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 넘으면 안락사 지원해 준다는 정책 담은 일본 영화

▲ 영화 <플랜 75> ⓒ 찬란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857] <플랜 75> (Plan 75, 2022)

글 : 양미르 에디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1983년)는, 자급자족을 하는 산촌을 배경으로 사는 사람들의 일생을 자연의 풍광과 함께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가 현재까지도 '이슈'가 된 이유는 일명 '고려장' 문화라 할 수 있는, 70세 넘은 노인이 의식에 따라 산에 버려야 한다는 내용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기 때문.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엄연한 그 사회의 규칙'이라고 하지만, 인간이 길이 어떻게 막다른 곳으로 향할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작품이었는데, 이와 비슷한 결을 보여준 영화가 도달했다.

<플랜 75>는 청년층의 부담이 나날이 커지고, 이로 인한 노인 혐오 범죄가 증가했다는 근 미래의 일본을 '가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일본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이라면 별다른 절차 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플랜 75'라는 정책을 발표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국가가 준비한 10만 엔(약 90만 원)을 받으며 남은 나날을 정리하고, 개인별 맞춤 상담 서비스(주로 전화 통화가 이뤄진다), 장례 절차 지원 등의 혜택을 지원하는 것.

<플랜 75>는 당사자인 노인뿐만 아니라, 상담사, 공무원, 유품 처리사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놓인 캐릭터를 통해, 초고령사회의 실태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작품의 줄거리를 이끄는 인물은 가족이 없는 78세 여성 '미치'(바이쇼 치에코)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장인 호텔에서 명예퇴직(다른 노년 노동자가 현장에서 쓰러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처리된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고심 끝에 '플랜 75' 신청하게 된다.

<플랜 75>의 '서브 캐릭터'들은 모두 20대~30대로 보이는데, 이들은 '플랜 75' 사업을 위해 '고용된' 청년들이다.

'플랜 75' 상담 업무를 맡은 시청 직원 '히로무'(이소무라 하야토)는 오랜만에 만난 삼촌이 '플랜 75' 신청하면서 고민에 빠진다.

이어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카와이 유미)는 15분씩 '미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해주고, 금지 사항인 '미치'와의 만남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필리핀에서 온 이주노동자 '마리아'(스테파니 아리안)는 어린 딸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일본에서 복지사로 일하던 중 자국민들은 꺼리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노인들의 죽음을 돕는 일에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게 되는 이 현상에 대해, 작품을 연출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인간의 존엄성보다 경제와 생산성을 우선시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으려고 했다"라고 언급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2016년 7월, 일본의 한 장애인 시설에 침입한 2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19명이 숨지고, 26명이 다친 사건 소식을 접한 후 큰 충격을 받았다고.

감독은 "정신적 문제가 있는 한 남자가 저지른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편협함과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그런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플랜 75>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프로젝트 <10년>(2018년)의 단편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각색, 확장해 만든 하야카와 치에의 첫 장편이다.

<플랜 75>에 묘사되는 사회는 끔찍하지만, 정작 '플랜 75'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의를 차리고 친절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에 대해 감독은 온화한 얼굴로 행해지는 폭력을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플랜 75'가 그럴듯한 말로 보기 좋게 꾸며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는 점을 강조해서 보여 준다.

등장 인물을 예의 바르고 친절한 모습으로 묘사해, 정부가 어떤 정책을 하든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처럼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는 것.

'생각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인데, 영화에서는 한 남자가 '플랜 75' 상담 영상이 나오는 TV를 꺼버리는 장면을 '단 한 커트'만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작품에 나오는 노인들은 '플랜 75'를 쉽게 받아들일까? (심지어 일본 정부는 '플랜 75'가 성공적이라, 신청 연령을 하향할 것을 검토한다)

감독은 노인들이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 사회에 짐만 되는 존재라고 느끼게 만드는 게, 미디어가 두려움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불안정한 연금 제도 때문에 굉장히 많은 노인들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사회로부터 밀려나는 느낌에서 오는 수치심 때문에 '복지를 통해 도움받는걸' 주저한다고 언급한다.

우리 사회만 해도 어떠한가? 한쪽에는 보편적 노인 복지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예산 문제로 인해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와 관련한 이슈를 내세우기도 한다.

감독은 배려심 부족과 무관심,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의 결여가 가장 위험하기 때문에, 이를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히로무'와 '요코'는 처음에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인물이었으나, 각각 삼촌과 '미치'를 만나 정을 나누면서 연민을 느낀다.

연민의 마음이야말로 편협함과 무관심에 대항할 힘이 되고, 이를 통해 영화는 나름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플랜 75>는 철저히 극적인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를 통해 현실성과 공포감을 부여한다.

관객이 이 영화를 공상 과학이 아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나, 혹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로 느끼길 바랐다는 감독의 의도는 '느릿한 템포'의 영화를 시종일관 몰입하게 해줬다.

2024/01/24 CGV 용산아이파크몰

플랜 75
감독
하야카와 치에
출연
바이쇼 치에코, 이소무라 하야토, 카와이 유미, 스테파니 아리안, 타카오 타카, 오오카타 히사코, 쿠시다 카즈요시, 미즈노 에이코, 제이슨 그레이, 프레데릭 코르브, 마에바 사비니앵, 코니시 케이스케, 미즈노 에이코, 쿠니자네 미즈에, 이시가키 히로유키, 프레데릭 코르브, 하야카와 치에, 우라타 히데호, 츠네타니 요시오, 레미 부발, 우스이 마사루, 앤 클로츠
평점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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