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체코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뒀다. 승리의 설계자는 황인범(29·페예노르트)이었다. 동점골을 직접 넣고, 역전골을 발로 그려냈다. 1골 1도움, 경기 MVP. 숫자는 간결하지만 이 경기에서 황인범이 해낸 일은 그보다 훨씬 복합적이었다. 3월 발목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감했고, 두 달간 공식전 출전이 없었던 선수가 월드컵 첫 경기에서 팀의 두 골 모두에 발을 얹었다. 한국은 황인범의 활약에 힘입어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 승리를 따냈다.

황인범은 이번 월드컵 직전까지 부상 변수가 있었다. 2026년 3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경기 중 우측 발목 인대 부상을 당했고, 복귀전을 치르지 못한 채 클럽 시즌을 마쳤다. 두 달 가까이 공식전에서 뛰지 않은 채 대표팀에 합류했고, 사전 캠프 역시 후발대로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입성했다.
우려는 컸다. 공격의 손흥민, 수비의 김민재처럼 중원의 황인범은 홍명보호에서 대체 불가 자원으로 꼽혔지만, 두 달간 경기 감각 공백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걱정 요소였다. 사전 캠프에서 치른 트리니다드토바고전과 엘살바도르전에서 왕성한 활동량과 안정적인 패스로 연결고리 역할을 완수하며 불안을 어느 정도 지웠고, 체코전 선발 출전으로 이어졌다.
대전 유스 출신으로 시작한 황인범의 커리어는 MLS 밴쿠버, 러시아 루빈 카잔, 그리스 올림피아코스, 세르비아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거쳐 2024년 9월 네덜란드 페예노르트까지 이어진다. 2018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문제를 해결한 뒤 해외 무대를 꾸준히 넓혀온 선수다. 페예노르트 이적 첫 달에 구단 이달의 선수로 선정됐고, 이적 직후 UEFA 챔피언스리그 데뷔도 경험했다. 체코전 이전까지 A매치 74경기 7골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였다.

경기 초반부터 한국이 주도권을 잡았다. 전반 11분 이강인의 침투 패스를 이재성이 연결했고, 손흥민이 왼발 슈팅을 시도했지만 체코 수비에 막혔다. 전반 13분에는 이강인의 중거리 슈팅이 골키퍼 선방에 걸렸고, 이어진 코너킥에서 손흥민의 슈팅도 수비에 차단됐다.
한국은 전반 내내 공세를 이어갔다. 전반 37분 손흥민의 중거리 슈팅이 위로 벗어났고, 38분에도 손흥민의 왼발 슈팅이 옆으로 빗나갔다. 전반 추가시간 슈팅도 빗맞았다. 체코 골키퍼 마테이 코바르시가 후반 초반까지 한국의 슈팅을 연속으로 막아내며 흐름을 잡았다. 후반 3분 황인범의 슈팅도, 이재성의 슈팅도 코바르시의 손에 걸렸다.
문제는 체코의 반격이었다. 후반 14분, 체코의 첫 번째 유효 슈팅이 골로 연결됐다. 오른쪽 긴 던지기 공격을 라디슬라프 크레이치가 헤딩으로 마무리하며 선제 득점. 한국은 공격 비중에서 앞섰지만 한 방에 끌려가는 상황에 처했다.
후반 22분, 황인범이 균형을 맞췄다. 이강인이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 패스를 넣었고, 황인범이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페널티박스 안에서 한 번 몸을 접으며 체코 수비수와 골키퍼를 동시에 속였다. 오른발 밀어넣기로 골망을 갈랐다.

황인범 본인은 "사실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는 게 익숙하진 않은 선수"라고 했다. 그러나 이강인의 패스가 정확했고, 황인범은 그 공간에서 침착하게 마무리했다. 자신의 월드컵 데뷔골이자, 2023 아시안컵 바레인전 이후 약 2년 5개월 만의 A매치 득점이었다. A매치 통산 7번째 골(74경기).
골 이후 황인범이 손흥민의 얼굴을 잡으며 포효하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황인범은 "흥민이 형뿐 아니라 강인이와 승호도 파이팅을 불어넣어줬다. 고맙다는 의미로 얼굴을 잡으면서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주고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점에 그치지 않았다. 후반 35분 황인범이 다시 경기를 결정지었다.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해 위험 지역으로 파고든 황인범은 문전 앞으로 향하는 낮은 크로스를 올렸고, 교체 투입된 오현규가 침착하게 마무리해 2-1 역전을 완성했다.

동점골 장면에서는 직접 득점으로, 결승골 장면에서는 공간 침투와 크로스로 공격을 설계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분류되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박스 근처까지 올라가 득점과 도움을 모두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체코전 황인범의 활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3월 이후의 시간을 들여다봐야 한다. 두 달간 공식전 없이 월드컵 무대에 서는 미드필더—압박 강도가 가장 높은 무대에서, 경기 감각이 가장 불안한 상태로. 황인범은 이 상황을 "관리해도 찾아올 수 있는 게 부상"이라고 표현했다. 아쉬움보다 감사함을 먼저 꺼낸 것은 여유가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태도다.
고지대 변수도 주목할 지점이다. 황인범은 "단순히 느낌이 아니라 상대 선수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많이 힘들어했다"고 했다. 한국이 한 달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고지대 적응 훈련을 마친 반면, 체코는 월드컵 출전 확정이 늦어 이 과정을 생략했다. 후반 막판 체코 선수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무거워진 배경이다. 황인범의 1골 1도움이 만들어진 시간대가 모두 후반 22분과 35분이라는 점이 우연이 아닐 수 있다.

대표팀 내 역할 측면에서도 이 경기는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빌드업 출발점이면서 압박을 벗기고, 필요하면 박스 안까지 들어가 직접 득점하는 미드필더. 손흥민·이강인과의 연계 속에서 황인범의 포지셔닝이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하는지는 남은 멕시코전과 남아공전에서 더 명확해질 것이다.
황인범은 체코전 이후 "부상 없이 좋아하는 축구를 행복하게 오래오래 하고 싶다"고 했다. 바람은 담백했지만, 이날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남은 조별리그 두 경기, 황인범이 같은 밀도로 경기를 이끌 수 있다면 한국의 16강 이상 행보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 멕시코, 남아공 — 이 두 경기에서도 황인범이 중원을 지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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