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2월, 대형 홍보 없이 조용히 개봉한 영화 한 편이 관객들의 깊은 관심을 모았다. 바로 윤동주 시인과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동주’다. 상업적인 흥행 공식에 의존하지 않고 제작진의 소신과 진정성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개봉 당시 뜨거운 화제를 낳았다.
일제강점기, 꿈과 신념이 충돌한 두 청년
‘동주’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윤동주와 송몽규, 두 사람은 한 집에서 태어나 함께 자라온 사촌지간이자, 같은 시대를 살아간 동갑내기였다. 시를 쓰고 싶었던 청년 윤동주와 행동으로 신념을 실천하는 송몽규는 성격과 선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창씨개명이라는 강압적 현실에 맞서 두 사람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으나, 그곳에서의 길은 점차 달라진다. 송몽규는 독립운동에 더욱 깊이 뛰어들고, 윤동주는 시대의 아픔을 시에 담으며 고뇌한다. 서로의 신념과 방식이 충돌하면서 갈등과 우정, 그리고 젊은 시절의 치열함이 교차한다.
윤동주(강하늘 분)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인물이다. 억압받는 청춘 한가운데서도 시인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반면 송몽규(박정민 분)는 더욱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다. 불의에 맞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성격은 윤동주와의 관계에서 때때로 갈등을 일으킨다. 이처럼 두 주인공의 대비가 영화에 긴장감을 더한다.
홍보 없이 입소문으로 이룬 성공
개봉 당시 기자 시사회에서는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동주’에 찬사를 보냈다. 평범한 호평 수준을 넘어 악평이나 평이한 평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극찬이 이어졌다. 영화 전문 평론가뿐 아니라, 관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동주’의 총 제작비는 약 5억 원에 불과했다. 제작진은 별도의 대규모 프로모션이나 언론 홍보를 자제했다. 고인의 명예를 존중한다는 의지가 컸기 때문이다. 배우 강하늘이 라디오스타 등 일부 방송에 출연한 것이 사실상 유일한 홍보였다.
개봉일 누적 관객은 2만 4422명에 그쳤다. 경쟁작 ‘검사외전’, ‘데드풀’, ‘좋아해줘’ 등 쟁쟁한 상업 영화에 밀려 상영관과 시간대 모두 제한적이었다. 다양성 영화 지원 신청조차 하지 않은 점 역시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동주’는 영화의 완성도와 관객 평판에 힘입어 개봉 이후 빠르게 관객 수를 늘렸다. 개봉 나흘 만에 관객 20만 명을 돌파했고, 동기간 상영작 가운데 좌석점유율 1위에 오르며 흥행 역주행을 이뤘다.
이후 누적 관객은 87만 명을 넘어섰다. 매출액은 62억 원을 돌파했고, 극장 수익 배분 후에도 30억 원이 넘는 순이익을 남겼다. 마침내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총 관객 117만 2,397명, 매출 88억 원을 기록했다. 저예산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성공이다.

당시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은 “별 100개를 줘도 모자란 영화라고 느꼈다. 상영이 끝난 뒤 극장 안이 눈물바다가 되어 모두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 마지막에 연표를 보는 동안 멈추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학창 시절 시를 배울 때 왜 시대적 배경과 특징까지 공부해야 하는지 불평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때가 부끄러워졌다. 영화 속 시 암송 장면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영화가 끝날 때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라, 배움이 있는 영화도 충분히 좋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좋은 영화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좋은 시절에 태어난 내가 그 시절을 살았던 분들의 삶을 영화로 평가한다는 사실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몇 년 전 한 드라마에서 본 엔딩문구를 빌려 마음을 대신하고 싶었다. ‘먼저 떠난 분들이 만들어준 나라에서 마음껏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삶, 그리고 애국심을 진지하게, 그리고 잔잔하게 느끼게 해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시를 다시 읽으니 더 깊이 와닿았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영화는 시대를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남는다. 꼭 보기를 권하고 싶다. 강하늘, 박정민 두 배우를 비롯해 각자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기한 많은 배우와 스태프 모두를 응원하게 된다”고 전했다.

‘동주’는 흥행뿐 아니라 역사적 고증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tvN ‘방구석 1열’에서 최태성 역사 강사가 직접 언급할 만큼, 작품 내 고증이 매우 정확하다는 평가를 얻었다. 일제강점기의 현실, 청년들의 삶과 고뇌, 이름도 언어도 빼앗긴 세대가 마주한 시대적 절망이 담담하게 그려졌다. 작품의 진정성과 자극적인 장면 대신 깊이 있는 감정과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일부 평론가들은 ‘동주’가 범람하는 상업 영화 흐름과 달리 감독과 제작진이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는 점에 의미를 두었다. 흥행만을 좇는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진정성 있는 제작 자세가 오히려 관객의 신뢰와 감동을 이끌어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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