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에 놀란 中 당국, SNS 뒤지고 조작… 공안 폭력 ‘민낯’ 노출 [뉴스+]

구현모 2022. 11. 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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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시위 정보 올린 학생, 경찰에 서약서 쓰고 풀려나
트위터서 시위 관련 검색 방해…당국 운영 ‘봇 계정’ 의심
“국가가 시민을 때리다니…” 당국 폭력에 놀란 中 젊은이들
시위대에 적대세력·외세 프레임… 강경 진압으로 확산 차단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와 관련 영상이 2030세대 사이에서 확산하자 당국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한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 그간 국가적 여론 통제로 당국의 반인권적 행태에 대해 모르고 있던 중국 젊은이들이 공안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 모습에 동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국은 평화 시위에 ‘외세 개입’ 프레임을 씌우는 등 반정부 여론 확산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지난주 말 발생한 '제로 코로나' 반대시위 장소 부근에 주차해 감시중인 경찰 차량 앞을 지나고 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추적 피하려는 시위대…시위 차단하는 당국

30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공안당국은 현장 채증 사진·영상과 텔레그램 등 메시징 앱, SNS, 휴대폰 추적 등을 통해 시위 참가자를 추적하고 있다. 지난 25∼27일 상하이·베이징·광저우·우한·난징·청두 등에서 벌어진 동시다발 시위에서 시위대가 텔레그램과 SNS로 메시지를 교환한 것으로 보고 추적에 나선 것이다. 

저장성의 19세 학생은 SNS 단체 채팅방에서 백지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말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경찰에 불려갔고 ‘다신 그런 글을 올리지 않겠다’고 서약하고서야 풀려났고 베이징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한 대학생은 최근 학교 측으로부터 경찰이 휴대폰 추적을 통해 그의 동선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고 WJS는 전했다. 베이징·상하이 등에서의 시위 참가자에게 법적 지원을 제공하는 왕성성 변호사에 따르면 중국 경찰은 시위대의 휴대폰과 SNS 계정을 추적해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경찰이 영장 청구 없이도 개인의 휴대폰과 SNS에 접근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익명의 베이징 시위 참가자는 “필사적으로 채팅 기록을 삭제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지난 24일 10명이 숨진 중국 우루무치 화재사건 이후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던 상하이의 우루무치거리에 29일(현지시간) 경찰차들이 배치돼 있다. 상하이 AFP=연합뉴스
앞서 이 시위는 지난 24일 신장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서 난 화재 사고로 10명이 숨지면서 촉발됐다. 특히 사고 건물 주변에 설치된 방역 시설 때문에 소방차가 제때 진입하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코로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주요 도시를 봉쇄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시위대는 당국의 검열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흰 종이를 들고나오고 있어 ‘백지 시위’라고 불린다.

특히 시위 영상이나 집결 장소, 공안이 시위대를 과잉진압하는 모습들이 SNS를 통해 퍼지고 있어 중국 당국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이 시위에 관해 트위터를 검색하면 엉뚱하게 포르노·스팸 등이 나오는 사례가 급증했다고 미국 경제매체 CNN 비즈니스가 보도했다. 이 매체는 몇몇 허위조작정보 연구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런 게시물들이 “중국 정부나 그 협력자들의 고의적 시도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시위가 확산됐던 지난주부터 중국어로 트위터에서 베이징·상하이·난징·광저우 등의 주요 시위 장소 이름을 검색하면 노출이 심한 복장으로 선정적 자세를 취한 여성 이미지나 뜻 없이 아무 말이나 늘어놓은 트윗 등이 검색 결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트윗을 올린 계정 중 상당수는 다른 계정을 팔로우하지도 않고 팔로워도 없는 경우가 많다. 여론 조작을 위한 이른바 ‘봇 계정’으로 의심된다.

