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47년 전 이란을 신정 국가로 만든 호메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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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란을 강타했습니다.
이란은 즉각 미사일과 드론으로 보복 공격에 나섰고, 전쟁의 불길은 중동 전역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강력한 독재 정치와 비밀경찰을 통한 탄압은 이란 사회의 불만을 폭발 직전까지 몰고 갔습니다.
이후 '미국에 맞서는 이슬람 혁명 국가'라는 정체성이 이란 정치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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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의 뿌리는 1979년 루홀라 호메이니(1900∼1989·사진)가 일으킨 이슬람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란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었습니다. 당시 이란을 통치하던 모하마드 리자 팔레비는 서구식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며 경제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강력한 독재 정치와 비밀경찰을 통한 탄압은 이란 사회의 불만을 폭발 직전까지 몰고 갔습니다.
망명 중이던 성직자 호메이니는 이러한 불만을 종교 혁명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이라크 나자프와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의 설교를 녹음해 카세트테이프로 이란 전역에 퍼뜨렸고, 모스크(이슬람 사원)와 성직자 네트워크를 통해 반정부 시위를 확산시켰습니다. 동시에 성직자가 국가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벨라야테 파키’ 사상을 혁명의 핵심 이념으로 내세웠습니다.
1979년 마침내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면서 이란의 왕정은 무너지고 이슬람 신정 국가가 탄생합니다. 성직자가 국가 권력의 정점에 서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정치 체제가 등장한 것입니다.
한편 혁명 직후에 일어난 ‘이란 인질 사건’으로 미국과 이란, 두 나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적대 관계로 굳어졌습니다. 혁명 학생들이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외교관 52명을 인질로 잡아, 무려 444일 동안 억류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호메이니는 이를 단순한 외교 충돌이 아닌, 혁명을 지키기 위한 반미 투쟁으로 규정했습니다. 이후 ‘미국에 맞서는 이슬람 혁명 국가’라는 정체성이 이란 정치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 뒤 수십 년 동안 핵 개발 문제, 중동에서의 영향력 경쟁, 경제 제재와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며 미국과 이란은 끊임없이 충돌해 왔습니다. 지금 중동에서 울리는 폭발음은 갑자기 시작된 새로운 전쟁이 아니라 1979년 이슬람 혁명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명분’입니다. 포탄과 미사일이 날아드는 동안 그 아래에서는 군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먼저 죽어갑니다. 전쟁이 남기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폐허와 희생뿐입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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