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갈라치기
‘갈라치기’는 본래 바둑 용어로 “상대의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변의 중앙에 돌을 두는 전술”을 말한다. 갈라치기를 하면 상대의 포석이 한 집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혼자서 생각해봤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바둑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제 갈라치기 전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바둑인들은 다소 불쾌할 수도 있겠다. 갈라치기는 이제 사회나 특정 집단을 둘 혹은 그 이상으로 나누어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숱한 갈라치기가 횡행하는 통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세대와 지역, 정치 지향 등 별별 것들로 사람들은 갈라치기를 한다. 그중 갈라치기의 원조는 아무래도 여와 남, 남과 여를 차별한 역사일 것이다. 여성은 역사 이래, 사정이 나아졌다고 하는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경험한다. 유리천장을 뚫고 고위직에 오르는 여성들이 흔해졌다. 자기만의 길을 뚜벅뚜벅 가는 젊은 여성도 많다. 차별이 일종의 시대정신일 때에도 어떤 여성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곤 했다. <여자, 조용히 살지 않기로 하다>(푸른역사) 중 한보람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강사가 쓴 ‘여자, 복수하다’에 등장하는 한 여성은 살인자였다.
1897년 전라북도 전주군의 한 마을. 송씨는 “더 이상 남편과 살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남편을 떠나 재혼”했다. 이 시기 남편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간 대개의 여성들은 “남편이 가정을 돌보지 않았거나 건사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을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전남편 김덕삼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행패를 부렸다. 무슨 이유에선지 송씨에게는 직접 항의하지는 못하고 송씨의 어머니 조씨를 납치해 “새끼줄로 묶어 방에 밤새도록 가두고 딸을 데리고 오라”며 위협했다. 조씨는 열흘 말미를 주면 딸을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풀려났다.
하지만 조씨는 시름시름 앓다가 아흐레 만에 숨졌다. 송씨는 다짐했다. “인간의 타고난 도리상 부모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송씨는 친언니와 함께 전남편을 찾아가 ‘절굿공이’로 김덕삼을 때려죽였다. 몰래 죽인 것도 아니다. 김덕삼의 이웃들은 구경만 했다. 미루어 짐작건대 김덕삼의 행태는 동네 문젯거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살인은 엄연한 살인. 그럼에도 관찰사는 능지처사(陵遲處死)할 수 있는 강상죄가 아니라 부모의 원수를 죽인 복수 살인에 해당하는 ‘장 60대’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여성 차별이라는 인식조차 없던 시공간에서, 송씨는 자기만의 생각을 행동에 옮겼고, 차별에 저항했다. 저자는 이를 “한 ‘인간’으로서, 한 사회의 ‘보편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서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라고 적었다.
1684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차별의 시선을 걷어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쩔 수 없이 엄흥도(유해진)가 앞설 수밖에 없지만, 노산의 삼시 세끼를 책임진 이는 막동어멈(김수진)이다. 영화는 막동어멈을 차별하지 않는다. 노산이 한 숟가락이라도 입에 넣는 날이면 막동어멈의 달뜬 얼굴이 화면에 가득하다. 매화(전미도) 역시 노산의 움직임에서 비롯되었을망정, 그만의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자타공인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 장항준 감독은 분량 차이는 있을지언정, 역사 속 인물의 신분이나 지위 등을 차별하지 않고 화면에 담아냈다. 차별, 아니 갈라치기는 사회와 집단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곧 다가오는 정치의 계절이 우리 사회의 갈라치기를 더 깊고 넓게 만들지는 않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걱정을 하는 요즘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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