 당시 회사에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이 한 500명이 넘었는데, 2019년도에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마지막 날 총괄 부사장님 앞에서 제가 손을 들고 얘기했던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각 나라마다 커뮤니케이션 팀들이 일을 너무 잘하는데 유기적으로 연결이 안 돼 있다는 거였어요. 예를 들면 휴먼스토리가 미국 가서 취재를 하고 싶은데 미국에 얘기하려고 해도 담당 팀이 없는 거예요. 그 비어있는 곳을 좀 보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인터내셔널 미디어 팀'이라는 걸 제안했는데 전격 받아들여져서 그 잡(job)이 생겼고 저한테 오라고 해서 미국에 가게 된 거예요.
미국에 갈 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때 나이가 벌써 50살이었어요.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 새로 시작을 해야 됐고 모든 기득권을 놓고 간다는 게 첫 번째 고민이었고요.
두 번째는 영어. 미국에서 MBA를 했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25년을 지냈거든요. 커뮤니케이션 팀이라 하면 미국 애들 중에서도 말 더 잘하고 글 더 잘 쓰는 애들이 모인 곳이거든요. 심지어 구글인데, '내가 걔네들하고 경쟁할 수 있을까?' 가기 전부터 답답하고 가서 괜히 망신만 당하고 오는 게 아닐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도 가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지금 안 하면 아무것도 새로운 거에 도전 못 해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가자, 내가 가서 쫄딱 망하고 다시 오더라도 와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한국에서의 기득권은 다 놓고 일단은 갔죠. 저는 약간 느린 편이에요. 느리지만 천천히 꾸준히 하는 타입이어서 고속 승진 이런 거 안 해도 4년 동안 미국에서 지내다 보니까 '이렇게 하면 잘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도 얼추 붙었어요. 두려움은 맞닥뜨리지 않으면 깰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영어가 진짜 힘들었는데, 맨날 실수해요. 이메일 받으면 좋은 표현이 나오면 달달 외워서 또 그거 써먹고요. 매일 영어 공부 한 3시간 넘게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하고 있고, 지금도 하루에 1시간씩 1대 1 튜터링 하고 달리면서 오디오북 들어요. 오늘 아침에도 좀 하고 나왔습니다. 영어는 잘 안 늘잖아요. 근데 또 잘 안 느는 것 같지만 늘더라고요.
미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메일 체크하는 거였으니까 아침에 회사 메일을 열었는데 안 열리는 거예요. 버그인가 보다 하고 개인 이메일을 열었는데 제목이 'Notice regarding your employment'라고 해서 '당신 고용에 관한 고지'라는 게 왔는데, 그 내용이 "We no longer have A job for you at Google"이었어요. 바로 둘째 줄이 "오늘부터 안 나와도 돼"였어요. 사전에 통보도 없이 그렇게 간밤에 결정되었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5분 뒤에 저를 미국에 보내주신 구글 코리아 부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간밤에 1만 2천 명 정리해고 결정이 났고, 안타깝게 저희 팀원들 모두 적용됐다고 전해주시더라고요. 이 얘기를 하는데 들어도 듣는 것 같지도 않고,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메일을 다시 보는데 전혀 현실감도 없었고 믿기지도 않았죠. '왜 나?', '왜 우리 팀이?'라는 생각뿐이었어요. 4년간의 나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됐다는 생각에 너무 화도 났어요.
그런데 내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어차피 내가 30년 일을 열심히 했는데, 이 기회에 내가 좀 안 해본 걸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서 마트에서 일을 해봤죠. 근데 제가 정말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 기간을 잘 넘겼을 거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사실 50살이라는 나이가 회사에서나 자기가 머무른 일터에서 많이들 나오게 되는 시기일 수 있어요. 그런 시기에 놓인 분들이 방황할 수도 있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된다는 부담도 있을 수 있는데요. 우리가 일을 할 때 '나(개인)=회사'라는 생각으로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해왔던 거예요. 근데 나 자신은 있는 거잖아요. 회사 정리해고 되고 나서 물론 저도 두려웠어요. '구글을 빼면 나를 어떻게 소개하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거는 미리 연습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존재감에 대해 항상 생각을 해보면서 직장을 뺀 나는 무엇일지에 대해서요.
사람마다 날 것의 뭔가가 있더라고요. 그거를 우리는 평소에 생각도 안 하고 발견조차도 할 기회가 없었을 뿐인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자기는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많아요. 저는 뭐든지 노력하면 다 잘할 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바리스타는 아니더라고요. 바리스타 하면서 너무 실수도 많이 하고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저한테는 스타벅스는 아니고 트레이더 조가 더 맞았던 것처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일단 해봐야고 생각해요. 그걸 머릿속에서 찾지 말고 행동해야 해요.
트레이더 조 직원 중에 요리사가 두 분이나 계세요. 트레이더 조에서 근무하는 이유가 사람들이 뭘 사는지를 알아야지만 자기가 요리 개발을 할 때 도움이 된다는 거였거든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내가 자신 있다면 남의 눈치보다는 내가 얻는 경험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회사 생활을 30년 하다 보면 번아웃 같은 게 오잖아요. 저도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근데 번아웃은 직장인들이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일 잘하려다 보면 열심히 해야 되고 야근도 해야 되잖아요. 번아웃이 왔을 때 어떻게 잘 극복할지, 어떻게 빨리 해결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회복력을 키우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배우는 게 또 하나의 성장 동력이어서 대학원을 좀 많이 다니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배웠거든요. 그렇게 좀 적극적으로 배움을 해보면 어떨지 제가 제안을 드리는 건데, 그 기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체력입니다.
자영업자분들이 마케팅에 관련해서 많이 어려움을 겪으시잖아요. 저는 구둣방 사장님한테 배웠는데, 결국은 고객 관리가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새로운 고객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고객을 계속 오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고객 유치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있는 고객 자주 오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어요.
저의 마음가짐은 정리해고 전과 후가 굉장히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내 몸뚱이 하나로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너무 붙어서 '로이스 자체로도 멋진 사람이구나', '로이스 자체로도 사람들이 날 되게 환영하고 같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게 있어서 제가 무엇을 할지는 가능성을 다 열어놓으려고 해요. 풀타임 잡을 갖든, 아니면 N잡러를 하든, 아니면 컨설팅을 더 확대하든 모든 일을 하더라도 좀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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