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유발 시설 들어설 때, 김해 주민만 미리 안다

유해·혐오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주민, 이어지는 집회와 농성, 뒤늦은 수습에 나서는 행정, 기약 없는 갈등 반복…. 갈등이 예상되는 시설을 둘러싼 사회적 비용은 주민 '알 권리' 무시에서 비롯한다. 이를 막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공론화는 오래됐지만 제도를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소수다. 경남에서 조례를 제정한 자치단체는 김해시뿐이다.

'갈등유발 예상시설 사전고지 조례'는 주민 알권리를 충족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발생할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갈등 유발 예상시설 인·허가 신청이 접수되면 주민에게 미리 알리도록 규정했다.

2020년 부산시 기장군을 시작으로 조례 제정 움직임이 일었지만,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10월 시행 예정인 경기 시흥시를 포함해 32곳에만 제정됐다. 갈등 유발 시설이 진입할 가능성이 큰 군 단위에선 4곳만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김해시청 앞에서 갈등유발 예상시설 사전고지 조례 범위 축소 개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는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김해시는 2020년 주촌면 의료폐기물소각장, 부곡동 장유소각장, 상동면 동물화장장 등 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고조되자 주민 건의로 조례를 제정했다. 사전고지 대상은 △위험물 저장·처리시설 △가축 사육·도축시설 △폐기물 등 자원순환시설 △묘지 관련 시설 등이다. 김해시 관계자는 "조례 제정 이후 축산시설을 중심으로 연간 20~30건가량 고지된다"고 말했다.

대상시설 행정행위 신청을 받은 시장은 7일 이내에 △행정복지센터 게시판 게재 △500가구 이상 공동주택 입주자대표회의 서면 통지 △읍면동장 서면 통지 등으로 사전고지를 해야 한다. 미리 신청한 주민은 사전고지 문자를 받을 수 있다. 주민은 서면으로 의견을 낼 수 있고, 시장은 반영 여부를 결정해 처리 결과를 주민에게 알려야 할 의무도 있다. 필요하면 공청회도 열 수 있다.

농촌지역 난개발이나 환경오염시설 설치 등 논란이 일어날 때 정작 주민은 뒤늦게 알고 대처하지 못해 갈등이 이어지는 사례는 경남에서도 흔하다. 사천에서는 SK에코플랜트가 제조업 유치를 목적으로 조성되는 대진일반산업단지에 폐기물처리장인 이차전지 리사이클링복합단지 건립을 추진해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김미애 사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제조업 고용 창출 등 경제 활성화를 기대했던 주민들이 산업 폐기물처리장 건립 추진 사실을 알지 못하다 우연히 듣고 뒤늦게 대응하는 상황"이라며 사전고지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NC함안㈜이 함안 칠서면에 매립장과 소각시설을 추진하면서 칠서면뿐만 아니라 가까운 창녕군 남지읍 주민 반발이 거세다.

그나마 조례를 시행하는 김해시도 지난해 사전고지 대상 범위를 줄이면서 주민 반발을 샀다.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이 사전고지 대상 지역 범위를 1000m에서 500m로 줄이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힘 시의원 전원이 찬성으로 가결했다.

기존 범위가 과도하다는 국민의힘 시의원들 주장에 민주당 시의원과 주민들은 알 권리 박탈을 제기하며 맞섰다. 주민 재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홍태용 시장도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축사시설을 대상으로 돼지·개 2000m, 닭·오리·메추리 1600m, 젖소 800m, 그 외 가축 400m 등 사전고지 대상 지역 범위를 세분화하는 식으로 조례를 개정해 일부 개선됐지만 갈등 불씨는 여전하다.

조례를 제정하더라도 한계점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사전고지는 의무지만 상위법이 없어 어겨도 제재할 수 없다. 비영리 공익법률센터 농본은 최근 정책브리핑에서 "조례 제정에도 공무원이 사전고지를 게을리했을 때 제재 수단이나 주민 권리구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주민 알권리를 보장하고 농촌지역 난개발과 환경오염에 대응하려면 사전고지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농본은 사전고지 의무 위반 시 공고 후 인사부서 통보 규정화를 비롯해 사전고지 대상 사업과 대상지 범위 확대를 제시했다.

/최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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