또한 이번 시위를 촉발한 ‘우루무치’를 검색하면 성매매를 암시하는 데이터 스팸 트윗에 ‘우루무치’가 함께 태그 돼 수상한 트윗들이 뜨면서 시위 관련 사진이나 영상이 제대로 검색이 되지 않고 있다. 가명을 쓰는 중국의 인터넷 자유 관련 활동가에 따르면 포르노와 성매매 관련 내용은 중국 정부가 오래전 인터넷 검열을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먼저 단속했던 주제여서, 최근 이런 내용이 무더기로 트위터에 뜨는 것은 우연한 개인들의 소행으로 보기 어렵다.

이 활동가는 “신장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중국과 관련한 민감한 이슈 모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코로나 감염사례가 증가했거나 주말에 거리 시위가 열린 도시를 검색해 보면 똑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고 CNN 비즈니스는 전했다.
지난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백지'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민들은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를 담은 ‘백지’를 들고 28일 새벽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AP뉴시스
◆“애국심 큰 中젊은이들…정부 민낯에 충격”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강화된 애국교육을 받고 자란 중국 2030세대는 어느 세대보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은 젊은 세대의 애국심을 더욱 키웠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공산당의 노골적인 중화 민족주의 교육을 접해온 젊은층은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첫 글자를 딴 ‘N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중국 젊은이들이 당국의 고강도 방역 정책에 반대하는 이른바 ‘백지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의 유럽 편집장이자 중국에서 20년 이상 특파원으로 근무한 언론인 자밀 안데를리니는 이에 대해 “천안문 사태를 몰랐던 중국 젊은이들이 중국 정부의 민낯을 보고 놀란 것”이라고 꼬집었다.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시위 관련 영상을 보면 공안의 폭력 진압을 목격한 젊은이들이 “저들(공안)이 시민을 때린다”,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다”, “(당신들은) 인민에 봉사해야 한다”며 놀라움과 당혹감을 드러낸다.

안데를리니는 “중국 젊은이들은 과거의 잔학 행위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 조국이 그들을 사랑하고 결코 그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주말에 나온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은 어떤 공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렇기 때문에 젊은 시위대가 민주주의, 당 통치 종식, 시진핑의 전복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면서도 시위가 확대될 가능성은 적게 봤다.

안데를리니는 “20년간 중국에서 많은 반정부 시위를 목격했지만 모두 잔혹하게 진압됐고, 확대되거나 확산돼지 못했다”면서 “시진핑이 마오쩌둥 이후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확인한 상황에서 당국은 이번 시위를 디지털 전체주의의 모든 도구를 사용해 신속하고 잔인하게 진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적어도 가면은 벗겨졌고 중국 대중은 그들을 지배하는 정권의 진정한 얼굴을 봤을 것”이라며 변화를 기대했다.
‘반정부 시위’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백지 혁명’으로 기록될 뻔한 이번 시위는 중국 당국의 강경 진압과 발빠른 여론 통제로 불씨가 꺼져가는 상황이다.

공산당은 이번 시위에 ‘외세 개입’ 프레임을 씌워 사태를 돌파하려는 모양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28일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는 “법에 따라 적대세력의 침투및 파괴 활동과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위법 및 범죄 행위를 결연히 단속해 사회 전반의 안정을 확실히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위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지난 주말 베이징, 상하이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난 이튿날 열린 회의였다는 점에서 후속 시위 대응 기조를 천명한 것으로 읽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뉴시스
중국 공산당 문건에서 ‘적대세력’은 외국의 반중국 세력과 중국 내 공산당 반대세력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적대 세력의 침투 및 파괴 활동’은 각지에서 발생한 시위에 외국 배후세력이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고강도 방역 정책에 지친 민심이 우루무치 화재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을 ‘외세 개입’으로 규정해 ‘시위 참가자는 매국노’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향후 시위 확산을 차단하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서방 지도자들이 잇따라 중국의 평화 시위 보장을 촉구하는 가운데 중국이 ‘외세 개입’을 언급하면서 이번 사태는 향후 중국과 서방 간 또 하나의 갈등 소재가 될 전망이다.

구현모·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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