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 노래 작곡, 29세에 하늘로… “걸출한 싱어송라이터” 장덕
1990년 2월 4일 29세

1975년 4월 14세 여중생 장덕(1961~1990)은 서울 용산 미군 기지 내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에서 처음 노래했다. 미8군 주최 무대에서 자작곡 ‘To be a child again’을 다섯 살 위 오빠 장현(1956~1990)과 함께 불렀다.
주한 미국 대사관 관리 엘 클리나드(L. Clinard)는 장덕이 작곡한 멜로디에 영어 가사를 붙이고 남매가 무대에 서도록 주선했다. ‘드래곤 래츠(Dragon Rats·용과 쥐)’라는 팀 이름도 지어주었다. 오빠 장현이 용띠, 동생 장덕이 쥐띠인 데서 따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장현은 1956년 생으로 원숭이띠, 장덕은 1961년생 소띠로 맞지 않다.
장덕이 대중에게 각인된 장면은 1977년 제1회 MBC 서울가요제 때다. 출전 가수가 노래할 때 해당 곡 작곡가가 악단을 지휘하도록 했다. 스무 살 신인 가수 진미령이 어린 소녀의 애틋한 사랑 고백을 담은 노래 ‘소녀와 가로등’을 부를 때 악단을 지휘한 작곡가는 16세 소녀 장덕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오빠 장현과 듀엣 ‘현이와 덕이’로 활동했다. 1980~83년 이혼한 어머니가 사는 미국에 갔다가 귀국해 솔로 가수로도 무대에 섰다. 1987년 노래 ‘님 떠난 후’를 발표하고 조선일보 ‘5분 데이트’ 코너에 등장했다.
“76년 ‘현이와 덕이’란 남녀 듀엣으로 데뷔한 장 양은 84년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안양예고 1학년 때부터 연예 활동을 시작한 그는 그동안 노래만이 아니라 작곡, 영화 출연 등 다방면으로 재능을 보여왔다. 지금까지 만든 노래가 200여 곡으로 지난 77년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 작년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도 그의 작품이다.”(1987년 2월 6일 자 12면)

장덕은 ‘님 떠난 후’로 그해 KBS 가요 톱10에서 5주(2월 18일~3월 18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골든컵을 안았다. 앞서 듀엣 ‘현이와 덕이’로 1985년 발표한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도 가요 순위 10위권에 들며 히트했다.
장덕은 기사에서 “당분간 가수로서의 활동에 주력, 꼭 정상을 차지하겠다”고 다짐했다. 1987년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로 선정되면서 목표를 이룬 셈이었지만 3년 후 갑자기 부음 소식이 날아들었다.
“4일 오전 1시 30분쯤 서울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1008호의 가수 장덕씨(29·여) 집 안방에서 장씨가 신음 중인 것을 함께 사는 장씨의 의상 담당인 디자이너 문인옥씨(29·여)가 발견,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문씨는 장씨가 “몸에 기운이 없다”며 평소 복용해 오던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을 먹은 뒤 잠들었다가 잠시 후 깨어나 비틀거리며 화장실을 드나들고 안색이 창백해 병원으로 옮겼다”고 말했다.”(1990년 2월 6일 자 19면)

오빠 장현은 장덕이 사망하기 전부터 설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장현은 6개월 후인 8월 16일 동생 뒤를 따랐다. 대중음악사학자 장유정 단국대 교수는 장덕을 “걸출한 싱어송라이터”(2021년 11월 11일자 A33면)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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