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봉지에 화약띠, 타이머 전선... 北 오물풍선, 이건 무기다

박진성 기자 2024. 10. 7. 05: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북한 오물풍선 구조 살펴보니

북한이 지난 5월부터 살포한 오물 풍선은 쓰레기를 채운 비닐봉지에 ‘화약띠’를 둘러 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타이머 장치가 스파크(불꽃)를 일으켜 이 화약띠를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쓰레기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쓰레기 봉지를 실어나른 풍선에는 수소 가스를 채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정도면 단순히 쓰레기를 매단 풍선이 아니라 특정한 의도를 갖고 제작한 무기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백형선

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채현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방부에서 받은 ‘북한 오물 풍선 구조도’에 따르면, 오물 풍선은 지름 3~4m 크기 고무풍선에 쓰레기, 거름 등을 채운 비닐봉지를 매달아 만들었다.

풍선과 봉지 사이에 건전지로 작동하는 발열 타이머를 달았다. 쓰레기 봉지에는 허리띠처럼 화약띠를 두르고 발열 타이머와 전선으로 연결했다. 발열 타이머는 풍선이 이륙한 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전선에 전기를 흘려보내 스파크를 튀긴다. 그러면 봉지를 두른 화약띠가 펑 터지면서 봉지 아랫부분이 열려 안에 있는 쓰레기가 넓게 뿌려진다. 채 의원은 “과거 운동회 때 박을 터뜨리는 것과 같은 구조로 보인다”며 “그동안은 발열 타이머에 연결된 열선이 봉지를 녹여 쓰레기를 떨어뜨렸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상 화약이 봉지를 터뜨린 것”이라고 했다.

다만 북한이 어떤 종류의 화약을 어떻게 처리해서 띠 형태로 만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화약띠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일부 오물 풍선이 떨어진 곳에서 왜 불이 났는지 의문도 풀리게 됐다. 합참 관계자는 “타이머에 설정한 시간보다 일찍 풍선이 떨어지면 지상에서 화약이 터지면서 쓰레기 봉지에 불이 붙을 수 있다”고 했다.

고무풍선에는 수소 가스를 채운 것으로 파악됐다. 군 당국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기구를 띄울 때는 가볍고 안전한 헬륨 가스를 쓰는데 가격이 싼 수소를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수소 가격은 헬륨의 10분의 1 수준으로 싸지만, 불이 붙으면 폭발하는 성질이 있어 위험하다고 한다. 수소는 물을 전기 분해해서 만들거나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얻는다. 둘 다 전기가 많이 든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무게 10㎏ 안팎인 오물을 우리나라까지 날려보내려면 상당한 양의 수소가 필요한데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조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고무풍선의 고무는 천연고무를 쓴 것으로 파악됐다.

채 의원이 행정안전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5월 28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총 22차례에 걸쳐 오물 풍선 5530개를 살포했다. 창고와 공장에 불이 나거나 차량 유리, 건물 지붕이 파손되는 등 피해도 78건으로 집계됐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서는 총 20여 차례 항공기 이·착륙이 중단되기도 했다.

군 당국 관계자는 “군이 수거한 오물 풍선 대부분이 타이머와 화약띠 등 구조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군은 북한이 주민들을 동원해 오물 풍선을 자체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군 관계자는 “오물 풍선 하나 만드는 데 10만원 정도 들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최근까지 총 5530개를 살포했으니 오물 풍선 살포에 약 5억5300만원을 들인 셈이다.

북한은 남한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하기 위해 오물 풍선을 살포한다고 하지만 군 전문가들은 오물 풍선이 언제든 무기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픽=백형선

서울 등 우리나라 땅에 떨어지는 ‘적중률’도 높아지고 있다. 군 당국 관계자는 “처음에는 서해 바다에 떨어지는 풍선도 많았는데 횟수를 거듭할수록 우리나라 땅에 떨어지는 오물 풍선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6월 2차 살포 때는 우리나라 영토에 떨어진 오물 풍선 비율이 12.5% 수준이었는데 지난 7월 10차 살포 때는 그 비율이 96%에 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 달 새 적중률이 8배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물 풍선이 겨냥한 듯 용산 대통령실과 국회도서관, 국방부 청사에 떨어진 경우도 있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오물 풍선 수천개를 살포하면서 풍향과 풍속, 타이머 작동 시간, 풍선에 채우는 수소 가스의 양 등에 대한 노하우와 데이터가 쌓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나중에는 목표물을 꽤 정확하게 타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구체적인 적중률은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오물풍선의 정확도가 상승하는 추세인 것은 맞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오물 풍선에 쓰레기 대신 생화학 물질을 담아 서울 등 도시에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까지는 오물 풍선에서 생화학 물질이 검출된 적이 없지만 콜레라균이나 독극물 등을 살포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