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스키한 목소리로 사랑받던 시절
1968년, ‘아카시아의 이별’로 데뷔해 ‘그림자’, ‘꽃목걸이’, ‘가을이 오기 전에’ 등 허스키한 감성의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동생 이영일과는 ‘남매가수’로 활동하며 당대 가요계를 누볐던 인물.
1974년 아들을 낳고 무대에서 물러난 뒤로는 봉사와 신앙, 투병의 시간을 살아낸 가수 故이영숙이다.

교도소에서 피어난 인연
기독교에 귀의한 뒤엔 고아원, 교도소, 양로원을 돌며 봉사에 전념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교회의 소개로 만난 이는, 1990년대 ‘범서방파’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태촌이었다.
두 사람은 편지로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고, 2년 간의 서신 왕래 끝에 1998년 청송교도소에서 혼인신고를 하며 ‘옥중결혼’을 올렸다.

암 선고와 남편의 투병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고통이 찾아왔다.
이영숙은 자궁경부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자궁뿐 아니라 방광까지 절제하는 대수술을 겪었다.
생존 가능성조차 불투명했던 절망 속에서 “나는 죽지 않는다”는 주문처럼 자신을 다독이며 버텨냈다.
고통을 껴안은 채, 매주 휠체어에 의지해 청송으로 면회를 다녔다. 그 힘든 몸으로, 투병 중인 남편을 끝까지 지켜봤다.

한결같은 마음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살 거예요. 하루를 살더라도 함께이고 싶어요.”
이영숙은 단 한 번도 김태촌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이 폐암 수술과 폐결핵, 호흡기 의존 상태로 고통받던 시간 동안에도, 법정에서 보호감호 해제를 위한 탄원서를 모으고 끝내 면회를 멈추지 않았다.

이루지 못한 약속
두 사람은 출소 후 서예학원을 함께 열 계획도 세웠다.
김태촌은 교도소에서 서예를 배우며 상도 여러 차례 받았고, 이영숙은 “노래로 희망을 전하겠다”며 가수 복귀 무대를 준비했다.
하지만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태촌은 2013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이영숙은 남편과의 이별 후 다시 암이 재발했다.

조용한 작별
그렇게 2016년 11월, 향년 68세로 눈을 감았다. 병상에서도 그는 여전히 말하곤 했다.
“지금부터의 삶은 병마와 싸우는 이웃들을 위한 것”이라고.

삶이 곧 노래였던 사람
이영숙은 무대에서 노래하던 시절보다,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를 향해 손 내밀던 시간 속에서 더 큰 울림을 남긴 사람이었다.
남편과 함께한 그 긴 고통의 여정조차 “하늘이 준 인연”이라고 믿었던 사람.
그가 남긴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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