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조와 비류는 주몽의 아들인가 (1)?
[고구려사 명장면-153] 고대 건국 설화의 주인공인 건국 시조가 실존했던 인물임을 확신하기는 어렵다. 건국 설화는 물론 시조의 행적에도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설화상으로 윤색되었을 어떤 인물을 상정할 수는 있다. 다만 그 실재성이 다른 기록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유일한 예외가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왕이다.
지난 회에서 주몽왕(추모왕)이 중국 역사서인 '후한서' 고구려전에 보이는 왕망대 인물인 고구려후 추(騶)와 동일한 인물임을 살펴보았다. 즉 주몽왕은 실존 인물로서 당시 고구려 세력을 결집시켜 중국 측에서도 그 존재감을 뚜렷하게 인식할 정도의 위상을 가졌다. 그런 점에서 당시 고구려에서 건국 시조로 받들어질 만했다고 본다. 아마도 당대부터 혹은 후대에 시조로서의 신성성을 내세우기 위해 다양한 내러티브를 갖는 설화적 내용들이 주몽왕의 행적을 풍성하게 장식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여러 형태로 전해지는 이른바 주몽신화 내지는 건국 전승이다.
이렇게 주몽이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면 여러 설화에서 주몽과 함께 등장하는 여러 인물 역시 실존 인물이 될까? 특히 누구보다도 백제의 건국 시조로 등장하는 온조와 비류,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인 졸본왕녀, 혹은 소서노라는 인물의 실존성이 궁금해진다. 온조와 비류는 전승에 따라 주몽의 친아들로 혹은 의붓아들로 등장하고 있기에 혈통과 계보상 가장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제 시조 전승은 주몽설화와 달리 그 실재 여부와 관계없이 비현실적인 요소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온조 시조 전승이든 비류 시조 전승이든 그 내용상 모두 있음 직한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주몽과의 관련성을 따져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문헌상으로는 백제 건국 설화 외에는 이를 대조하고 검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그래서 주몽과 온조, 비류의 관계를 살펴보는 데는 두 가지 정도 접근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주몽왕의 실재성이 확인되었으니, 같은 시기인 기원 전후 시기에 과연 백제가 건국되었는지를 검토하는 방식이다. 이는 고고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합리적 접근이 가능하겠다. 또 다른 방법은 고고자료의 검토 결과를 놓고 백제 건국 설화에 주몽왕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에 대해 관련 문헌자료를 서로 비교하면서 양자의 관계성을 밝히는 방법이다.
먼저 고고자료부터 검토해보자. 여기서 초점은 두 가지다. 첫째 기원 전후시기에 백제 국가가 형성되었는지, 둘째 그때 고구려계 이주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지다. 백제 국가 성립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고고자료로는 가장 이른 시기 유적인 풍납동토성 및 그 일대의 주거 유적, 그리고 고분유적이 될 것이다. 백제 국가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지만, 이들 고고자료로 대체로 3세기 초 이상으로 올라가기 어렵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다.
다음 고구려계 이주민의 존재인데, 그동안 한강 유역 일대의 적석총이 고구려계 주민이 이주해왔음을 보여주는 물질 자료로 주목되어왔다. 실제 백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지역에는 고구려식 적석총과 고구려계 적석총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백제식으로 변화한 적석총이 다수 있다.
그중 석촌동 일대 계단식 적석총의 축조 시기는 3세기 중반대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백제화한 적석총의 모습은 고구려계 적석총이 이때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등장하여 점차 백제화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3세기 초 이상으로 올려보기는 어렵겠다.
한편 임진강변 연천군 삼곶리 등에서도 고구려계 적석총이 발견되었는데 2세기 말~3세기 초의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고구려계 이주민이 먼저 임진강 유역에 일시 머물다가 서울 지역으로 남하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이보다 이른 시기 서울 지역 일대에서는 토광목관묘로 대표되는 묘제를 사용하는 세력 집단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다. 1916년 당시 서울 지역 고분 조사에서는 적석총보다는 토광묘 계통 봉토분이 더 많았다는 보고도 있다. 이 석촌동 일대에 널리 분포하는 토광묘를 부여(扶餘)의 묘제인 토광묘로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토광묘는 가장 보편적인 묘제이기 때문에 곧바로 부여계로 연결하기는 곤란하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다. 그래서 한반도 서북한 지역의 토광묘 문화와 관련지어 보는 견해도 있고, 또는 문헌자료와 결부시켜 이른바 온조로 대표되는 백제 건국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면 한강 유역에서 부여계 주민의 이주를 상정하기는 어려울까? 부여계 주민의 이주가 반드시 묘제의 등장을 동반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 고구려의 경우에도 건국 설화에서 주몽이 부여에서 이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정작 부여계 묘제는 압록강과 혼강 일대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 부여계 주민의 이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부여계 묘제가 있어야 한다는 보장은 아니다. 따라서 문헌자료에 나타나듯이 백제인 스스로가 부여 계승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부여계 주민의 이주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강 하류와 서울 지역의 고고자료로 볼 때 선주 세력과 고구려계 이주민을 상정할 수 있고 또 부여계 이주민의 존재도 부정할 수 없다. 여러 계통의 문화와 주민들이 백제 국가를 구성하는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국가 형성 시기를 3세기 이후로 본다면 건국 설화에서 전하는 시기와는 맞지 않고, 그렇다면 기원 전후에 실존했던 추모왕과도 시기상 맞지 않는다. 물론 건국 설화에서 말하는 백제 국가와 고고자료에서 확인되는 국가체의 등장이 바로 일치한다고 보는 관점도 문제가 없지 않으니, 이 점은 나중에 좀 더 따져보도록 하겠다.
고고자료를 통해 말하자면 기원 전후 시기 고구려에 실존했던 추모왕과 백제 건국 설화에 등장하는 주몽의 아들 온조와 비류를 직접적인 혈연관계로 설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면 왜 이런 건국 전승이 만들어졌을까? 백제 건국 전승을 해체해야 할 이유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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