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대학, 성적순 선발이 가장 공정한 것은 아냐"…금리는 '노코멘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 총재로는 처음으로 기획재정부 세종청사를 방문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역사적 사건'이라 평가했을 정도로 전례없는 행보다. 최 부총리의 지난 2월 한은 방문에 대한 답반 성격이지만 통화정책 독립성을 이유로 정부와 미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온 통화당국 수장이 재정당국을 방문한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이어 "과거에는 한은과 기재부 간의 교류가 적었던 관행은 그때그때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의 경제상황은 두 기관이 거시경제 정책을 하는 양축으로서 정보 교류와 정책 공조가 굉장히 필요한 상황으로 그런 시대적 변화에 대한 적응이라고 생각한다"며 "독립성이 강한 외국 중앙은행의 경우에도 당연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관행을 벗어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제가 한은을 방문한 것이 기재부 장관으로서 네번째였는데 한은 총재가 기재부를 방문한 건 첫번째"라며 "그동안 한은과 기재부와의 관계가 독립성에 기반한 다소의 긴장관계라고 본다면, 당연히 독립적이지만 아주 긴밀한 협력 파트너로서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 덕담도 주고 받았다. 최 부총리는 "앞서 2월에 한은을 방문했을 때 제가 한은을 '현인 동반자'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한은의 우수한 인재들 덕분"이라며 "현인들의 수장께서 기재부를 방문하신 것을 아주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금리의 경우 선진국이나 우리와 비슷한 이머징 국가들이 많이 올렸는데도 저희는 300bp(1bp=0.01%포인트)를 올려 물가를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었던 데는 재정정책을 다른 선진국과 달리 안전하고 건전하게 유지해온 기재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도움을 준 데 대해 감사하고 정책공조가 앞으로도 계속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기재부를 방문한 기념으로 선물도 건넸다. 이 총재가 건넨 선물은 '회전 책장'이었다. 이 책장은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4층 도서관에 비치됐다.
앞서 최 부총리가 한은을 방문했을 때는 '휴식용 벤치'를 선물한 바 있다. 이 벤치는 한은 별관 4층 테라스에 놓여있다.
앞서 대통령실과 기재부를 필두로 한 정부는 금리인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자 이례적으로 "아쉽다"고 언급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다만 두 사람은 이날 금리와 관련해선 말을 아꼈다. 이 총재는 시장의 10월 금리인하 기대감 상승과 관련해 "아직 금통위원들과 상의를 하지 못했다"며 "금통위원들과 상의하고 금통위 때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해 오늘은 코멘트(언급)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주 관훈토론회에서 '내수 살리기'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언급한 것과 관련해 "경제부총리로서 여러 가지 정책 목적 중 단기적으로 어느 게 가장 시급한 과제냐라는 질문으로 이해를 하고 거기에 대한 답변을 드린 것"이라며 "이것이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의 어떤 고려 요인 중에 전제로 해서 답변드린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최 부총리는 관훈토론회에서 '내수 살리기와 집값·가계부채 중에서 하나만 선택한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내수를 택했다.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부담에도 당장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릴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어떻게 재편하느냐 하는 것은 지난 프레임워크"라며 "과거 우리나라가 이머징마켓이고 후진국이었을 때는 공급이 부족했고 모든 정책이 공급자 중심으로 돼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과거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는 어떻게 공급을 늘릴 수 있느냐가 큰 프레임이었다면 지금은 민간 구조로 수요가 움직이는데 정부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그런 프레임워크에서 바뀌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 제 사견"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한은이 발표한 교육보고서와 관련해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모든 대학이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뽑고 있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국민이 성적순이 가장 공정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는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의 발언은 최근 한은이 보고서를 통해 제안한 '대학 지역별 비례선발제'와 관련해 논란이 인 데 따른 것이다. 지역별 비례선발제는 일부 상위권 대학이 자발적으로 대부분의 입학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는 방안이다. 이와 관련, 이 총재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 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상위권 대학에서 서울 강남 지역 고교 졸업생들의 비중이 지나치케 크다"며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게 할 과감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각 대학이 하고 있는 지역선발제를 더 크게 한다면 강남으로 모이는 것을 해결할 수단이 될 수 있다"며 "강남에 사는 부모님들도 여섯 살때부터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이 과연 (아이에게) 행복한 것인지, 중간에 부모의 요구를 달성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것이 평생의 짐이 될텐데 이런 사회가 계속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현상은 매우 나쁜 균형이므로 조그만 변화로는 바꿀 수 없고 공론화를 통해 뭔가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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