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윤종]취임사마다 ‘검찰 중립’ 외쳤던 총장들
19일 열린 46대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심우정 신임 총장은 이같이 말했다. 이어 “외부 영향이나 치우침 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른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들이 믿을 수 있게 하자”고 했다. ‘증거와 법리’를 강조한 심 총장 표정에선 정권 중반에 임명된 검찰총장으로서의 부담감이 느껴졌다. 신임 총장의 목표와 약속을 취임사에 담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탓이다. 전임 이원석 총장 역시 2년 전 취임사에서 한비자의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성역은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디올백 수수 의혹 수사 등을 질질 끌어 임기 내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36년간 총장 3명 중 1명만 임기 채워
검찰총장 2년 임기제가 시행된 1988년 이후 임명된 총장 25명의 취임사를 쭉 훑어 봤다. 시대에 따라 주요 수사 대상과 척결 방안이 각각 다르게 담겼지만, 검찰의 중립성·공정성·신뢰 회복을 언급한 부분은 취임사마다 유사했다. 일부는 ‘Ctrl+V’(붙여넣기)로 내용을 옮긴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영삼 정부 첫 검찰총장인 박종철 전 총장은 1993년 3월 취임사에서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국민을 두려워하며 소신껏 검찰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 의중을 읽지 못한다는 평가와 수사 부진이 겹치면서, 박 전 총장은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했다. 2005년 4월 취임사에서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을 뿌리내리겠다”고 했던 김종빈 전 총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동국대 교수 구속에 대해 헌정사상 첫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되자 같은 해 10월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8월 취임한 한상대 전 총장은 “검찰의 깨끗함과 투명함을 강화시키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는 일명 ‘봐주기 구형’으로 구설에 올랐고 대검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후배 검사들의 검란(檢亂)으로 1년 3개월 만에 퇴진했다. 채동욱 전 총장은 2013년 4월 취임식에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 결연한 의지를 가지겠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 초기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혼외자 논란에 휘말려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했다. 윤 대통령 또한 검찰총장 시절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겪었고 2021년 3월 사퇴 후 곧장 대통령 후보가 됐다. 36년간 25명의 총장 중 2년 임기를 마친 이는 9명(36%)에 불과했다.
‘검찰 중립 방벽 되겠다’는 약속 지켜야
심 총장도 선배 총장들처럼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레임덕과 함께 각종 의혹이 터지면서 정권을 직격하는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수남 전 총장의 경우 자신을 임명한 박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이달 24일 디올백을 건넨 최재영 씨에 대한 수사심의위원회 결과가 나오면 김 여사 처분을 결정해야 한다. 12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2심에서 전주(錢主)로 기소된 손모 씨가 방조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유사한 역할을 한 김 여사 처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수사 등 검찰 중립성을 평가할 사건이 수두룩하다.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심 총장은 정권에 맞설 수도, 비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취임사를 떠올리길 바란다. 심 총장 취임사는 이렇게 끝맺는다. “검찰의 중립성 독립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든든한 방벽이 될 것을 약속드린다.” 물론 총장 의지만으론 한계가 있다. 정치권 외압, 대통령 인사권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이 약속이 지켜진다면 ‘검찰 중립성·독립성’이란 단어는 향후 신임 총장들의 취임사에선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
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영원한 재야’ 장기표, 암 투병 중 별세…향년 78세
- “퇴직… 이런 세상이 있었네?”[서영아의 100세 카페]
- 고교 자퇴→목수→대학…‘전진소녀’의 내 길 찾기[BreakFirst]
- 김건희 여사는 왜 하필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샀을까?[법조 Zoom In : 법정시그널]
- 당신의 ‘조용한 퇴사’, 상사는 알고 있다
- 서울 갈아타기 1주택자, 기존 대단지 아파트 급매가 현실적 대안
- “지긴 내가 왜 져? 더 악착같이 해내야지” 독한 정신력 부르는 분노의 힘[최고야의 심심(心深)
- 尹대통령, 체코와 100년 ‘원전동맹’ 맺고 귀국길
- 소멸한 태풍 지나간 남해안에 ‘폭력적인 가을비’… 22일엔 영동에 온다
- “천석꾼 가세 기울었어도, 독립운동 아버지 원망은 이제 안 해요”[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