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섹시 스타 김진아는 연예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6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원로 배우 김진규, 어머니는 한국 최초의 화장품 모델이자 배우 김보애였다.

남동생 김진근을 비롯해 이모부 이덕화, 제부 최병서까지, 가족 중 연예인만 무려 13명. 누가 봐도 '끼'로 설명되는 집안이었다.


1983년 영화 다른 시간 다른 장소로 데뷔한 김진아는 단숨에 주목받는 스타가 된다.
이국적인 외모와 대담한 연기, 그리고 부모의 명성을 넘어선 자기만의 존재감으로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신성일과 출연한 <지금 이대로가 좋아>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80년대 중반, 당대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김진아는 기존 여성 캐릭터와는 다른 당당함과 섹시함으로 확실한 ‘차별화’를 보여줬다.

하지만 화려한 길엔 예상치 못한 그림자도 드리웠다.
비공개 혼인신고, 간통 스캔들 등으로 대중의 시선이 싸늘해졌고, 김진아는 심리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는다. 결국 1987년 연산일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도예와 음악 등 다양한 공부를 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던 김진아는, 어느 날 입양기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당시 아버지를 호스피스 병동에서 떠나보낸 경험이 계기가 됐고, 그 경험은 김진아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우울한 시기를 지나며, 봉사는 삶의 방향을 다시 일으켜준 ‘전환점’이 되었다.

2000년, 이탈리아계 미국인 케빈 오제이와 결혼한 김진아는 자연 임신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낳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수차례의 시도 끝에 유산의 아픔도 겪었지만, 그녀는 계획했던 ‘입양’을 실천하며 아들 매튜 오제이를 품에 안았다.

“이 아이를 통해 진짜 사랑을 배웠다”는 말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행복한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김진아는 희귀병 ‘경피증’을 오래 앓아왔다.
면역 질환으로 시작된 증상은 결국 몸에 종양을 만들었고, 암으로 진행되며 건강을 빠르게 악화시켰다.
2014년 8월, 쉰 번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하와이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그녀는 끝까지 병명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우리에겐 병명이 아니라, 빈자리가 중요했다”는 동생 김진근의 말처럼, 김진아는 자신의 아픔보다 주변 사람들과의 마지막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겼다.

섹시 스타에서 따뜻한 엄마로, 배우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던 김진아.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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